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최근 국회가 자리 잡고 있는 여의도엔 풍수 전문가들 모습이 부쩍 자주 눈에 띈다. 큰 꿈을 꾸는 정치인들 요청을 받고 ‘기’가 좋은 사무실을 찾기 위해서다. 이는 곧 잠룡들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통상 대선 일 년여 전 캠프를 출범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추석 이후 차기 주자들의 행보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주요 3당의 알람시계 역시 내년 대선으로 맞춰져 있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대선 정국이 시작된 셈이다.
# 반기문 낙하산 투척 성공할까
친박 진영 고민은 ‘포스트 박근혜’가 없다는 데 있었다. 반면, 비박계에선 정권 초부터 김무성 전 대표가 유력한 차기 주자로 거론되며 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다. 2014년 친박 좌장 서청원 의원과의 전당대회 맞대결에서 승리하며 김 전 대표 주가는 상한가를 쳤다. 친박계의 박 대통령 후계자 찾기가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한 친박 의원이 사석에서 건넨 말이다.
“30시간의 법칙이란 말이 있지 않았느냐. 김 전 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결국은 꼬리를 내린다는 것을 뜻했다. 그런데 친박으로선 오히려 이게 더 불만이었다. 애초에 하지 않았으면 될 것을 자꾸 치고 빠지면서 놀린다는 느낌이었다. 김 전 대표를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굳어진 계기가 됐다. 그래서 다양한 후보군을 염두에 두고 물색했다.”
‘김무성 대항마’로는 당초 친박 내부 인물들이 오르내렸다. 좌장 최경환 의원과 충청권의 정우택 의원, 황교안 총리 등의 이름이 들렸다. 그러나 김 전 대표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설령 예선을 통과하더라도 본선에서 야당 후보를 이기긴 힘들 것이란 반응이 뒤따랐다. 이때 급부상한 인물이 ‘충청 대망론’을 등에 업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다. 반 총장은 대선 출마설이 제기되자마자 기존 후보들을 제치고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그 후 친박 러브콜은 노골적으로 이어졌다. 핵심 친박 의원들이 유엔본부가 있는 미국을 방문해 반 총장과 은밀히 접촉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이 해외 순방 일정 중 반 총장과 여러 번 조우한 것을 두고서도 정치권 관계자들은 친박과 반 총장 간 연대설을 뒷받침하는 장면이라고 추측했다.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반 총장 역시 지난 5월 방한에서 김종필 전 총리 등을 방문하며 사실상 대권 행보를 보였다.
비박계는 고민이 깊다. 친박이라는 조직에 지지율이라는 초강력 무기까지 장착한 반 총장과 겨뤄서는 승산이 높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반 총장 등장 전까지만 해도 여권의 유일무이한 잠룡이라고 할 수 있었던 김 전 대표 측은 더욱 어두운 분위기다. 김 전 대표계의 김성태 의원이 9월 7일 “당내 민주적인 경선이 제일 중요하다”며 외부 인사인 반 총장의 낙하산 투척을 경계하고 경선 참여를 우회 압박한 것은 이를 단적으로 나타내준다.
김 전 대표 외에도 유승민 의원 역시 비박계 차기 주자군이다. 김 전 대표와 유 의원은 ‘K-Y‘라인으로 불리며 당 대표와 원내대표로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또 김문수 전 경지지사와 홍준표 경남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대선 출마를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친박이 사실상 반 총장 단수로 정리되는 수순으로 가고 있다면 비박계에선 여러 후보들이 난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
# 문재인 독주할수록 경선 흥행실패 우려 커져
대권 재수에 나선 문재인 전 대표의 당내 입지는 현재 차기 주자들 가운데 가장 굳건하다. 더민주 주류 친노 세력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문 전 대표는 8·27 전당대회 이후 더욱 세를 불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적어도 예선만큼은 무혈입성하지 않겠느냐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그만큼 당내 경쟁자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 지난 2012년 대선 때보다 문 전 대표의 권력 의지가 단단해졌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문 전 대표 힘이 세질수록 패권주의 논란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이는 문 전 대표 대권 행보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또 문 전 대표 독주는 경선 흥행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 친노 의원은 “새누리당도 슈퍼스타 K 방식을 도입한다는데 우리도 특단의 대책을 내놔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문 전 대표 승리가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 누가 들러리를 서겠다고 나오겠느냐. 이 지점이 최대 고민”이라고 귀띔했다.
그나마 야권에선 문 전 대표와 겨룰 수 있는 후보로 박원순 시장이 유력하게 꼽힌다. 박 시장 역시 대권 출마 쪽으로 결심하고 물밑에서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재광 정치평론가는 “인지도나 지지율, 경력 등 여러 면에서 박 시장은 문 전 대표에 뒤지지 않는다. 당내 조직이 문 전 대표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세이긴 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바람만 분다면 박 시장으로서도 한 번 해볼 만한 게임”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사실상 대권 출마를 선언한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도 더민주 잠룡들이다. 박 시장을 포함해 더민주의 내로라하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모두 문 전 대표를 상대로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또 대구에서 배지를 단 김부겸 의원도 청와대 입성을 노리고 있다. 이들 중 누가 친노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비문계와 손을 잡을지도 관전 포인트다. 그러나 이들이 문 전 대표의 ‘페이스 메이커’ 역할에 그칠 것이란 비관론도 나오고 있다.
# 안철수, 비안세력에 힘 실려 고민
안철수 전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옛 더민주)에서 나와 국민의당을 창당할 때만 하더라도 부정적 전망이 주를 이뤘다. “안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은 끝났다”라는 과격한 목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안 전 대표 승부수는 통했다. 국민의당은 목표인 원내교섭단체 20석을 훌쩍 뛰어넘어 38석을 따내며 3당으로 올라섰다. 한 자릿수에 머물던 안 전 대표 지지율도 치솟았고, 대권주자로서의 정치력을 입증해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안 전 대표는 국회 개원을 앞두고 캐스팅보트를 쥔 당의 수장답게 주요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주요 당직에 친안인사를 발탁하며 당에 대한 장악력도 높였다. 그런데 리베이트 의혹 사건이 불거졌다. 또 이를 대응하는 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결국 안 전 대표는 대표 자리를 내주며 2선으로 물러났고, ‘새정치’ 이미지도 훼손됐다. 안 전 대표로선 모처럼 국정 중심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었던 좋은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안 전 대표가 주춤한 사이 당내 호남 의원들을 중심으로 하는 비안 세력에게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그 선봉엔 박지원 원내대표가 있다. 이들은 안 전 대표 이외에 차기 주자를 찾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당내 경선을 발판으로 정치적인 영향력을 얻어 보겠다는 속내다. 국민의당의 한 비안계 의원은 “몇몇은 국민의당을 일컬어 안철수당이라고 하는데 이런 식이라면 대선은 희망이 없다. 새로운 인물들을 경선에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국민의당 비안계에선 정계복귀가 임박한 손학규 전 통합민주당 대표를 향해 삼고초려하고 있다. ‘안철수 VS 손학규’ 양자구도로 경선을 치른 뒤 대선을 준비해야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안 전 대표 최측근 인사는 “손 전 대표 같은 훌륭한 분이 들어와 준다면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안 전 대표도 본인을 추대해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헌 당규에 따라 경선에 참여할 것”이라면서 “안 전 대표가 당을 사당화해 대선 경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 한다는 것은 (비안계의) 음해에 불과한 소설”이라고 일축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문-안에서 반-문으로…대권후보 6개월간 지지율 변화 선거에서 여론조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치권이 여론조사 결과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일은 2017년 12월 20일.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자료를 토대로 대권 잠룡들의 최근 6개월 동안 지지율 변화를 분석했다. 3월은 문재인 전 대표의 달이었다. 3월 1주차 여론조사에서 21.3%의 지지율을 기록한 문 전 대표는 김무성(17.8%) 전 새누리당 대표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11.1%)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당시 문 전 대표는 필리버스터 정국을 발판 삼아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한편, 오 전 시장이 안 전 대표를 처음으로 누르고 빅3에 합류한 시기이기도 하다. 4월은 안 전 대표가 부활하고 문 전 대표의 ‘전성기’가 이어진 기간이다. 안 전 대표가 창당한 국민의당은 4․13 총선에서 38석을 얻어 녹색 돌풍을 일으켰다. 총선 직후 실시한 4월 2주차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 전 대표(24.7%)가 여전히 1위를 차지했고 안 전 대표는 자신의 최고 지지율(18.9%)을 경신하며 오 전 시장(10.1%)을 3위로 밀어냈다. 4월 3주차 여론조사에선 문 전 대표가 자신이 기록한 최고 지지율(27.9%)에 0.9%p 차로 다가서며 15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5월은 ‘문․안’의 양강 구도가 정착된 달이다. 문 전 대표(27.1%)는 리얼미터 5월 1주차 여론조사에서 1위를 지켰다. 하지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대선출마 소식이 전해지자 문 전 대표(21.5%)의 5월 4주차 지지율은 1주차보다 5.6% 하락했다. 안 전 대표(16.1%)는 같은 기간 문 전 대표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두 사람은 5월 내내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6월은 ‘반기문 대망론’이 문재인 전 대표 아성을 깬 달이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처음 이름을 올린 반 전 총장(24.1%)은 6월 1주차 여론 조사에서 문 전 대표(23.2%)를 오차범위 내인 0.9%p 차이로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문 전 대표는 반 총장에 밀려 2위로 내려앉으며 20주 연속 이어오던 선두 자리를 내줬다. 6월 내내 지지율 1위를 내달린 반 총장(23.4%)은 6월 5주차 여론 조사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반 총장에게 밀린 문 전 대표(19.3%)의 지지율이 10% 대로 주저앉은 시기다. ‘반․문’ 양강 구도는 7월에도 이어졌다. 7월 1주차 여론조사에서 반 총장(23.0%)은 문 전 대표(19.5%)를 2.5%p차로 따돌렸다. 7월 3주차 조사에서 문 전 대표(19.9%)는 반 총장(20.2%)과의 격차를 좁혔다. 결국 문 전 대표는 7월 4주차 조사에서 반 총장을 밀어내고 9주 만에 1위 자리를 탈환했다. 8주 동안 이어진 반 총장의 지지율 고공행진은 마침표를 찍었다. 8월엔 새누리당 8․9 전당대회 컨벤션 효과가 반 전 총장 지지율 오름세를 견인했다. 8월 1주차 조사에서 반 총장(20.3%)은 문 전 대표(19.0%)를 제치고 다시 1위에 올랐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등 친박 지도부의 출범과 동시에 반 총장의 지지율도 올랐다. 반 총장(24.8%)은 8월 3주차 조사에서 문 전 대표(19.2%)와의 격차를 벌렸다. 반면, 더민주의 8․27 전당대회에서 친문 지도부가 출범하자 8월 4주차 문 전 대표(17.9%)의 지지율은 하락했다. 같은 시기 반 총장(23.5)은 문 전 대표에 우위를 점했다. 8월 5주차 조사에서도 반 총장(21.8%)은 문 전 대표(19.0%)를 제쳤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