특히 친박계 핵심 좌장 최경환 의원이 전대 출마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도 전에 친박계 내에서 당 대표 출마 후보군이 속출하면서 “이제는 친박계가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섰다” 내지는 “친박계가 자기 정치를 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박근혜 정부의 뒷받침이 아니라 자기의 정치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전대에 출마하려 한다는 것이다.
최경환 의원과 유승민 의원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이날 회동의 핵심내용은 전당대회 룰이었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김희옥)가 최근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해 선출하고, 당 대표에게 임명권 등 인사권을 대폭 몰아주자는 이른바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를 결정해 곧 의원총회에 안건으로 올릴 예정이다. 1인 1표로 당 대표를 뽑는 메이저리그와, 최고위원을 뽑는 마이너리그로 나누자는 구상이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총선 참패 이후에도 비대위와 혁신위 기구 구성이 안 되자 양대 계파 대주주인 비박계 김무성 전 대표와 친박계 최 의원과 ‘3자 회동’을 해 내린 결론이었고, 이를 비대위가 결정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유기준 의원은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고, 최 의원도 유 의원 말에 동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의원은 ‘3자 회동’에서 자기가 내린 결정을 번복하는 이중적 모습을 보인 셈이 된다. 반면 한 의원은 현행 집단지도체제에서는 ‘봉숭아학당’이 재연될 수밖에 없다며 강하게 반대했고, 유 의원과 언성을 높였다는 후문이다. 한 참석자는 “유(기준)하고 한(선교)하고 좀 강하게 이야기했지. 완전히 논리가 반대던데?”라고 했다.
당시 회동 참석자들 전언을 종합하면 이렇다.
1. 이회창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총재 시절에 당 대표실이 지나치게 커 ‘아방궁’ 소리가 나왔고 차떼기 정당 이미지까지 겹쳐 현행 집단지도체제가 만들어졌는데 다시 옛날로 돌아가면 안 된다.
2. 대표를 따로 뽑고 최고위원도 따로 뽑으면 그야말로 계파 싸움 되는 것 아니냐. 계파 해체 한다고 선언까지 했는데 또 그런 구도를 만들면 국민이 어떻게 보겠느냐.
3. 당 대표 후보가 난립하면 표가 쪼개지고 30%도 안 되는 득표율로 당 대표가 될 수 있다. 윤상현 의원도 과거 김무성 전 대표가 전당대회에 당선된 뒤 비박계로 세력 재편이 되자 “29% 득표로 당을 장악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내놓지 않았느냐.
하지만 정치권에선 이런 친박계의 주장이 먹혀들지 않을 것으로 본다. 논리는 그럴 듯하지만 이미 비대위에서 결정한 사안인데다 무엇보다 “친박계가 질 것 같으니 룰 얘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당장의 구도가 그렇다. 현재 친박계에선 이주영 이정현 의원이 당 대표 출마에 기울어 있고, 번번이 당내 경선에 실패해왔던 홍문종 의원도 출마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최 의원까지 나오면 친박계에서만 4파전이 된다. 반면 비박계에선 김용태 의원이 출마 선언을 했고 정병국 의원이 움직이고 있지만 김 의원은 교통정리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피력하면서 단일화가 이뤄질 전망이다. 친박 표는 쪼개지고 비박 표는 결집하는 구도인 셈이어서 최 의원이 출마해도 당 대표 당선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그러니 현행대로 1인 2표로 당 대표를 선출하고 차점자 순으로 최고위원이 선출되는 룰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친박계 핵심 중진들의 회동이 닷새 지난 28일 최 의원은 다시 친박계 재선과 3선 의원들을 모았다. 이날도 전대 룰에 대한 의견이 오갔고 최 의원의 출마 여부가 도마에 올랐다. 하지만 최 의원은 지난 23일 불출마하고 싶다는 에둘러 피력한 것과 달리 이날엔 “출마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4선 이상 중진그룹은 대부분 “그래도 최 의원이 출마하겠지”라고 했는데 재선·3선 그룹에선 “불출마할 것 같던데?”라는 반응이 나왔다. 일대일 회동에서부터 그룹 회동까지 당내 친박계 모두와 의견 수렴을 거친 최 의원이 청와대 쪽에 친박의 전체적인 기류를 전달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이런 내용이 정치권에 흐르는 것을 두고 최 의원이 ‘불출마’ 언론플레이를 한다는 얘기도 있다. 한 정치권 인사의 말이다.
“모 언론사인지 어딘지 출처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전당대회 룰대로 ‘당원 70%와 일반국민 30%’로 섞어 가상 여론조사를 했다는 말이 돈다. 그런데 거기서 이주영 의원이 1위를 차지했고, 2등이 이정현, 3등이 정병국, 4등이 최경환이란 결과가 나왔다. 우리 당원들 사이에서도 친박계가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좀 물러나 있어야 한다는 여론이 크다는 게 확인된 셈이다. 뻔히 질 것을 아는데 당 대표에 덥석 출마하기도 그렇고, 또 떨어지면 최고위원도 못하고 그냥 평의원이 되는 룰 개정도 그렇고…. 최 의원이 무척 심란할 것이다.“ 실제 최 의원 보좌진그룹과 주변부에서는 최 의원의 불출마를 강하게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 의원 출마는 사실 본인 의지가 아니다. 청와대와 친박계 요구가 커지면 그로선 불출마를 선언하기가 어렵다. 일단 그가 현재 친박계의 구심점인 데다 만약 불출마를 결행할 경우엔 “최경환도 박근혜 대통령을 버렸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현 정부의 성공을 위해 친박계가 당권을 장악해 뒷받침해줘야 한다는 논리였는데 말 따로 행동 따로인 셈이 되는 것이다. 최 의원이 불출마하면 당장 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속화하는 결과를 부를 수도 있다. 당 고위 당직자는 “비대위의 결정사항을 친박계가 뒤집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자칫 세력을 다시 과시할 땐 정말 당 전부가 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친박계 분위기가 이렇게 흉흉하지만 비박계는 구심점을 내세워 결집하려는 모양새다. 친유승민계인 김세연 의원은 19대 국회 때 쇄신그룹을 형성했던 경제민주화실천모임 멤버를 부산으로 불러 1박 2일간 워크숍을 가졌다. 만찬자리에서는 당 상황과 향후 당권 등 폭넓은 이야기가 오간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남경필 경기지사, 정병국 민현주 이종훈 의원 등 다수가 쇄신파이거나 친유승민계였다.
이정필 언론인
”믿을맨 쓴 게 죕니까“ 푸념 ‘서영교 후폭풍’ 어수선한 국회 요즘 국회는 난리도 아니다. 국회 의원회관은 하루꼴로 사직자가 속출하고 있다. 6월 16일 4급 보좌관 한 명이 국회를 떠났고 그 다음날인 17일에도 4급 보좌관이 그만뒀다. 그러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친동생과 딸을 채용한 사실이 알려진 20일엔 무려 7명의 보좌진이 사표를 냈고,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 친인척 보좌관이 알려진 29일에도 7명이 떠났다. 사건이 불거지고 지금까지 30명이 넘는 보좌진이 국회 울타리 밖으로 떠나고 있다. 의원회관 분위기는 대략 두 가지로 갈린다. 하나는 지나친 마녀사냥이란 지적이다. 의원실 보좌진의 절대 다수가 한 다리 건너 친인척이거나 사돈에 팔촌 등 이런저런 인연으로 얽혀있음에도 연좌제식으로 얽어매 쫓아내고 있다는 푸념이 들린다. 20년 넘게 보좌진 생활을 해온 한 관계자는 “능력과 실력에 대한 어떠한 평가도 없이 단지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쫓아내고 쫓겨나는 지금의 상황은 정말 말이 안 된다”며 “의원으로선 가장 믿을 만한 사람 중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보좌진을 채용한 것이고 그간 하등의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의원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수행비서나 운전기사의 경우엔 혈연으로 맺어진 경우가 대다수다. 이동 중에 통화를 하는 경우가 많아 ‘영업기밀’을 제일 많이 알고 있고, 그래서 보안유지를 위해 ‘믿을맨’을 쓴다. 국회 인턴의 경우엔 ‘스펙 쌓기’를 위해 친한 의원실에 알음알음으로 자녀를 넣는 케이스도 다반사다.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식이다. 당장의 소나기를 피하자고 움츠리고 있는 의원실도 있지만, 실력을 믿고 정면 돌파하는 의원실도 다수라는 이야기도 있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멀쩡하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의원실로 들어온 분이 계신데 그 의원실 내에선 꼭 필요한 사람이어서 영감이 그냥 계속 근무해달라고 오히려 붙잡고 있는 곳도 있다”고 전했다. 초선으로 20대 국회에 입성한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6촌을 비서관으로 채용했지만 내보냈다. 하지만 이 비서관은 17대 국회에서부터 국회 의원회관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은 인물로 2012년 ‘노크 귀순’ 사건을 특종(?)한 실력자였다. 안 의원보다도 국회 짬밥은 더 많은 먹은 셈인데 친인척이라는 이유만으로 백수가 된 것이다. 국회 한쪽에서는 서영교 더민주 의원만 징계하고 나머지는 그냥 내버려두는 고무줄 잣대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친인척 채용은 범죄가 아님에도 가혹하다는 얘기이고, 친인척을 채용한 것이 잘못이라면 모두 공평하게 시비를 가려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비서관은 “국회의원도 의원직을 물려받는 경우도 많고, 재벌도 가업을 승계하는데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