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정면으로 응시하자는 마음일까. 그가 MB정권을 회상한 ‘참회록’을 들고 나왔다. 지난 9월 20일, 정두언 전 의원을 만났다.
정두언 전 의원은 자신의 참회록에 대해 “나름대로 메시지를 남기고 싶어서 집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은숙 기자
―지난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는데 떨어질 거라고 예측했나.
“못했다. 물론 막판으로 갈수록 이렇게 (당이) 개판인데도 사람들이 찍어줄까 싶었다. 그래서 공천 과정이 끝나고 내가 우리가 잘못한 것을 나열하고 ‘잘못했습니다. 다시 기회를 주시면 정말 잘하겠습니다’라고 석고대죄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전부 오버라고 하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라도 하는 게 맞았다. 물론 그래도 안 됐겠지만.”
―사실상 공천이 살생부 명단처럼 된 건데 차라리 유승민 의원처럼 배제되었으면 낫지 않았을까도 싶다.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 용기가 없었다. 기존 표를 기반으로 내가 좀 노력해서 해보자는 식으로 안이하게 생각했던 거다.”
―총선 이후에 바로 종편에서 방송 진행을 하고 있는데 어떤가.
“방송 자체는 적성에 맞는 편이다. 카메라가 있으면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 괜히 더 신난다. 그러나 내용이 정치다 보니까 재미는 없다. 방송에서는 ‘개판이다’, ‘누구는 양아치다’ 이런 식으로 그대로 평가할 수 없잖나. 방송에서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되고.”
―매번 국회가 시작될 때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가 화두가 되지만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한다. 국회 밖으로 나와서 보니 특권 내려놓기에 대한 남다른 생각이 있을 법하다.
“국회의원의 기능과 특권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국민들에게) 국회의원은 재수 없지만 국회의원이 하는 기능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사실 국회의원의 봉급은 많지 않다. 공기업 임원들 평균 연봉 정도다. 그게 많나. 본인이 갑질 하니까 특권이 되는 거지 국회의원들이 자기 기능을 제대로 하게 해 주면 된다.”
―불체포 특권과 면책 특권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근데 이런 특권은 헌법 사항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헌법 개정부터 해야 한다. 그런데도 무조건 특권을 왜 없애지 않느냐고 비난한다. 국회의원들이 그걸 붙잡고 있는 게 아니라 없앨 방법이 없는 거다. 나처럼 이렇게 솔직히 설명을 해야지 마치 없앨 수 있는 것처럼 말하니까 자기네들 특권을 유지하려고 그런다는 소리가 자꾸 나오는 거다.
지난 2010년 취임 2주년을 맞은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한나라당 당직자들과 오찬을 앞두고 정두언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일요신문 DB
―무죄판결이 났다. 억울한 부분이 있겠다. 사실 무죄 판결이 나도 ‘분명 뭔가 문제가 있었을 거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죄였어도 억울할 거 없다. 내가 너무 잘못을 저지르고 살았기 때문에. 거기에서 생각하다 보니까 내가 너무 나쁜 놈이더라고. 그래서 내가 여기서 고생해도 싸다 싶었다. 배운 것도 많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영화 <트루먼 쇼>처럼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전부 다 감옥에 가 있어야 할 거다. 감옥에 갔느냐 안 갔느냐는 것은 들켰느냐 안 들켰느냐의 차이다.”
―참회록 발표를 정치 복귀의 신호탄이라 보는 시선도 있다.
“정치를 꼭 해야 되나. 나름대로 메시지를 남기고 싶어서 집필한 거다. 정치를 하게 되면 잘하고 싶지만 굳이 정치를 하려고 뭘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지나온 정치 생활을 들여다보면 그 세계는 너무나 거짓과 기만과 위선의 세계다.”
―추석 전 <MB정권 탄생과 소멸의 회상기>를 돌려 화제가 됐다. 지난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출판을 놓고 “매를 벌었다”고 했다. 특히 시기에 대한 비판이 컸는데, 본인의 ‘참회록’은 왜 지금인가.
“참회록을 쓴 지는 사실 오래됐다. 그런데 나를 아끼고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이 전부 말렸다. 이명박과 관계된 이미지를 계속 가지고 가면 안 된다고. 이번에도 또 (지인들이) 말렸다. 그런데 기억이라는 게 한계가 있지 않나. 계속 미루다가 내년에 MB 정부 어쩌고 하면 사람들이 저거 미친 거 아니냐고 그럴 거다. 지금이 마지막 타이밍이었다.”
―‘참회록’에 대해 MB 정부 관련 인사들의 비판도 만만치 않을 듯하다. 명예훼손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어 보인다.
“당연하다. 그래서 (주변에서) 말린 거다. 원래는 지금보다 내용이 두세 배는 많았다. 그런데 지금 정치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니까 예민한 부분이 없을 수 없다. 그렇다고 이걸 두루뭉술하게 바꾸어버릴 수는 없었다. 사실이 아니라고 반발하는 건 좋아도, 사실이지만 기분 나쁘니 너 왜 그랬느냐고 나오면 자신들이 스스로 치부를 광고하는 셈이니 나야 고맙다.”
정 전 의원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사람 중에 미래의 희망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은숙 기자
“썼는데 안 보였으면 내 책임이다. 친구들도 내 참회록을 보고 “이게 무슨 참회냐. 너 잘났다는 거지” 그랬다. 사실 진정한 참회라는 건 이런 것도 쓰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만 전부 자기가 억울하고 다 잘났다고 하는데, (나는)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가지고 썼으니 진정한 참회록은 아니라도 의미는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본인이 하자는 대로 했으면 괜찮았을 것을 다른 사람의 욕심이 정권을 망쳤다’는 느낌이 크다.
“나 개인이 아니라 서울시장 때부터 경선, 대선 과정까지 함께했던 팀이 대통령과 함께 일했으면 괜찮았을 거라고 말하는 거다. 진정성과 충심을 가지고 일했던 그 팀은 정권에서 다 배제됐다. 그들은 MB를 잘 알고 또 좋은 정부를 만들어야겠다는 의욕도 불탔는데, 권력은 공유하면서 가는 거라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면 권력에만 관심을 가진 사람들한테 필히 밀려나게 돼 있다. 권력을 잡아서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권력을 잡아서 그걸 누리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분류한다면, 필히 전자들은 후자들한테 밀리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후자는 굉장히 뻔뻔하고 능수능란하다. 모함하고 누구 제거하는 데 눈 하나 깜빡 안 한다.”
―보통 정권 초 논공행상 과정에서 권력다툼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래도 베테랑인 정 의원이 배지 한 번 못 달아본 박영준과의 싸움에서 힘 한번 제대로 못 쓴 게 이해되지 않는다.
“박영준이 아니라 MB한테 밀린 거다. MB가 나를 불편하게 생각하고 나를 견제하니까 박영준 같은 사람이 그 자리로 들어온 거다. 내가 유승민과 달리 정말 치열하게 싸웠는 데도 대권주자가 되지 못한 건, MB가 박근혜 대통령과 달리 직접 건들지 않고 하수인들을 시켰기 때문이다. 한참 후배인 사람들이 자꾸 건드니 창피해서 (나는) 이상득을 붙들고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비해 MB는 훨씬 노련했던 거다.”
―역대 정부가 실패한 큰 이유로 대선자금 관리를 꼽았다. 본인이 생각하는 해결책은 있나.
“공개를 철저히 하고 한도를 없애면 되는 거다. 현실적이지 않을 뿐이다. 미국 같은 경우에는 대선자금에 한계가 없지 않나. 불법이 되니까 이런 자금들을 관리하는 친인척들이 생겨나게 되고 이 사람들이 권력에도 끼어들게 된다.”
―MB 정부 하면 떠오르는 건 ‘4대강 사업’이다. 최근의 녹조 문제도 있다. 이 사업은 어떻게 평가하나.
“지금도 그때도 나는 4대강과 대운하에 찬성한다. 여름에는 원래 녹조가 항상 생겼다. 4대강을 운하처럼 했으면 물이 흘러가니까 기존의 녹조도 많이 해소되었을 거라고 본다. 물 부족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고, 그렇게 비가 안 왔는 데도 (4대강 덕분에) 식수난과 농업용수난을 겪지 않은 거다. 이에 대해 토론하면 나는 얼마든지 이길 자신이 있다. 거의 모르고 하는 얘기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임기 내에 완성하려고 한꺼번에 진행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민이 원했던 영산강부터 하나씩 했다면 훨씬 성공적이었을 것이다. 또 지천부터 정리했어야 했다.”
정두언 전 의원은 이명박 정권의 실패 원인으로 친인척의 개입 문제를 지적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왼쪽)과 정두언 전 의원. 일요신문 DB
―MB 정부가 실패했다지만, 잘한 게 있다면 무엇인가.
“그나마 4대강이 잘했다. 운하까지 갔어야 했는데 아쉽다. 강에는 다양한 기능이 있다. 그런데 그 기능들이 없어지고 거의 하수구로만 쓰이고 있다. 강의 본기능을 찾은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한강이다. 한강이 지금처럼 되기 전에는 여름마다 마포구에 있던 우리집은 만날 잠겼다. 또 겨울에는 물이 없으니까 악취가 심하게 났다. 그런데 지금은 고기도 잡고 홍수·가뭄을 막고 관광지까지 되고 있지 않나. 한강 개발에는 반대하지 않으면서 나머지 강도 한강처럼 만들자는 4대강 사업에는 왜 시비를 거는지 모르겠다.”
―곧 대선국면이다. ‘킹메이커’였던 사람으로서 이 사람과 함께해보면 괜찮겠다 싶은 사람이 있나.
“지금 우리나라에서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사람 중에 미래의 희망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차선을 선택하라면 ‘팀워크’를 중시하는 사람을 꼽고 싶다. 우리나라는 대통령들은 ‘나 대통령이거든’이라며 모든 일에 참견하려는 촌스러운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과 달리 장관이라는 자리가 눈에 띄지 않는다. ‘내가 모르니까 임자가 알아서 하게’라고 나오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차라리 낫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화제다.
“유엔 사무총장을 세계 대통령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원래 유엔 사무총장은 제3세계에서 선출한다. 미국에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시키는 거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의 대통령이라면서 충주에 가면 ‘반기문로’, ‘반기문 동상’ 등 거의 북한처럼 해놨다. 사실상 외신들 평가도 대단히 좋지 않다.”
―상당한 전략가로 통하는데 같이하자는 후보는 없나.
“내 나이가 이제 60세인데 누구랑 같이하겠나. 몇 년 전 트위터에 ‘하느님과 나 이외에는 더 이상 충성하지 않겠다’는 글을 썼다. 내가 살아오면서 머리를 굽혀본 사람은 딱 두 사람이다. 이회창과 이명박. 그런데 앞으로는 그 누구한테도 머리를 굽히지 않겠다는 거다.”
―참회록을 접하게 될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참회록을 통해) 주고 싶은 메시지는 ‘왜 정권은 매번 실패하고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정치의 구조적인 면들을 봐줬으면 좋겠다. 어떤 사람도 그 구조 속에 들어가면 비슷해질 수 있다.”
이성로·박혜리 비즈한국 기자 ssssch333@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