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미국 청춘스타 존-에릭 헥섬. 그는 촬영 대기 중 총기 오발 사고로 27년의 짧은 생을 마쳤다.
1957년에 뉴저지에서 태어난 존-에릭 헥섬은 노르웨이 혈통답게 북구의 신비한 느낌을 지녔던, 여기에 운동으로 다져진 몸과 섹슈얼한 느낌까지 갖추었던 배우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했지만, 그의 관심사는 조금씩 연예계 쪽으로 향했다. 지역 라디오 DJ로 마이크 앞에 섰고, 학교에선 풋볼 선수로 활약했으며, 연극 무대에 단역으로 서곤 했다. 대학을 졸업한 1980년, 그는 본격적으로 배우 수업을 받기 위해 뉴욕 브로드웨이로 향한다. 생계를 위해 낮엔 아파트 청소부로 일하고 밤엔 무대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시절, 우연히 그를 발견한 사람은 밥 르몽드였다. 당대 최고의 섹시 청춘 스타였던 존 트래볼타의 매니저였던 르몽드는 헥섬을 보자마자 빅 스타로 클 수 있는 가능성을 직감했다. 그는 헥섬을 설득했고, 결국 그는 1981년 LA에 도착한다.
첫 오디션은 랜들 클라이저 감독의 <썸머 러브스>(1982)였다. <그리스>(1978)의 대흥행으로 당시 상한가를 치고 있던 클라이저 감독의 오디션에는 수많은 사람이 몰려왔고, 결국 피터 갤러허가 역할을 따냈지만 헥섬에게도 소득이 있었다. 업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존재를 인식한 것. 이후 그는 NBC의 TV 시리즈 <타임머신>(1982~83)의 주인공으로 발탁되는데, 신인으로선 파격적인 행보였고 단숨에 스타덤에 올라 주급 1만 달러를 받게 된다.
TV 영화 <남자 모델 만들기>(1983)에선 1970~80년대를 대표한 섹시 스타 중 한 명인 조앤 콜린스의 상대역이 되었고, 첫 영화 <더 베어>(1984)에선 풋볼 선수로 등장했다. 그리고 1984년 그는 CBS의 새로운 TV 시리즈 <특수공작원 아이언맨>의 주인공이 된다. 스스로 “인디아나 존스와 제임스 본드와 미스터 마구와 슈퍼맨을 합한 캐릭터”라고 표현한, 모델로 가장한 CIA 요원 ‘맥 하퍼’는 헥섬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옷이었다. 강한 힘과 보디빌더 같은 몸과 핸섬한 외모를 지닌 헥섬은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헥섬의 장기는 다섯 명의 환자에게 기증되었다.
공포탄은 일반 총탄에서 탄두 부분을 제거하고 그곳에 종이나 플라스틱 등으로 만든 보충재를 채운 것이다. 발사된 탄두 같은 파괴력을 지니진 않지만, 추진력은 일반 총알과 비교할 때 큰 차이 없었다. 탄두 대신 보충재라 해도, 가까운 곳에서 맞으면 살점이 떨어져 나갈 정도의 충격은 줄 수 있으며, 관자놀이 같은 급소에 정확히 맞으면 치명적인 무기가 되는 것이었다.
5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지만 헥섬은 6일 후인 1984년 10월 18일 뇌사 상태에 빠졌고,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인정했다. 장기 기증을 통해 헥섬의 심장과 신장과 각막은 다섯 명의 환자를 통해 되살아났다. 장례식을 치른 후 헥섬의 유족은 방송사를 상대로 고소했고, 법원은 사고사를 인정해 합의하도록 했다.
갑작스러운 헥섬의 죽음으로 <특수공작원 아이언맨>은 먼 곳으로 미션을 위해 떠난 것으로 처리되었고, 앤토니 해밀턴이 잭 스트라이커라는 캐릭터로 투입되었지만 드라마는 시즌 1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헥섬이 맡은 잭 하퍼라는 캐릭터가 미션 수행 중에 사망했다는 소식이 등장하며, 이때 제작자 글리 라슨이 쓴 추모사가 흘렀다.
“별이 사라지더라도 그 빛은 우주를 가로질러 수년 동안 빛난다. 존-에릭 헥섬은 10월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삶은 영원히, 영원히 이어지질 것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