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12일, 일본 나가노 현의 시오지리. 이카와 하천 근처에서 불에 탄 자동차 한 대가 발견된다. 그 안엔 심하게 불에 탄 한 남자의 사체가 있었고, 자동차에서 7~8미터 떨어진 곳엔 불에 그을린 채 죽은 한 여성이 있었다. 그들은 마치 동반 자살을 한 것처럼 보였고, 경찰도 그쪽으로 몰고 갔다.
하지만 검시 결과는 의외였다. 그들의 폐에선 거의 연기나 그을음 같은 것이 발견되지 않았다. 즉, 그들은 거의 죽은 상태에서 불에 태워진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자의 몸엔 네 군데의 깊은 자상이 있었고, 남자에겐 두개골 함몰이 있었다. 누군가가 그들을 칼로 찌르고 심하게 구타한 후 남자가 소유한 자동차 안에 강제로 집어넣고 불을 지른 것이다.
모모이 노조미는 2001년 데뷔해 2002년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무려 200여 편의 AV를 남겼던 배우다.
데미지를 크게 입은 남자는 차 안에서 나오지 못한 채 불에 타 죽었고, 여자는 차 안에서 탈출을 시도해 강가 쪽으로 몇 미터 정도 가다가 쓰러진 게 거의 확실했다. 여성의 얼굴 부분은 거의 손상되지 않았기에 신원 파악은 쉬웠다. 그녀의 이름은 모모이 노조미. 이 시기 일본의 웬만한 AV 팬들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배우였다.
1978년생(홍보용 나이는 1980년생)으로 사망 당시 24세. 148센티미터의 작은 몸매에 귀여운 얼굴이었던 모모이 노조미는 이른바 롤리타 계열로 분류되던 배우였다. 2002년엔 나가세 아이, 쓰쓰미 사야카, 와카나 이쓰키 등의 AV 배우들과 MINK라는 아이돌 유닛을 결성해 활동을 시작했지만, 머지않아 목숨을 잃고 말았다. 함께 죽은 남자의 이름은 사카이 히로키. 모모이의 고등학교 시절 친구로 2002년에 다시 만나 연인이 되었다. 전자제품 설치 기사 일을 하고 있었다.
의혹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단 그들은 모두 맨발이었고, 모모이의 신발은 이후 사카이의 집에서 발견되었다. 유서는 없었다. 사카이의 집의 컴퓨터는 전원이 켜진 상태였다. 휴대전화도 사라지고 없었다. 등유에 불을 붙여 화재 사건이 났는데, 사건 현장 근처에선 기름을 담았던 용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사카이 히로키의 왼손에 칼이 쥐어져 있었다. 그가 이 칼로 모모이를 찌른 걸까? 하지만 그는 오른손잡이였다. 그날 그들은 모두 누군가를 만날 약속이 있었다. 사카이가 발견된 곳은 뒷좌석 부분인데, 모모이가 면허가 없기에 운전자는 사카이였다. 그런데 왜 그는 뒷좌석에 있는 걸까? 차의 문은 모두 잠겨 있었고, 차 키는 자동차 내부에 있었다. 사카이의 유품엔 필름 한 통이 있었는데, 현상해 보니 사건 당일 두 사람이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있었고, 이때 사카이가 입었던 트레이닝복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이 살해당했다면 범인은 누구일까? 처음엔 모모이 쪽이 관련되어 있을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애인이 생기면서 더 이상 AV를 찍지 않으려 하자 업계 내부에서 제거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은퇴 문제로 소속사인 위너스와 갈등이 있었다는 얘기도 들렸다. 야쿠자 사건이 잦은 나가노 현이기에 범죄 조직이 개입된 이권 문제일 가능성도 있었다. 소속사와 야쿠자가 관련 있다는 설이었고, 그런 이유로 경찰마저 자꾸 자살 쪽으로 몰아간다는 것이었다.
모모이 노조미 출연 AV 표지.
그렇다면 사카이의 금전적 문제가 사건의 이유였던 걸까? 그렇게 보기엔 80만 엔이라는 액수가 너무 적다. 모모이가 갚아주겠다고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 해결해줄 수 있는, AV 1회 출연료 정도밖엔 안 되는 돈이다. 그리고 사카이에게 문제가 있는데, 모모이까지 함께 죽일 이유는 없을 것이다. 만약에 드러나지 않은 채무가 있다면? 그 규모가 상상 외로 크다면? 그리고 모모이가 보증인이었다면? 하지만 이 모든 건 추정일 뿐이다.
사카이의 부모는 아들이 연인을 죽이고 동반 자살한 범죄자로 인식되는 것에 불만을 품었다. 보험회사마저 자살이라는 이유로 보상금 지급을 하지 않았다. 유족은 고소했고, 2003년에 법원은 자살로 보기 힘들며 제3자의 개입에 의한 타살로 보인다며, 보험금 지금을 명령했다. 법적으로 이 사건이 범죄에 의한 타살로 인정된 순간이었다. 모모이의 팬들은 서명 운동을 통해 재수사를 촉구했다. 하지만 경찰은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고, 여전히 그들의 죽음은 미궁 속에 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