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박 대통령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국정 흔들기’라며 우 수석에게 힘을 실어주는 듯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친박계가 우 수석에 대해 입을 닫은 이유다. 우 수석 역시 휴가를 다녀온 후 정상 업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본인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 정면 돌파를 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우병우 민정수석. 출처=연합뉴스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까.”
8월 3일 기자와 만난 한 친박 의원은 우 수석 얘기가 나오자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우 수석 때문에 지금 야권으로부터 연일 맹공을 당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딱히 반격을 할 수도 없다. (우 수석 관련 내용은) 우리도 잘 모른다”면서 “청와대 수석 한 명 교체하는 게 뭐 그리 힘든지 모르겠다. 버티는 우 수석이나 안고 가는 박 대통령 둘 다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친박계의 이러한 기류는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친박 지원사격을 등에 업고 있는 정진석 원내대표는 우 수석 국회 출석을 시사해 청와대를 곤혹스럽게 했다. TV토론회에 출마한 전당대회 친박계 후보자 중 일부는 우 수석 사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주요 사안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를 엄호 사격하는 데 몸을 아끼지 않았던 친박 강성 의원들이 이번 우 수석 건에 대해선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는 우 수석 문제가 현 정권은 물론 당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전대를 치른 후 본격 대권 체제로 넘어갈 채비를 하고 있는 당으로서도 우 수석 존재가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본다는 얘기다. 또한 우 수석 개인에 대한 견제론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의 친박 의원은 “우 수석에게로 힘이 쏠리다 보니 친박 내에서도 말이 많았다. 당에는 우 수석 우군이 없다”고 귀띔했다.
야권은 맹공을 퍼붓고 있다. 그 선봉은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맡고 있다. 박 위원장은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내며 우 수석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8월 1일 “우 수석은 정상적 업무수행이 불가능한 사람”이라면서 “우병우 종기를 도려내지 않으면 박근혜 정부 온몸에 고름이 번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친노계 역시 ‘노무현 수사 검사’였던 우 수석과 관련해 수시로 논평을 내며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우 수석 ‘사퇴 불가’를 고수하고 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8월 1일 “(우 수석은) 정상적으로 업무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휴가 복귀 후 첫 국무회의 자리에서 박 대통령 역시 우 수석 거취에 대해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상 우 수석 유임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청와대 한 관계자 역시 “당분간 우 수석 사퇴는 없을 것”이라고 이를 확인해줬다.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우 수석을 안고 가는 것에 대해 정가에서는 여러 관측을 내놓고 있다. 우선 친박 내부에선 박 대통령 ‘인사 스타일’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우 수석 사퇴 요구 여론이 거세다는 것을 박 대통령도 잘 알고 있지만 인사권자로서 ‘떠밀려 하는’ 인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은 한 친박계 전직 의원 말이다.
“지금처럼 여야가 한 목소리로 우 수석을 경질하라고 하면 박 대통령 스타일상 그렇게 하겠느냐. 바꿔도 그 시기는 직접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과거 도마에 올랐던 인물들에 대한 인사를 살펴보면 대부분 그렇게 했다. 박 대통령은 국면전환용 인사는 하지 않는다. 친박계가 인사와 관련해 박 대통령에게 말을 하는 것을 봤느냐. 박 대통령은 본인 외에 누군가가 인사를 가지고 가타부타 언급하는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한다.”
‘우병우 대안부재론’도 들린다. 지난해 1월 민정수석으로 발탁된 우 수석은 박 대통령 신임을 바탕으로 핵심 실세로 급부상했다. 정권 초 ‘부통령’으로 불렸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 비견될 정도였다. 사정기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민정수석이 힘 있는 자리이긴 하지만 우 수석은 역대 그 어느 민정수석보다 파워가 있었다는 게 중론이었다. 처가와 넥슨 간 수상한 부동산 거래가 공개되기 전까지만 해도 우 수석이 박 대통령 ‘순장조’가 될 것이란 사실을 의심하는 이들은 없었다.
특히 우 수석은 친정인 검찰을 비롯해 국정원 경찰 등 핵심 요직에 자신과 가까운 인사를 배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해 우 수석은 사정기관에 대한 장악력을 높였다. 박 대통령과 친박 핵심부가 우 수석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이재광 정치평론가는 “박근혜 정부가 레임덕을 늦추고 정권 재창출을 위해 임기 후반 꺼내들 수 있는 것은 사정 드라이브뿐이다. 이를 위해선 사정기관을 통제해야 한다. 그래서 우 수석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의 한 고위 인사도 “사정 칼날을 휘두르기 위한 것도 있겠지만 권력 누수를 막기 위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갈수록 사정기관들은 정치적으로 움직인다. 대통령 ‘령’이 서겠느냐. 그런데 우 수석이 검찰 인사 등을 통해 이를 막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잘 해온 것 같다. 박 대통령도 이 부분을 높이 산 것으로 들었다. 우 수석이 있다면 적어도 사정기관들로부터 뒤통수를 맞을 일은 없다고 보는 것 아니겠느냐. 또 우 수석이 나간다면 그동안 각 사정기관에서 올라왔던 ‘은밀한’ 보고들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고 전했다.
2014년 11월 불거진 ‘정윤회 문건 사태’ 이후 박 대통령이 민정수석실에 대해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당시 김영한 전 민정수석은 김기춘 전 실장에게 항명파동을 일으키며 물러났다.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4월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출마 당선됐고, 지금은 박근혜 정부 저격수로 활약하고 있다. 우 수석과 함께 민정수석실에서 일했던 조응천 의원은 연일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며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여기서 박 대통령이 민정수석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갈래로 나뉜다. 우 수석만한 인물을 찾기 어렵거나 아니면 우 수석을 믿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친박 핵심 관계자들은 후자에 방점을 찍고 있다. 박 대통령 멘토 그룹 출신의 한 원로 인사는 “어떻게 보면 우 수석은 실세이긴 하지만 친박은 아니다. 박 대통령에 대한 로열티가 검증되지 않았다. 그런데 민감한 내용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우 수석이 현 정부 X파일을 손에 넣고 있는 셈이다. (박 대통령이)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우 수석을 내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 아니겠느냐”면서 “우 수석이 스스로 물러나는 방법 외엔 별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