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9월 20일에 태어나 1983년 3월 3일에 불의의 사고니 37세의 젊은 나이에 맞은 의도하지 않은 요절이었던 셈이다. 일리노이에서 태어나 보스턴 교외 지역에서 성장한 피터 아이버스는 하버드에서 고전 언어를 전공하던 엘리트였다. 그의 대학 생활은 찬란했다. 연극반에선 기술 감독과 작곡가로 활동했고, 이 시기 친구들이 <인터스텔라>(2014)에서 매튜 매커너히의 아버지였던 존 리스고, <도망자> 시리즈의 토미 리 존스 그리고 TV 시리즈 <웨스트 윙>으로 유명한 여배우 스토커드 채닝 등이다. 유명한 유머 잡지 <내셔널 램푼>을 창간한 더글러스 케네디, SNL의 스타 중 한 명이었던 코미디 배우 존 벨루시는 이 시기 절친이었다.
피터 아이버스의 앨범 재킷. 미국 음악계의 이단아였던 그는 37세의 나이에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는 졸업 대신 거리로 나가는 걸 선택했고, 보스턴 거리에서 공연하는 밴드 멤버가 됐다. 그의 하모니카 솜씨는 놀라웠고, 1969년엔 에픽 레코드에서 첫 앨범 <Knight of the Blue Communion>을 낸다. 사이키델릭의 숨겨진 명반으로 후세에 평가 받은 이 음반엔 스리랑카의 재즈 디바인 요랜더 바반이 보컬로 참여했다. 이후 그는 1976년에 데이비드 린치의 의뢰를 받는다. 당시 린치 감독은 이후 컬트영화로 미국의 심야상영관을 뜨겁게 달구게 될 <이레이저 헤드> 작업 중이었다.
논리와 이성으로 해석할 수 없는 이 영화엔 라디에이터에서 한 여자가 나와 노래를 부르는 몽환적인 신이 있는데 이때 흐르는 ‘In Heaven’은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괴상한 노래였다. 아이버스의 음악 경력에서 터닝 포인트는 ‘뉴 웨이브 씨어터’였다. 1981년 LA의 KSCI 방송사는 파격적 포맷의 음악 쇼를 만드는데 캐나다 출신의 언더그라운드 뮤직 전문가이자 프로듀서였던 데이비드 조브는 피터 아이버스와 함께 산파 역할을 한다.
‘뉴 웨이브 씨어터’는 음악과 코미디가 결합된 광란의 불협화음이었다. 앵그리 사모안스, 데드 케네디스, 45 그레이브, 피어, 서버번 론스, 더 플러그즈, 서클 저크스…. 출연하는 밴드들은 하나같이 펑크 밴드들이었고 그들의 파격적인 음악과 퍼포먼스는 이 쇼를 통해 미국인들의 안방까지 이어졌다.
1983년에 ‘Swingrass 83’ 앨범을 내며 왕성한 활동을 벌이던 아이버스. 당시 그와 친하던 뮤지션들은 하나같이 “아이버스와 비교하면 난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음악은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3월 3일, 그는 LA에 있는 자그마한 로프트(공장 등을 개조한 다락방 같은 거주지)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온몸이 망치로 맞은 자국인, 처참한 모습이었다.
경찰 두 명이 도착했고, 잠시 후 그의 지인들이 그 좁은 공간으로 밀어닥쳤다. 현장 보존이 제대로 될 리 없었고, 경찰은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군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그들은 갈팡질팡했다. 이때 문가에 폴 마이클 글레이저가 보였다. 그는 당시 TV 시리즈 <스타스키와 허치>에서 형사 스타스키 역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배우였다. 경찰은 그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스타스키 형사님, 저희가 도대체 뭘 해야 하는 거죠?”
수사 역시 난항을 겪었다. 몇몇 설이 있었다. 아이버스가 살던 지역은 꽤 거칠었다. 이웃이 강도로 돌변해 침입해 돌발적으로 그를 죽였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대세는 면식범의 소행이라는 것. 문제는 그에겐 주변 인물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의심 받았다. 그와 함께 ‘뉴 웨이브 씨어터’를 이끌던 데이비드 조브가 가장 유력했다. 아이버스의 재능을 질투한 나머지 죽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억측이었고 증거도 없었으며 조브는 알리바이도 탄탄했다.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조사를 받았지만 모두 무혐의였다. 결국 이 사건은 그 어떤 용의자도 체포되지 않았고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고 말았다.
아이버스가 세상을 떠난 지 25년 되던 2008년, 조쉬 프랭크와 찰리 벅홀츠는 그의 전기를 발간하며 미스터리한 죽음에 대해 재조사를 했다. 그들은 200여 명을 인터뷰했고, 그의 주변 인물들의 당시 알리바이를 모두 조사했으며, 그 결과 조금이라도 범인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의 명단을 경찰에 넘기기까지 했다. 경찰의 재조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결론은 똑같았다. 아무런 증거도 찾아내지 못했고, 그 어떤 용의자도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그 천재적인 뮤지션을 그토록 처참하게 살해했던 걸까? 그는 정말 우발적인 범죄에 희생된 걸까? 책이 나온 후 사람들은 음모론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그중 가장 신뢰를 얻은 건 ‘뉴 웨이브 씨어터’에 출연했던 펑크 밴드의 소행이라는 것이었다. 그 성향상 밴드의 멤버들은 꽤 공격적이었고, 어떤 밴드는 방송 중에 아이버스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낼 때도 있었다. 이건 아이버스의 성격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매우 친절한 사람이지만 지나치게 감상적일 때가 있었고, 그런 맥락에서 내뱉는 말이 가끔은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있다. 음모론에선 그런 상처를 입은 밴드 멤버 중 하나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추측일 뿐. 아이버스의 죽음은 여전히 미제 사건이며, 그의 음악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