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새만금 투자 백지화’ 논란 직간접 관여 정황 드러나 파장 예고
-농림수산식품부 1차관 당시 ‘삼성 23조 원 투자’ 골자로 한 협약서 서명
-지역 관가와 정치권 ‘정치적 사기’ 규정... 장관청문회 철저한 진상 규명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단행한 개각 인사에서 삼성그룹 새만금 투자유치 무산과 관련된 김재수 농수산식품공사 사장을 신임 농림축산식품부장관에 내정하자 지역민심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재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15.9.15 ⓒ연합뉴스
야권 및 지역정치권에서도 장관 청문회 과정에서 철저한 진상 규명을 벼르고 있는 등 ‘삼성그룹 새만금 투자 백지화’ 논란이 재점화될 전망이다.
김재수 내정자는 농림부 주요 과장을 두루 역임하고, 농림부 차관과 농촌진흥청장 등을 지낸 농축산식품 분야의 정통 관료다. 16일 청와대 김성우 홍보수석은 “김 농림장관 내정자는 30여년 간 농림축산식품 분야에 재직하면서 풍부한 경험과 강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농림축산식품 분야를 새로운 성장 산업으로 육성하고 경쟁력을 제고해 농촌경제의 활력을 북돋아나갈 적임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내정자가 장관직에 취임하기도 전에 삼성그룹 새만금 투자 문제에 있어서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정황이 드러나 적잖은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1차관이었던 김 내정자는 2011년 4월 27일 국무총리실에서 임채민 국무총리실장과 김순택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김정관 지식경제부 에너지자원실장, 김완주 전북도지사 등 5명과 함께 서명했다. 이는 사실상 국무총리실, 농림수산식품부, 지식경제부 등 정부가 투자 이행을 보증한 자리였다.
삼성그룹 새만금 투자양해각서 사본 <장세환 전 국회의원 제공>
협약(MOU)은 삼성이 2021년~40년까지 3단계에 걸쳐 새만금 신재생에너지 용지에 풍력과 태양전지 등 그린에너지 산업에 무려 23조 원을 투자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1차로 2021년부터 2025년까지 7조6000억 원을 투자해 풍력발전기, 태양전지 생산기지, 그린에너지 연구개발(R&D) 센터 등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고용인원만 2만명에 달한다는 예상도 나왔다.
상대적 낙후감이 심한 전북으로서는 산고 끝에 얻는 ‘옥동자’로 받아들여졌다. 소식을 접한 전주 등 전북지역은 곧바로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도내 곳곳은 전북도가 내건 현수막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하지만 이후 삼성그룹은 후속 조치를 거의 진행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5월 17일 삼성 미래전략실 소속 상무 2명이 전북도청 이형규 정무부지사를 만나 ‘투자할 여력이 없다’는 내부 방침을 전달했다. 지난 2011년 전북도, 국무총리실과 함께 투자협약 양해각서(MOU)를 체결로 무려 5년여를 끌어온 삼성의 전북 투자가 사실상 백지화된 것이다.
지역 관가와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정치적 사기’로 규정하고 있다. LH 본사 경남 진주 이전으로 난처한 처지에 몰린 정부가 삼성의 전북 투자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이 말이 맞다면 김 내정자와 농림수산식품부는 국무총리실, 지식경제부 등과 함께 전북도민을 기만하는 데 일조했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전북 이전 대상인 토지공사를 주택공사와 통합, 경남 진주혁신도시에 줬다. 그 대가로 전북엔 수익성이 낮은 국민연금공단을 던졌다. 당연히 명백한 전북 죽이기, 경남 특혜라며 전북의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삼성을 새만금 투자에 끌어들인 건 자신들이 LH공사를 빼앗는 바람에 나빠진 전북 민심을 달래려던 임시방편이자 꼼수로 해석됐다. 당시 전북 지역에서는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문제가 한창 거론되던 때에 LH의 전북 이전이 무산되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극에 달하던 분위기였다.
이에 정부와 정치권이 지역 민심을 달래기 위해 삼성그룹의 새만금 투자를 이끌어 냈다는 것이 전북 정치권 일각의 시각이다.
정치권에서는 당시 LH를 경남으로 이전하는 대신 전북도민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정부가 삼성을 새만금에 투자하도록 했다는 ‘투자 강요설’이나 ‘빅딜설’ 등의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처럼 삼성의 전북 투자에 대한 불신과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여기에 관여한 인물을 개각 인사에 포함시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역사회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청와대가 악화된 전북민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김 내정자를 ‘모시듯’ 농림장관에 기용한 것은 삼성의 투자 백지화로 악화된 지역민심을 아예 모르거나 ‘인사검증이 부실하다는 현실을 만천하에 공포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빈축을 받고 있다.
김 내정자의 부적절한 처신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그는 당시 협약식에 참여했던 5명 중 유일하게 공직사회에 머물고 있는 인사다. 이에 지역사회는 김 내정자가 최소한 협약체결 경위 등에 대해서는 설명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같은 지역사회의 기대와는 달리 김 내정자는 지금까지 줄곧 “공직자로서 할 말이 없다”며 함구로 일관하며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일요신문>은 지난달 초부터 수 차례에 걸쳐 김 내정자 측에 공식 입장 표명을 요청했으나 현재까지 알려오지 않고 있다. 다만 aT관계자 등을 통해 “(김 내정자가) 당시 새만금사업 주무부처 입장에서 삼성의 투자를 긍정적으로 보고 협약식에 참여했고, 삼성의 공신력을 고려할 때 결과가 이렇게 나쁘게 나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며 “이해 해달라”는 입장을 내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전북 정치권은 장관청문회에서 철저한 진상파악과 전북도의회 차원의 특위 구성 추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양용모 전북도의원은 “삼성의 새만금 투자협약은 국무총리실과 중앙부처들이 공동으로 주관한 만큼 기업의 일반적인 그것과는 성격이 다르다”면서 “삼성의 투자협약 체결은 정부가 애초 전북으로 이전하기로 했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경남으로 넘기면서 악화한 도내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사기극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역출신 국회의원들의 협조를 받아 김 내정자에 대한 장관 청문회에서 투자협약 경위 등을 철저히 따지고, 다음 회기가 열리는 9월에 특위 구성 결의안을 발의해 진상을 파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8.16개각을 두고 야권에선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증한 부실 불통 개각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 내정자를 둘러싼 갖가지 의혹들이 재부상할 경우 우 수석의 부실 검증 논란과 맞물려 가시밭길 인사청문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