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세대교체 주자인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남경필 경기도지사·원희룡 제주도지사와 야권 세대교체 주자인 김부겸 더민주 의원·안희정 충남도지사도 개헌에 적극적이다. 여야의 비주류가 개헌에 적극적인 셈이다. 비주류의 개헌 주장은 ‘생존 투쟁’에 가깝다.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인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도 개헌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대통령 권력구조보다는 결선투표제 등 대선 룰 개정이 선 순위다. 여기에는 ‘블랙홀 이슈’ 개헌을 둘러싼 셈법이 숨어있다. 이른바 ‘최대 공약수’와 ‘최소 공배수’ 법칙이다. 이 법칙의 공식을 푸는 순간, 여의도 발 정계개편과 차기 대선판의 그림이 그려진다.
제7공화국을 위한 헌법 개정은 ‘87년 체제’의 한계론에서 촉발했다.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87년 헌법은 우리 사회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했다. 하지만 오랜 군사독재 정권의 지배 탓에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5년 단임제’를 택하면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시대에도 제왕적 대통령 폐단에 시달렸다. 여야의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개헌에 공감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20대 국회 초반 개헌을 위한 판은 형성됐다. 측근들에게 ‘더 이상의 선출직은 없다’고 말한 정세균 국회의장이 임기 초반부터 개헌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차기 대권 주자급인 정 의장의 파워는 직전 정의화 전 국회의장을 뛰어넘는다. ‘정의화(의장)·박형준(사무총장)’보다는 ‘정세균·우윤근’ 라인이 더 막강하다. 차기 대선 정국에서 개헌은 변수가 아닌 상수다.
눈여겨볼 대목은 개헌을 둘러싼 정치적 함의다. 제헌헌법부터 제9차 헌법 개정까지, 4·19 혁명과 87년 6월 항쟁을 제외하고는 모두 ‘권력 연장용 개헌’에 그쳤다. 현직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국민들의 들불 같은 압력 없이 개헌은 불가능하다. 다만 체제 변경까지는 아니더라도 개헌은 정치적 변곡점에서 ‘국면전환용’ 카드로 쓰인다. 이슈 자체가 지닌 파괴력 때문이다.
헌법 개정을 둘러싼 ‘백가쟁명식 논쟁’의 최대 공약수가 ‘개헌’이라면, 최소 공배수는 ‘정계개편’이다. 전자는 체제 개편을 통한 국가 대개조, 후자는 ‘새판 짜기’를 골자로 한다. 교집합은 차기 대선 국면에서 ‘파워 시프트(권력이동)’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개헌 파워 시프트의 앞선 축은 김무성 전 대표와 김종인 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다. 김 전 대표는 ‘분권형 개헌’(이원집정부제), 김 대표는 ‘내각제’, 박 위원장은 분권형과 내각제 모두 긍정적이다. 이 지점이 김 전 대표의 ‘신보수대연합’, 김 대표와 박 위원장의 ‘반 패권 중도대연합’ 등의 정계개편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정계개편의 아이디어 차원이지만,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김 전 대표는 2012년 대선을 불과 4개월 앞둔 8월 14일 유럽 재정 적자국을 둘러본 뒤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당시 그는 ‘보수대연합’ 카드를 쥐고 있었다. 앞서 김 전 대표는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좌파에 정권을 내줄 수 없다”며 보수대연합론에 불을 지폈다. ‘보수연합이냐, 중도 확장이냐’의 갈림길에 선 친박계는 YS(김영삼 전 대통령)계인 김 전 대표를 비롯해 친이계 등을 한데 묶으며 보수대연합을 위한 시동을 걸었다.
현재 김 전 대표 앞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신보수대연합’이다. 2012년 대선 전략인 보수대연합과 별반 차이는 없지만, 사실상 분화의 길을 걷고 있는 친박계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보수표 분산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권 필승 공식이다. 이른바 ‘어게인 2012’인 셈이다.
다른 하나는 친박계를 배제한 비박계와 야권의 중도세력 일부를 묶는 ‘비박 중도대연합’이다. 이는 이재오 전 의원을 비롯해 신당 창당을 공언한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 외곽으로 밀려난 친이계(친이명박)·비박(비박근혜)계 인사를 한데 모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이 전 의원은 “내년 1월 개헌 추진을 전제로 한 정당을 만들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정 전 의장도 오는 10월 제4지대 신당 창당을 시사했다. 새누리당 8·9 전대에서 ‘비박계 단일화 메이커’로 나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합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대 총선 패배 이후 ‘공생연구소’를 세운 오 전 시장은 조만간 ‘왜 지금 국민을 위한 개헌인가’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친박 중심이냐, 비박 중심이냐’만 다를 뿐, 이들의 정계개편 목적은 ‘보수정권 재창출’이다. 비박계 한 관계자는 “20대 총선 참패로 김 전 대표의 가치는 떨어졌다. YS의 승부사 기질 없이는 판을 뒤집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래서 개헌을 주목해야 한다. 2014년 7·14 전당대회 이후 첫 번째 외유인 중국행에서 김 전 대표가 한 것은 개헌 불 지피기였다”고 말했다. 분권형 개헌을 골자로 하는 김 전 대표의 상하이 발 정계개편을 지칭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 임기 4년차 들어 개헌 ‘함구령’을 내렸던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도 언제든지 ‘분권형 개헌’을 고리로 정면 돌파에 나설 수 있다. 현재 친박계는 박 대통령의 레임덕(권력누수 현상)과 맞물려 구심점을 잃어버린 ‘길 잃은 나룻배 신세’로 전락했다. 친박계는 ‘양파남’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잇따른 비리 의혹에 방패 막을 형성하기는커녕 실세인 최경환·서청원 의원에 이어 홍문종 의원까지 8·9 전당대회 출마를 접었다. 4·13 총선에서 ‘의회권력’의 상당 부분을 잃더니, 급기야 당권마저 내줄 처지에 빠졌다.
2인자를 만들지 않는 박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 탓에 당분간 친박계 실세들의 정치적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역으로 이 때문에 친박계 실세들이 이원집정부제를 고리로 ‘외치 대통령(반기문)·내치 실세 총리(최경환 의원 등 친박계)’ 카드를 들고 나올 수도 있다. 친박계 한 의원은 “개헌의 핵심은 분권을 통한 국가혁신”이라며 “해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잇따른 악재로 내부 원심력만 커진 친박계가 ‘조기 개헌론’에 불을 지피는 데 실패할 경우 사실상 분화의 길을 걸으며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할 것으로 보인다.
야권의 셈법도 복잡하다. 더민주 8·27 전대 이후 뒤로 물러나는 김종인 대표는 9월 독일 방문 후 정국 구상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핵심은 ‘내각제 개헌’이다. 대중적 지지와 당 세력이 없는 김 대표로선 내각제가 실권을 잡기에 최적의 카드라는 분석도 있다. 정계복귀가 임박한 손 전 고문도 분권형 개헌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조기 전대 가능성을 열어둔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도 “지금이 개헌 적기”라며 여러 판을 열어뒀다. 아울러 손 전 고문과 정운찬 전 국무총리에게 강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야권이 내부 권력구도의 지각 변동을 위한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셈이다.
주목할 대목이 있다. ‘김종인·박지원·손학규’의 정계개편 공통분모다. 바로 ‘반 패권주의’다. 이들은 문재인 전 대표를 비롯한 친노 패권주의와 반대급부를 형성하고 있다. 극단주의의 진보성 강화도 배격한다. 정치권 안팎에서 정계개편 시나리오로 ‘반 패권 중도세력’의 결사체를 거론하는 까닭이다. 이른바 ‘반 패권 중도대연합’이다.
최소한 ‘친노 패권주의’에 맞서는 야권통합신당, 최대 친박계·친노계를 제외한 제 세력이 단일대오를 형성할 수도 있다. 이미 여권 내 친박계는 분화 중이다. 더민주 당권 주자들이 야권통합 이슈를 던진 상황이다. 차기 대선의 판을 뒤집을 정계개편의 불씨가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야권 한 관계자는 “창조적 분화를 통한 새판 짜기가 박근혜 정부 마지막 정계개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헌을 통한 파워 시프트 쥔 키맨이 차기 대권 구도의 핵심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윤지상 언론인
‘독재트라우마 탓에…’ 더민주 86그룹 개헌 소극적 “개헌은 어렵다.”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의 대표 격인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말이다. 개헌 정국이 여의도를 강타했지만 86그룹은 개헌에 소극적이다. 이들은 1987년 6월 항쟁 당시 대학생 신분으로 전두환 신군부에 맞서 반독재 투쟁에 나섰고, 같은 해 8월 19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을 만들고 학생운동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당시 전대협은 95개 대학에서 4000여 명이 참여, 학생운동 사상 최대 조직으로 부상했다. 전국각지에 19개 지구를 둔 전대협은 1992년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으로 조직을 개편하기 전까지 학생운동을 진두지휘했다. 86그룹이 당시 재야그룹·시민 등과 함께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87년 헌법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런데도 소극적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대표적인 이유로 86그룹이 개헌을 바라보는 시각을 꼽는다. 흔히 87년 체제는 ‘형식적 민주주의’로 치환된다. 대통령 직선제 등 절차적 민주주의를 꾀했지만, 사회 양극화 등 민생을 위한 실질적인 민주주의로 발돋움하지 못했다는 논리다. 하지만 그간 86그룹 내부에선 이 같은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는 기류가 적지 않았다. 한 의원은 “87년 6월 항쟁 이후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지지 않았느냐”며 “87년 헌법은 사회 경제적 투쟁 등 시민 정신의 원천이다. 단순히 절차성만 보는 것은 좁은 시각”이라고 말했다. 특히 내부에선 전두환 신군부를 종식한 5년 단임제가 권력자 간 권력분점을 꾀할 수 있는 분권형 개헌(이원집정부제)이나 의원내각제로 이어지는 데 대한 반감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여권 일각에서 제기하는 분권형 개헌을 고리로 한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과 친박(친박근혜)계 실세 간 권력 나눠 먹기 등에 대한 우려가 깔렸다. 자칫 개헌이 보수진영의 권력 연장으로 이용당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86그룹은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요소가 가미된 혼합형 대통령제가 아닌 순수 대통령제를 통한 ‘실질적인 삼권분립’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일종의 ‘독재 트라우마’가 작동한 결과로 분석된다. 실현 가능성도 문제다. 우 원내대표는 개헌 실현 가능성의 두 축으로 ‘국민적 압력’과 ‘시기’를 꼽았다, 그는 “개헌은 6월 항쟁같이 대중의 압력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 임기 4년차를 거론하며 “개헌은 임기 말에 할 얘기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들과는 달리 개헌에 목소리를 내는 86그룹도 있다. 더민주 차기 당 대표 후보인 송영길 의원은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골자로 한 원 포인트 개헌, 김부겸·김영춘·박홍근 의원 등은 ‘분권형 개헌’을 각각 주장한다. 이에 따라 개헌 정국에서 86그룹은 ‘개헌 소극파’와 ‘분권형파’ 등으로 나뉠 것으로 보인다. 차기 대선의 캐스팅보트인 86그룹도 더민주 주류인 친노(친노무현)그룹과 마찬가지로 분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