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따라 2017년(19대) 대선은 이른바 ‘반기문 대망론’과 ‘문재인 대세론’이 정치적 변곡점마다 강하게 충돌할 전망이다. ‘죽은 노무현과 살아있는 반기문’의 치킨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양 진영 모두 ‘위험한 도박’이다.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다. 남은 것은 ‘사즉생 생즉사’(死則生 生則死·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요,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라는 뜻)의 진검승부다.
더민주 추미애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더민주의 ‘이해찬 복당’ 카드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8·27 전당대회에서 친문(친문재인)계의 전폭적 지지를 업고 당선된 추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집 나간 분들을 한 분 한 분 모셔오겠다”며 이 의원 복당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추 대표가 추석 연휴 직후인 9월 19일 이 의원의 복당을 추진키로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최고위원 내 이견도 없었다. 일사천리다. 남은 절차는 중앙당 당원자격심사위원회와 당무위원회다. 당 주류인 범 친노계가 조직을 장악한 만큼, 두 절차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이로써 전임이었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의 색깔 빼기를 통한 친정 체제를 구축하게 됐다. 더민주가 야권 최고의 킹메이커인 ‘이해찬 무기’를 장착함에 따라 ‘문재인 대세론’의 예선 통과 가능성은 한층 커졌다. 더민주 한 관계자는 “이 의원은 기획력과 추진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말했다.
실제 이 의원은 1997년(15대)과 2002년(16대) 대선 승리의 핵심 축이었다. 15대 땐 김대중(DJ) 캠프의 대선기획본부 부본부장을 맡았다. 16대 당시엔 노무현 캠프의 코어(핵심)였던 ‘금강팀’ 등에서 활동했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에는 열린우리당 창당기획준비단 단장을 맡았다.
이 의원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폐족’(조상이 큰 죄를 짓고 죽어서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는 족속) 논란 속에서도 친노 세 규합을 시작으로 2012년 민주통합당 창당 과정에서 막후 지휘자 역할을 했다. ‘보이지 않은 손’으로 민주당과 혁신과통합,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간 3자 야권통합을 끝내 이뤄냈다. 2012년 총·대선에서 패했지만 그는 민주통합당에서 ‘한명숙 체제’(1·15 전당대회)를 시작으로 ‘이해찬(6·9 전당대회) 당 대표-박지원(현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원내대표-문재인 대선 후보’의 삼각 편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더민주는 ‘이해찬 복당’ 등 잇따른 추 대표의 승부수로 차기 대선의 핵심 변수인 ▲계층성 ▲지역성 ▲세대성 등에서 보완전략을 짤 수 있게 됐다.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층의 결합으로 ‘동진 전략’은 물론 전통적 지지층과 친노의 결합, 2040세대에서 5060세대로 넓혀가는 세대 확장성을 꾀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해 “추미애식 통합 행보의 신호탄”이라고 말했다. 또한 지난 4·13 총선에서 촉발한 범친노의 분화, 즉 원조 친노와 친문계의 원심력을 제어할 수 있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차재원 부산 가톨릭대학교 교수는 “추미애 호 출범 이후 ‘이해찬 복당’은 시간문제였다”며 “실보다는 득이 많은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이제 관심은 ‘이해찬 역할론’이다. 복당 직후부터 광폭 행보에 나서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차기 대선 과정에서 ‘보이지 않은 손’으로 모종의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핵심은 ‘반기문 저격수’다. 참여정부 당시 둘의 관계는 ‘국무총리(이해찬)-외교부 장관(반기문)’이었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 의원 등 친노계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온갖 정보를 쥐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반 총장이 여권 실세인 친박(친박근혜)계 지지를 등에 업고 나오는 순간, 하나씩 터트려 ‘반기문 죽이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도 ‘이해찬 역할론’에 대해 “‘반기문 저격수’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충청권의 터줏대감인 이 의원이 ‘세종특별시 완성’을 앞세워 중부권 표심을 흔들 경우 반 총장의 ‘충청권 대망론’에 균열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여권의 대선 핵심 전략인 이른바 ‘서진 전략’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권 ‘서진 전략’의 약화는 ‘문재인 대세론’을 강화한다. 이 의원의 ‘반기문 때리기’가 효과를 보면 볼수록 문 전 대표의 대권 가도는 날개를 달게 된다는 얘기다. 양측은 반 총장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인 2009년∼2011년까지 수차례 조문하지 않은 것을 둘러싼 갈등으로 앙금이 남아있는 상태다.
또한 지난 4월 외교부가 ‘외교문서공개에 관한 규칙’에 따라 공개한 30년 전 문서에서 당시 하버드대 연수생(참사관으로 입학)이었던 반 총장은 DJ의 미국 동향을 본국에 보고했다. 당시는 전두환 철권통치가 살아있는 신군부 시절이었다. 공관 업무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연수생이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DJ의 동향을 보고한 것이다.
더민주 중진 의원은 ‘반기문 대망론’과 관련해 “반 총장이 대선에 나오면 우리에게 나쁠 게 없다”며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다른 의원도 “여권의 유력한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외부에 있는 반 총장이 수혜를 입고 있지만, 퇴임 이후 정치 현안에 대해 입장을 표명할 때마다 지지도가 하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의 반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 총장은 올해 말 임기를 마치지만 연일 강력한 대권 의지를 표명하며 사실상 출마 채비에 나선 모양새다. 반 총장은 추석 연휴 기간 미국을 방문한 정세균 국회의장과 정진석 새누리당·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를 만나 또다시 대선 출마를 시사했다.
그는 9월 15일(현지시각) “1월 중순 이전 귀국하겠다”며 “국민에게 귀국 보고를 하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야권 원내대표들은 “(반 총장이) 결심을 굳힌 것으로 봤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정 원내대표는 “지금부터 내년 일을 고민하는 듯한 인상은 못 받았다”고 말했지만, 방미 중 ‘마지막으로 혼신을 다해 돕겠다’는 김종필(JP) 전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총재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다. 원조 킹메이커인 JP가 ‘반기문 대통령’ 만들기에 나설 경우 야권 최고 전략가인 이 의원과의 지략 대결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권 발 정계개편에서 주목할 대목은 또 있다. 서진 전략의 극대화 여부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MB) 전 대통령 등 역대 TK 주자들은 연대·연합 없이 대권을 거머쥐었다. 집토끼, 즉 보수층 이탈만 막아도 대권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청 출신이었던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총재는 199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당시 야권의 DJP 연합으로 대선 주도권을 뺏겼다. 2002년 때도 노·정(노무현·정몽준) 단일화로 ‘대세론’이 흔들렸다. 여권이 이정현 호 출범 이후 ‘TK+충청+호남’ 전략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반 총장의 ‘충청권 대망론’이 상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TK 표심 분산을 막아내야 한다는 셈법이 나온다. TK의 맹주인 친박계 좌장 최경환 의원과 떠오르는 별인 비박(비박근혜)계 유승민 의원 등의 ‘갈등 관리’가 필수라는 얘기다. 대중성 높은 유 의원이 만에 하나 정계개편 과정에 뛰어들 경우 반 총장은 1997년 이 전 총재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당시 이 전 총재는 TK의 경우 대표적인 킹메이커였지만 대중성이 없었던 허주(고 김윤환 전 의원 아호)에 의존했고, 부산·경남(PK)은 민주계를 업고 출마한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의 등장으로 표가 분산됐다. 충청권은 정진석 원내대표가 반 총장의 메신저 역할을 하면서 사실상 2인자 굳히기에 나서 보수표 이탈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민주도 마찬가지다. ‘이해찬 복당’으로 범친노 분화에 제어장치를 마련했지만 이 지점이 딜레마로 작용할 수도 있다. 최종적인 야권 통합 대상인 국민의당이 ‘도로 친노당’으로 귀결한 더민주와 합당할 명분을 찾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해서다. 국민의당 한 관계자는 “야권의 유동성이 커질수록 차기 대선은 양자 구도보다는 3자 구도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차기 대선 과정에서 문 전 대표의 아킬레스건인 표 확장성이 또다시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문재인 필패론’의 불씨가 언제든지 살아난다면, 범친노계 일부는 ‘대안론 후보’ 쪽으로 틀 것으로 보인다.
2002년 노무현 캠프의 양대 축이었던 금강팀 인사들이 야권 세대교체 주자인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지지하는 시나리오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문 전 대표는 당시 이호철 전 민정수석과 함께 ‘부산팀’의 일원이었다. 반 총장의 핵심 과제가 영남표 분열 막기라면 문 전 대표는 호남 및 범친노 복원이다. 판 만들기는 시작됐다. 내부 전열 정비, 구도 만들기만 남았다. 이들의 전쟁은 이제부터다.
윤지상 언론인
안, 여권 대선주자 가능성까지 오픈? 위기론 국민의당 출구전략 위기에 처한 국민의당이 출구전략을 놓고 고심에 빠진 모양새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 체제가 초반 순항을 거듭하다가 지지도 정체 현상에 빠진 이후 지도부 체제 개편은 물론, 차기 대선 전략 수정에 나섰다. 특히 제3 지대론의 핵심인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을 비롯해 정운찬 전 국무총리 영입에 난항을 겪자 국민의당 위기론은 한층 심화되고 있다. 국민의당과 안철수 전 상임 공동대표의 지지도는 ‘리베이트 의혹’ 이후 박스권에 갇힌 상황이다. 그러자 내부에선 대선 발 정계개편과 정책 현안에서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정황이 속속 포착됐다. 애초 제3 지대론이 불거질 때마다 박 위원장을 중심으로 당 관계자들은 “국민의당이 제3 지대”라며 당 밖 대선 경선론에 선을 그었다. 하지만 조기 전대론을 둘러싼 당내 계파 간 이견차를 좁히는 데 실패한 국민의당이 지도부 개편에 당 총의를 모으지 못하자, ‘제3 지대 정계개편’ 가능성을 열어두는 쪽으로 선회했다. 안 전 대표는 9월11일 “내년 대선 때 양극단 세력과의 단일화는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말하더니, 이틀 뒤인 13일 SBS 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해서는 “김부겸 더민주 의원,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남경필 경기도지사 이런 분들이 다 힘을 합쳐야 한다”꼬 말했다. 같은 달 18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대선 경선 룰과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뒀다, 어떤 형식이 될지 모르겠지만 모든 제안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여기(제3 지대)서 경쟁할 분들은 기존 당적은 버려야 할 것”이라며 전제조건을 달았다. 손 전 고문과 정 전 총리 등의 영입에 난항을 겪자, 자신의 프리미엄인 국민의당 당적을 버릴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내가 기득권을 포기할 테니, 당신들도 버릴 것은 버리라’는 얘기다. 국민의당은 100% 국민경선으로 차기 대선 후보를 뽑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제3 지대 플랫폼 정당 만들기 차원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의 연대 시나리오도 나온다. 이원집정부제(분권형 개헌)를 골자로 하는 연합 전략이다.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은 9월 21일 평화방송에 출연해 안 전 대표의 여권 대선주자 가능성에 대해 “그럴 가능성도 상당히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민병두 더민주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같은 의견을 피력한 뒤 ‘반기문 외치-안철수 내치’ 역할 분담 가능성을 시사했다. 다만 국민의당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20대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은 새누리당과 더민주 모두 비토하는 합리적 세력이 집권을 통해 정치와 민생의 정상화를 하라는 명령”이라며 선을 그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