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저녁 경주 지역에서 두 차례의 지진이 발생했다. 50km 떨어진 대구시 수성구의 한 아파트에서 지진에 놀란 주민들이 쉽사리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대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요신문] 지난 1978년 우리나라가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큰 규모인 5.8의 지진이 지난 9월 12일 경북 경주에서 일어났다. 큰 규모의 지진이었기에 수도권, 강원도 등 다른 지역에서도 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어느 정도는 흔들림이 느껴질 정도였다. 추석 연휴 기간까지 약 5000 건의 재산 피해가 집계됐고 진앙지가 ‘역사의 도시’ 경주인 만큼 23건의 문화재 피해도 있었다. 최초 지진 이후 350여 회의 여진이 이어져 주민들의 불안감이 지속되고 있다.
#꾸준히 지진 발생해온 한반도, 빈도 늘고 있다?
지진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 판구조론에 따른 판의 움직임이 가장 유력하게 꼽힌다. 유라시아판, 태평양판, 필리핀판 등 크게 15개로 이뤄진 지구상의 판 가운데 한반도는 유라시아판 내부에 속해있다. 지진은 주로 판과 판의 경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판 내부에 위치한 한반도는 그동안 ‘지진 안전지대’로 분류돼 왔다. 지진의 95%는 판의 경계에서, 5%는 판 내부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규모 5.0 이상의 강진이 일어나며 ‘대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지질 전문가들은 이번 지진이 지난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어난 연쇄 지진의 영향으로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태평양판, 필리핀판, 인도판 등의 움직임으로 힘이 가해지며 한반도가 속한 유라시아판이 자극을 받았다는 것. 전문가들은 그간 한반도 지질이 축적된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움직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 한반도에서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것이 처음이 아니다. 이번 지진이 관측 이래 최대 규모이자 전국으로 확산되며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정도였기 때문에 더욱 큰 관심을 받고 있을 뿐 이전에도 지진은 계속돼왔다.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에서는 각각 97회, 84회, 490회 지진 관련 기록이 있을 만큼 한반도 내 지진은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 지진 관측이 시작된 이후로도 1978년 충남 홍성, 2003년 인천 백령도, 2004년 경북 울진 등에서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있었다.
지진 빈도가 높아지며 더 큰 지진이 올 수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상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의하면 1978년부터 2014년 9월까지 경주 일대에서 38번의 지진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10년 단위로 기간을 나눠보면 81년도부터는 3회, 91년도부터는 12회, 2011년부터 2014년 9월까지는 14회가 발생해 빈도가 도드라지게 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진동을 느끼고 무거운 가구가 움직인다는 규모 5.0 이상의 강진 빈도도 늘고 있다. 국내 규모 5.0 이상 지진은 총 9번이 관측됐다. 이 중 올해에만 3번이 일어나 강력한 지진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백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헌과 재현 주기를 연관 지어 볼 때 부산·울산·경주 지역에 대형지진의 재현 주기가 돌아온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번 경주 지진보다 큰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우려했다.
기상청의 국내지진 통보. 기상청 홈페이지 캡처.
이번 지진은 양산단층에서 시작된 움직임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단층은 지각 외부 힘에 의해 두 조각으로 끊어져 어긋난 지질 구조를 뜻한다. 영남권에 산재해 있는 50~60여 개의 단층 중 부산에서 시작해 양산, 경주를 거쳐 울진까지 이어진 길이 200km 규모의 단층이 ‘양산단층’이라 불린다. 이곳은 학계에서 그동안 논란이 지속됐던 곳으로 이번 지진을 통해 활성단층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진연구센터는 경주 지진이 주향이동단층에 의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주향이동단층은 단층면을 중심으로 두 개의 땅덩어리가 양쪽에서 서로 밀거나 당기는 움직임이 아닌 수평방향으로 움직임을 갖는 단층이다.
양산단층에서 또 다시 지진이 일어난다면 지진 예측에 있어서 단층의 정확한 모양이나 규모의 파악이 중요하다. 홍태경 연세대학교 지구시스템공학과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양산단층이 하나로 이뤄져 있다면 최대 발생 규모는 이번보다 커질 수 있고 분절돼 있다면 발생하는 지진 규모도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 2010년 25개 단층을 심층 조사하고 활성단층 지도 제작에 나섰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일부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어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도권도 안심 못 한다
경주 지진의 여파로 약 300km 거리의 경기북부지역까지 진동이 전해지기도 했다. 지난 12일 경기북부지역 소방당국에는 1800여 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서울에서도 마포, 구로, 강동 등 전역에 걸쳐 ‘지진이 일어났다’는 제보가 잇따랐다. 지진을 실감한 주민들은 공포감에 떨었고 ‘수도권도 지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불안감이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수도권에서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일어날 확률은 낮지만 안심은 금물이라고 말한다. 지진은 오랜 기간에 걸쳐 데이터화된 누적 자료를 토대로 예측되지만 한반도에서는 그동안 지진이 드물어 정확한 예측은 힘들기 때문이다.
이번 지진으로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규모 2~3 정도의 진동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수도권에서 실질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4~5 정도의 진도가 있으려면 경상도 동해안 지역에서 최소 규모 6.5 이상의 지진이 있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관련해 고윤화 기상청장은 13일 긴급 당정회의에서 “6.0 초반을 넘는 지진은 언제든 가능성이 있지만 6.5 이상 지진은 희박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진이 영남지방이 아닌 수도권 일대에서 시작될 가능성도 있다. 삼성방재연구소 이호준 박사는 “수도권에서 지진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경주 지진은 한반도 내륙 어디서든 강한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자연재해와 관련해선 어떠한 가능성도 열어두고 보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또한 수도권은 정부 차원의 조사가 있었던 영남지방과 달리 땅 속 단층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것으로 알려져 지진 예측과 관련 피해 예방에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