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 8·27 전대는 차기 대선 경선 및 야권 발 정계개편의 ‘축소판’이다. 경우에 따라 ‘마이너리그(전대)의 결과’가 ‘메이저리그(대선) 흐름’을 뒤흔들 수 있다. 이미 컷오프에서 ‘각본 없는 드라마’는 연출됐다. 컷오프 이변으로 각 주자들의 셈법이 고차 방정식으로 격상됐다. 그 핵심은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반대편을 지렛대 삼아 갈라치는 전술이다.
8월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대회에서 후보로 확정된 김상곤(왼쪽부터), 이종걸, 추미애 후보가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추 후보의 최대 강점은 당 주류인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계의 물밑 지원이다. 친노계 좌장인 문재인 전 대표는 ‘전대 개입은 없다’며 오더(명령) 정치에 선을 그었지만 친노·친문계의 표심은 추 후보에게 쏠리는 모양새다. 범주류 한 관계자는 “범친노계가 추 후보를 지지하는 흐름은 뚜렷이 감지된다”고 말했다.
실제 문 전 대표 최측근 전해철 의원을 비롯해 친문 강경파인 최재성 전 의원과 진성준 의원, 백원우·김현·배재정·최민희 전 의원 등이 추 후보 지지에 나서며 ‘신 친문 체제’를 형성한 상황이다. 이 중 조직총괄은 최 의원, 전략은 진 의원이 각각 맡았다. 캠프 대변인은 김광진 전 의원이다.
추 후보는 연일 ‘문재인 대세론’을 공격하는 비주류에 맞서 ‘친노 호위무사’를 자처했다. 더민주 8·27 전대 첫 합동연설회(8월 9일)가 열린 제주에서 “당원과 국민이 지지하는 1등 후보를 흠집 내고 상처 내는 것은 공정도 혁신도 아니다”고 일갈하는가 하면 앞서 국가정보원의 2012년 대선 불법 개입 의혹을 고리로 박 대통령의 탈당 및 내각 총사퇴, 거국 중립 내각 구성 등을 요구했다. 새누리당의 대선 불복 프레임에는 ‘적반하장’이라며 맞불을 놨다. 친노·친문 지지층에 대한 강력한 러브콜로 보인다.
호남 표심 공략에도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한때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 가신그룹인 ‘동교동계’와 소원한 관계였던 추 후보는 전대 초반부터 ‘호남 며느리론’을 앞세워 호남 공략에 돌입했다. 강점인 당 주류의 지지는 극대화하고 비교열위인 호남 공략에는 여성 후보를 앞세운 ‘감성전략’으로 나선 셈이다. 당내 전망은 엇갈린다. 추 의원 측은 “호남도 추미애 지지”라며 자신감을 드러낸 반면, 비주류 한 관계자는 “현재는 호남에서도 삼등 분할하는 분위기”라고 호남 대세론에 선을 그었다.
약점도 있다. 이분법적 프레임과 친노·친문의 분화다. 추 후보는 본격적인 전대 판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문심 구애작전’에 나서면서 ‘친노 vs 비노’ 프레임으로 전대 판을 짰다. 한발 더 나아가 ‘김종인 vs 반김종인’ 프레임도 구축했다. 김상곤·이종걸 후보가 ‘김종인 역할론’에 긍정적인 인식을 하는 것과는 달리, 추 후보는 이슈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각을 세웠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김종인 책임론을 공개적으로 거론했고, 앞서 5월 정국에선 “비대위 체제 유지는 호남 참패”라며 김 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범주류 한 관계자는 “(추 후보 측근들이) ‘김종인 vs 반김종인’ 프레임을 꺼내 든 것은 전형적인 이분법적 사고”라며 “오직 내 편과 반대편만 있는 이분법적인 정치로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며 “차기 대선 국면에서 당이 쪼개질 수도 있다”고 일갈했다. 이른바 친노·친문계의 ‘배제 리더십을’ 비판한 것이다. 한 평론가는 추 후보 전략에 대해 “김 대표와 각을 세우더라도 ‘김종인 체제’에 비판적인 10만 온라인 당원을 안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 대표는 8월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대 컷오프에서 추 후보와는 눈을 맞추지 않는 등 싸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최근 김 대표는 측근들에게 전대 과정에서 불거진 계파 구도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전대 전 향후 행보 및 대선 플랫폼 등에 관한 구상을 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배제 리더십’이 당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다. 이는 컷오프에서도 나타났다. 친노·친문계가 추미애·김상곤 후보로 양분하고 비주류 표심을 이 후보에게 잠식당한 송 후보는 양강 구도에서 밀려나 끝내 컷오프 탈락했다. 친노 패권주의를 기반으로 한 ‘전략적 배제 투표’가 승부를 가른 것이다. 비주류 한 관계자는 86그룹의 대표주자로 나선 송 후보가 더민주 8·27 전대 컷오프에서 탈락하자 “당을 성전으로 만들려고 하느냐”며 당 주류를 정면 공격했다. ‘주류 패권주의 공고화→친문 친정체제 구축→원심력 증폭→야권 발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한 평론가는 이를 ‘친노계가 촉발한 게임의 룰 오작동’으로 표현했다. 친노·친문계의 포섭 없이는 당내 경선을 뚫을 수 없는 ‘게임의 룰’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당시 친노 벽에 부딪혀 무너진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 대표적이다. 표면적으로는 ‘문재인 친정 체제’가 더욱 확고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류는 분화 중이다. ‘추미애 vs 송영길’ 양자구도 때도 갈라졌던 범주류 표심은 친문계로 분류되는 김 후보의 등장으로 분화의 길을 걸었다. 4·13 총선을 거치면서 범주류 위력은 강화됐지만, 계파 결속력은 약화된 셈이다.
현재 더민주 내 범주류는 70여 명이다. 이 중 친노이면서 친문(친노·친문계)계는 20여 명선이다. 대표적으로는 김경협 김경수 윤호중 윤후덕 박범계 전해철 황희 의원 등이다. 이번 총선에서 문 전 대표가 영입한 친문계 인사는 13명이다. 이들은 이른바 ‘더벤저스’(더민주+어벤저스)로 불린다. 차기 당권주자인 추미애 의원과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이면서 친문계로 분류되는 유은혜 의원 등도 있다. 여기에 정세균계와 86그룹 강경파 등을 합치면 범주류는 당 세력분포의 70%에 육박한다.
친노·친문 분화의 최대 수혜자는 김 후보다. 범주류 표심을 추 후보와 양분한 김 후보는 기초자치단체장과 원외위원장, 호남지역 표심 등 ‘지지세력의 스펙트럼’이 넓다. 손학규계인 우원식 의원과 자치분권민주지도자회의 등이 김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 컷오프에서 탈락한 송 후보가 타 후보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하층부 그룹에서 김 후보를 물밑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86그룹 등 일부 비문그룹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새누리당의 ‘이정현호’ 출범으로 ‘호남 대표론’이 강화된 것도 김 후보에게는 호재다. 보수정당 사상 첫 호남 대표인 이 대표 체제의 반작용이 부상할 경우 반박근혜 성향의 ‘진보성’과 함께 ‘호남 대표론’에 대한 갈구가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의 아킬레스건은 원외 인사라는 점이다. 전직 의원도 아닌 단 한 번도 현역 배지를 달지 못한 김 후보가 차기 대선 정국을 이끌 제1야당 대표로 적합하냐는 비판 여론이 끊이지 않는다. 더민주 전 당직자는 “김 후보가 친노·친문 프레임을 어떻게 정면 돌파하고 당의 아킬레스건인 중도로의 외연 확장을 꾀할지가 관건”이라며 “두 가지에 실패한다면 제2 친문 호위무사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컷오프에서 ‘비주류 반란’을 꾀한 이 후보의 위세도 만만치 않다. 본선이 ‘주류 2 vs 비주류 1’ 구도로 짜이면서 비노·비문 표심 공략에 청신호가 켜졌다. 또한 ‘7대 3’ 구도인 상층부(국회의원 등)의 세력구도와는 달리,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경우 이 같은 불균형점이 중위로 수렴한다는 게 이 후보 측 분석이다. 전·현직 의원 중에선 김기준 전 의원과 이상민 의원이 돕고 있다.
야권통합 등 빅텐트를 골자로 하는 야권 발 정계개편을 실질적으로 이끌 수 있는 후보라는 점도 강점이다. ‘더민주 샌더스’를 꿈꾸는 그는 “통합의 적임자”를 자처한다. 수도권 5선으로, 더민주의 약점인 중도 외연 확장성의 보완작용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비주류 대표주자로서의 위상이 약한 데다, 대중성에 대한 소구력이 낮은 점은 극복 대상이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친문(세력), 호남(지역), 2040표심(세대) 등이 전대 변수”라며 “남은 기간 각 주자들의 전략이 총동원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
송영길 탈락 대이변 속살…86그룹 호남 한계 드러났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다.” 더불어민주당 한 관계자가 8·27 전당대회 예비경선(컷오프)에서 송영길 후보가 탈락한 직후 던진 말이다.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의 맏형 격인 송 후보가 끝내 컷오프를 넘지 못했다. 대이변이다. 애초 당 안팎에서 꼽은 2강은 송 후보와 추미애 후보였다. 4·13 총선 직후 당권 도전을 천명했던 그는 초반부터 호남 공략에 사활을 걸었다. 호남에 잔뼈가 굵은 보좌직원을 채용하는 등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송 후보는 “당 대표가 되면 호남 인사를 당직에 배려할 것”이라며 호남에 강한 러브콜을 보냈다. ‘호남 대안론’으로 부상하기 위해 ‘올코트프레싱’(전면 압박)에 나선 셈이다. 그러나 참패했다. 총 네 명의 당 대표 후보 중 단 한 명만이 떨어지는 8·27 전대 컷오프에서 처참한 패배를 맛봤다. 인천시장 출신의 수도권 중진 위상도 흔들렸고, 우상호 원내대표 선출 이후 재평가받았던 86그룹의 한계론도 불거졌다. 송 후보의 컷오프 요인은 ‘호남 대안론’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결과다. 호남에서 확고한 포지션을 확보하지 못하자, 범주류의 전략적 배제 투표에 일격을 당했다. 더민주 8·27 전대의 변수는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계 등 세력구도와 호남으로 대표되는 지역구도 등으로 비교적 단순했다. 범주류 표심이 추 후보와 송 후보로 양분된다고 가정하면, 호남에 올코트프레싱을 건 송 후보가 유리하다는 게 내부 판세분석의 핵심이었다. 돌출 변수가 발발했다. 김상곤·이종걸 후보의 출마 선언. 송 후보의 이 전략은 차질을 빚었다. 친노·친문계는 추 후보와 김 후보를, 비주류는 이 후보를, 컷오프 선거인단 363명 중 20%가량인 기초자치단체장은 김 후보를 각각 지지했다. 세력구도에서 ‘호남 며느리론’을 앞세운 추 후보의 표심 공략도 만만치 않았다. 사실상 인천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비교우위를 점하지 못한 셈이다. 범주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86그룹의 호남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86그룹의 우상호 원내대표와 이인영 의원 등도 앞서 전대 때마다 호남 공략에 실패했다. 실제 2012년 대선 전 열린 민주통합당 6·9 전당대회 당시 우 원내대표는 광주·전남 순회투표에서 978명의 투표인 중 111표에 그치면서 6위에 머물렀다. 우 원내대표보다 앞선 순위에는 강기정(488표), 김한길(437표), 이해찬(371표), 추미애(282표), 이종걸(127표) 후보 등이었다. ‘문재인·박지원·이인영’ 후보 간 3파전이었던 지난해 새정치민주연합 2·8 전당대회 때도 86그룹의 대표주자로 나선 이 후보는 광주·전남에서 ‘문·박’ 후보보다 열세였다. 이는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 피 수혈론’으로 여의도 급행열차를 탄 이들이 노무현 정부 시대를 거치면서 운동권 선배들의 ‘하청정치’에 머물렀다는 비판과 무관치 않다. 역대 선거 때마다 ‘전략적 투표’를 호남 민심이 야권의 혁신그룹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실패한 비전 없는 86그룹을 지지하기 쉽지 않다는 분석과 맥을 같이하는 지점이다. 더민주 한 보좌관은 “86그룹이 계파정치에 그치느냐, 이념과 가치로 재편하는 정파그룹으로 탈바꿈하느냐에 따라 향후 역할론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