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2월 박 전 대표의 생일을 축하하는 ‘박사모’ 등 팬클럽. | ||
인터넷 팬클럽의 공방이 오프라인으로 번질 기미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감지돼 왔다. 지난해 9월. 대구의 한 호텔 앞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전운이 감돌았다. 뉴라이트연합의 대구지부 창립식에 한나라당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이 참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당원들이 지지하는 주자들을 응원하는 모습은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그러나 이날은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인터넷 상에서만 모습을 보였던 두 주자의 팬클럽이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칫 무력충돌로 확산될 우려가 있다는 정보도 떠돌아 경찰병력까지 동원된 상태였다. 하지만 일촉즉발의 상황 직전에 양 측의 최대 인터넷 팬클럽 조직인 ‘박사모’와 ‘명박사랑’ 지도부가 화해의 악수를 하면서 다행히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이후에도 양측의 공방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공방의 정점은 이 전 시장의 비서였던 김유찬 씨가 이 전 시장의 의혹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직후였다.
박사모는 김 씨의 폭로 후 “2월 16일 21시 40분을 기해 대한민국 박사모 초긴급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총동원령을 발동한다”는 이메일을 모든 회원들에게 발송했다. 구체적인 행동지침으로 폭로 내용을 모든 국민이 알 때까지 온라인 투쟁을 하자는 내용도 덧붙였다.
명박사랑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이 전 시장이 무대응 전략을 고수하기로 방침을 세웠지만 명박사랑 측은 “우리라도 이 전 시장을 무자비한 네거티브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 적극 대응해야 한다”라며 온라인상에서 적극 대응하도록 회원들을 독려했다.
박사모의 총동원령에 대해 이 전 시장 캠프에서는 박 전 대표 측의 배후설을 주장하며 박 전 대표와 박사모의 조직적인 ‘팀플레이’라고 비난했다. 박 전 대표 측도 배후설은 의혹을 해명할 수 없자 ‘물타기’를 시도하는 것이라며 반박했다. 막판에 가까스로 총동원령이 해제돼 싸움은 일단락됐지만 양 팬클럽 간 감정의 골은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깊어졌다. 5월 11일 박 전 대표 지지자들의 당사 진입 시도 시위에도 박사모 회원 일부가 포함돼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 올 4월 출국장에서 이명박 전 시장과 팬클럽 회원들. | ||
이러한 팬클럽의 도를 넘는 공방에 대해 두 주자의 캠프에서는 사실상 방관하는 모습이다. 겉으로는 자제를 부탁하는 제스처를 보이고 있지만 ‘사실상 캠프에서 팬클럽을 통제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팬클럽을 ‘계륵’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이 전 시장 캠프의 한 인사는 자칫 이들의 지나친 공방으로 후보의 이미지가 손상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들을 관리할 필요성을 느끼기도 하지만 순수한 팬클럽을 사조직으로 이용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마저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 캠프에서 공보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한 인사는 “우리는 박사모와 연락하지 않는다. 우리도 인터넷을 통해 그들의 활동을 보고 있을 뿐이다”라며 팬클럽과 아무런 연관이 없음을 강조했다.
현재 한나라당은 겉으로는 어느 정도 내홍을 수습한 국면이지만 지금 양 팬클럽의 게시판은 그 표현의 수위가 점차 올라가고 있다.
명박사랑 게시판에는 ‘춘궁기에도 바나나 먹으며 호의호식한 유신 공주’ ‘머리에 든 거 없는 수첩 노처녀’ 등의 글이 등장하는가 하면 ‘(19일) 부산에서 기선을 제압하자’ ‘우리의 힘이 필요할 때다’며 호전성을 부추기는 글도 많다. 그런가 하면 박사모 게시판에도 ‘통 크게 양보? 명박이가 통이 크면 밴댕이는 바다다’ ‘대선 끝나면 이름 바꿔라 이쪽박으로’ 등의 민망한 글이 올라오고 있고 지난 5월 11일에는 ‘당사로 가자. 피를 흘리자’는 글이 올라왔고 최근에는 ‘(19일) 부산으로 필히 집결하라’는 격문들이 떴다.
현재 두 팬클럽의 분위기는 가능하다면 물리적 충돌은 피하겠지만 상대방의 도발에 대한 적극 대응하겠다는 ‘전투모드’다. 명박사랑의 임 회장도 “이 전 시장을 위해서라면 우리가 악역을 기꺼이 맡겠다”라고 밝히고 있으며 박사모의 정 회장이 “우리는 박 전 대표에게 누가 되지 않는 한 적극 도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