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왼쪽부터) 대권 빅3의 ‘설 효과’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 주목된다. 합성한 사진. | ||
실제 지난해 '추석' 라운드의 최대 승자는 바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었다. 25% 수준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경합을 벌이던 이 전 시장은 10월 초 추석 연휴를 지나면서 자신의 출신지역인 대구 경북을 중심으로 지지도를 30%대로 끌어 올렸다. 박 전 대표와의 경쟁에서 승기를 잡은 후 연말께는 '대세론'을 형성했고 전국적 지지도가 올라가 현재 50%를 전후한 초강세 지지도에 진입한 바 있다. 현재 이명박 전 시장은 수도권, 호남, 충청, 영남을 통틀어 전 지역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명절' 지지도 변화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역민심’이라 할 수 있다. 각 지역이 가진 여론의 특성이 타 지역으로 전파되고, 대선주자에 대한 여론흐름의 변화 자체가 대체로 지역단위로 움직이는 경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수도권
자료출처 : KSOI, 2월 6일, 전국 1,000명 전화조사, 표집오차 95% 신뢰구간 ±3.1%
지역별 민심 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수도권, 특히 그 중에서도 서울이다. 최대 귀향인구를 가진 동시에 정보생산의 중심지인 서울은 전통적으로 ‘이슈’의 흐름에 민감한 지역이다. 서울의 여론은 대개 개혁진보 성향이 더 많은 것으로 평가되나, 대체로 ‘정당’에 대한 귀속의식이 약한 대신 정국흐름에 따라서 쏠림현상이 강하다. 현재 대선주자에 대한 서울지역의 여론은 이명박 전 시장의 ‘초강세’ 흐름으로 요약된다. 이 전 시장이 성공적으로 서울시장 임기를 마친 후 서울은 이 전 시장의 ‘아성’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이 전 시장의 전국 지지도는 53%이지만 서울에서는 무려 66%를 기록해 전 지역 중 가장 높다. 반면 전국 유권자에서 23%를 얻어 2위를 달리고 있는 박근혜 대표는 서울에서 12.4%의 지지를 얻는데 그쳐 호남(9.8%)을 제외하고는 가장 낮은 지지도를 기록했다. 서울의 경우 당분간 이명박 전 시장의 초강세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되며, 이번 ‘설’ 라운드에서도 ‘이명박 대세론’의 본거지로 제 몫을 톡톡히 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한 가지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의 지지도. 손 전 지사의 지지도는 비록 전체 국민 중 6%로 낮지만 최근 서울에서는 9%를 기록해 상대적으로 이번 ‘설’ 효과를 은근히(?) 기대할 만한 입장이 되었다.
충청권
자료출처 : KSOI, 위 2월 6일 전국조사와 설계 동일(충청지역 사례수=98명)
우리 선거에서 ‘충청’ 민심을 장악한 쪽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는 데에는 전문가들 사이에는 별로 이견이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현 여권의 승리는 충청지역에서의 우세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만일 1997년의 ‘DJP 연합’과 2002년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으로 현 여권이 호남과 충청을 묶는 이른바 ‘서부연합’ 구도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면 결코 승리하기는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총선까지만 해도 여당의 텃밭이었던 충청은 현재 ‘한나라당’이 접수(?)했다고 볼 수 있다.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무산되고 ‘행정복합도시’로 축소된 이후에는 사실상 여당지지가 무너졌다. 충청지역의 대선주자 지지도를 보면 이명박 전 시장이 역시 1위이나 상대적으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 이명박 시장은 행정수도 이전을 강력히 반대해 충청지역에서 일정 수준의 ‘비토’층이 존재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충청지역에만 가면 이 전시장이 ‘작아지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
또 실제 대선주자는 아니라도 주요 정치인들을 대입해 충청지역 민심을 대표하는 정치인 즉 ‘충청맹주’를 가려보면 ‘심대평 전 충남지사’가 28%로 1위를 차지하고 박근혜 대표가 23%로 2위를 차지했다. ‘대선주자’ 지지도에서는 높은 지지도를 보인 이명박 전 시장은 심대평 전 지사 쪽에 지지층을 가장 많이 뺏겨 3위를 기록했다. 이인제 의원은 7%로 4위에 그쳤으며, 충청 출신으로 여권의 제3후보로 꼽히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1%로 미미한 호감도가 나타났다.
충청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심 전 지사가 1위를 차지한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만일 오는 4월, ‘대전 서구(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심 전 지사가 국회입성에 성공할 경우 대선까지 ‘충청’ 민심을 결집해 범여권과 한나라당 중 한 쪽과 ‘연대’를 모색하거나 본인이 연초에 밝힌 대로 제3지대에서 새로운 보수신당의 흐름을 만들어 낼 가능성도 무시하기 힘들다.
호남권
자료출처 : KSOI, 1월 23일, 전국 1,000명 전화조사(호남지역 사례수=106명)
고건 전 총리의 사퇴 이전까지만 해도 호남지역에서는 다음 대선은 ‘이명박 대 고건’의 한판 승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다수를 이뤘다. 당연히 고 전 총리 사퇴 이후 가장 큰 혼란에 빠진 것은 바로 호남지역이다. 현재 이명박 전 시장이 호남권에서도 1위를 차지해 대세론에 힘을 더하고 있으나, 오히려 박근혜 전 대표 측에서 이 전시장의 지지도에 ‘거품’이 있다고 주장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했다. 현재 호남지역의 대권주자 지지도는 이 전 시장이 34%,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11%, 박 전 대표가 9.8%를 얻은 반면 부동층의 규모는 전국 최대인 25%를 기록하고 있다. 부동층이 어느 지역보다 높은 호남에서 이명박 전 시장의 강세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전문가들은 범여권 후보가 정해지면 이른바 ‘전략투표’에 능한 호남민심이 이 전 시장을 버리고 다시 범여권 단일후보로 쏠릴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렇다면 야당 주자를 배제하고 호남 민심을 움직일 수 있는 맹주는 누굴까. 지난 1월 23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 중 ‘정동영’ 전 의장이 ‘전북지역’을 중심으로 39%를 기록해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이어 강금실 후보가 10%로 한참 처진 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현 호남민심은 ‘소강상태’라고 볼 수 있다. 실제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을 고르는 여론조사에서 전북 출신인 정 전 의장이 강세를 보이는 전북지역 부동층은 4.3%로 거의 없었던 반면, 광주는 54%, 전남은 38%가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을 고르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의중도 무시 못할 변수로 꼽힌다. 지난 2월 7일 경향신문 여론조사에서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특정후보를 지지하면 이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응답이 43%에 달했다. 비록 ‘영향 받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보다 적긴 했으나 향후 대선에서 DJ가 ‘특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가 하면 최근 호남에서 손학규 전 지사의 지지도가 오르는 새로운 흐름도 발견된다. 고 전 총리 사퇴 이후 여권 후보로 ‘손학규 대안론’이 떠오르면서 호남의 일부 민심이 손 전 지사로 이동한 징후가 나타난 것이다. 어쨌든 이번 대선에서 최종적으로 호남이 반한나라당의 ‘본산’이 될 것은 의심에 여지가 없다. 분명한 것은 호남을 장악한 후보가 범여권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아 향후 치열한 호남민심 쟁탈전이 예상된다.
영남권
자료출처 : KSOI, 위 2월 6일 전국조사와 설계 동일(영남지역 사례수=273명)
한나라당의 텃밭이자 보수진영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영남에서는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의 혈전이 계속되고 있다.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이 전 시장은 부산경남(49%)과 대구경북(45%) 지역에서 가장 높은 지지도를 기록했다. 반면 박 전 대표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박 전 대표는 현재 대구경북에서 30.2%, 부산경남 지역에서는 38%를 기록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대선주자 지지도와는 달리 영남지역의 정서를 가장 잘 대변하는 정치인을 질문할 경우, 박근혜 전 대표는 41%의 호감도를 기록해 이 전 시장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즉 비록 대선주자로서의 지지도 측면에서는 여전히 이 전 시장의 지지도가 높긴 하지만, 이른바 ‘영남’ 정서라는 측면에서는 역시 ‘박근혜’라는 얘기이다. 이 전 시장의 지지도가 영남민심을 대변하고 있기보다는 여권 후보에 대한 ‘대항마’로서의 가치가 높게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이명박 대세론’이 흔들릴 경우 언제든지 영남민심을 박근혜 대표가 ‘수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조사결과이기도 하다. 한편 영남지역 맹주를 가리는 이번 여론조사에서 ‘정몽준 의원’이 6%로 3위를 차지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 비록 국회의원으로서 활동을 해오긴 했으나 사실 상 대선국면에서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정 의원이 여당의 주요 정치인이나 이회창 전 총재보다 높게 나타나 나름대로의 지분을 가지고 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회창 전 총재의 지지도는 과거의 대권후보로서의 ‘영광’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수준의 3%에 그쳤다.
이번 지역민심 대해부에서 드러난 중요한 발견 중 하나는 전국적 강세를 보이고 있는 ‘이명박 전 시장’이 충청과 호남, 영남 세 권역 중 어디에서도 지역 민심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꼽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역주의가 약화되었다고는 하나 선거 막판에 갈수록 ‘지역민심’의 영향력은 커지는 게 일반적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앞으로도 대선 전반 상황은 여전히 예측불허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설’ 라운드에는 이미 지지도가 천장을 쳤다고 평가되는 이명박 전 시장이나 견고한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보다는 수도권과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이른바 3위권인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와 정동영 전 의장에 대한 지지도가 출렁일 가능성이 있다. 한 마디로 포스트 고건 자리를 두고 범여권 지지층들의 어떤 방향으로 자신들의 ‘대안’을 만들어 낼지 주목된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