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30일 한나라당 사무처 및 국회의원 보좌진 공동주최 체육대회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시축을 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명박 전 시장에 대한 박 전 대표의 검증이 이미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국민검증위원회는 5월 31일 3차 회의에서 후보자 및 가족의 도덕성 재산 병역 납세 등 일반적 사항 외에 국민적 의혹을 모두 검증하기로 결정했다. 안강민 위원장은 “후보의 사생활 문제와 도덕성, 재산, 납세 등을 다룰 생각”이라며 “검증 대상이 될 만한 건 다 추려봐야 한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그동안 후보들을 중심으로 제기된 모든 의혹을 검증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빅2 진영은 국민검증위원회의 검증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모습이 역력하다. 왜 그럴까. 박 전 대표 측의 한 인사는 검증위원들의 편향성과 짧은 검증기간, 검증수단의 제약 등을 이유로 꼽았다. 이 전 시장을 추격하고 있는 박 전 대표 측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게 ‘검증론’이다. 그만큼 이 전 시장에게 쏟아진 의혹이 많고, 검증해야 할 내용도 많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국민 검증위원회는 6월 1일부터 3주간 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국민제보를 받고, 7월 10~12일까지 후보자들을 상대로 검증청문회를 연다는 검증일정을 가지고 있다. 박 전 대표 측은 빅2를 포함해 한나라당 5명의 후보를 상대로 쏟아지는 제보를 분류하고 제대로 조사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지 않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게다가 국민검증위가 특별한 조사수단을 갖고 있지 않는 상황이어서 관련자들의 진술이나 후보 측의 설명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묻혀진 진실’을 파헤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회의적 시각을 보였다. 박 전 대표 측은 일부 검증위원이 이 전 시장 지지단체에 참여한 이력 등을 문제 삼아 검증위원회의 중립성에 대해서도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때문에 박 전 대표의 팬클럽인 ‘박사모’는 “검증위가 존속할 명분이 없다”며 검증위원회 해체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이 전 시장 측도 이러한 국민검증위원회의 한계에 대해 대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선의 룰을 더 강조한다. 이 전 시장 측의 한 관계자는 “당이 검증하는 절차와 방법을 확정한 상황에서 더 이상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후보들의 주요 의혹들은 이미 언론을 통해 공론화됐으며, 이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작업의 범주를 넘어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설명도 따랐다.
후보경선에서 유달리 검증론을 강조해온 박 전 대표 측의 반응과 움직임은 사뭇 다르다. 국민검증위원회의 검증과정을 일단 지켜보겠지만, 후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과정으로 변질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박 전 대표 측의 한 고위인사는 “이 전 시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검증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증거자료를 찾는 일인데, 이는 현실적으로 (관련 증거에 대한 정보는) 노무현 정부가 다 쥐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바로 이 지점이 한나라당 경선을 ‘폭풍’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부분이다.
이른바 ‘이명박 X파일’이니, ‘박근혜 X파일’이니 하는 내용의 상당수는 1970~1980년대에 벌어진 사안이다. 일부 내용들은 언론의 집요한 추적에도 관련 자료가 이미 폐기됐거나 확인이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 5월 24일 석가탄신일을 맞아 조계사에서 열린 봉축행사에 참석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시계를 보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런 검증의 불완전성과 정치 쟁점화 가능성을 이-박 양진영 모두 이미 예측하고 있다. 이는 국민검증위원회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만 후보 캠프가 상대방을 향해 직접 검증의 칼을 뽑아드는 단계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각 후보 캠프가 직접 검증론을 제기하는 단계는 방법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완충지대가 없이 직접 충돌하는 양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데 한나라당의 위기감이 도사리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국민검증위원회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닐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면서 “특히 ‘제대로 된 검증만 이뤄지면 우리가 이긴다’고 공언하고 있는 박 전 대표 측이 당의 검증수준에 만족할 가능성이 낮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박 전 대표 측으로서는 이 전 시장을 꺾기 위해 ‘무한검증’을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미 박 전 대표 측이 이 전 시장에 대해 무한검증 프로그램을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의도에서 떠도는 박 전 대표 측의 검증 프로그램은 후보 정책토론회 과정→국민검증위원회 검증→직접 검증이라는 3단계로 요약된다.
박 전 대표 측의 한 인사는 정인봉-김유찬으로 이어지는 이 전 시장에 대한 1차 검증공세가 실패한 원인을 세 가지로 꼽았다. 첫째는 검증론을 꺼내 놓은 시점이 이 전 시장이 탄탄한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이 잠시 주춤거리기는 했지만 상승세를 막지는 못했다. 상대의 기세가 욱일승천하는 상황의 문제제기는 오히려 역풍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경험한 것이다.
둘째는 검증의 내용이다. 현실적으로 명백한 증거물이 없는 상황이라면 핵심적 의혹을 정면으로 제기하면서 국민적 관심을 끌어 모을 필요성이 있다. 정인봉 특보와 김유찬 씨가 당시 제기한 문제들은 당시 이 전 시장을 둘러싼 의혹의 극히 일부분이었고, 핵심도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다음은 우군의 활용이다. 제기된 의혹에 대해 상대방이 반박했을 때 지지그룹이 재반박하면서 검증의 강도를 높여 나가야 하는데 당 안팎의 눈치를 살피느라 검증론의 확대 재생산에 실패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런 어정쩡한 태도는 결국 ‘별것 아닌 일로 당에 분란만 일으킨다’는 책임론에 몰리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1차 검증시도의 실패에 대한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짜여진 박 전 대표 측의 3단계 검증론이 먹혀들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1단계 정책검증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는 광주 토론회에서 이 전 시장의 핵심공약인 한반도 대운하의 허구성을 증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홍준표 의원을 비롯해 나머지 후보들도 한반도 대운하 검증에 덩달아 참여했다. 박 전 대표로서는 ‘적의 적은 동지’라는 진리를 확인한 순간이기도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광주 토론회 직후 CBS-리얼미터가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이 전 시장은 전 주 대비 2.9%p 하락한 39.9%를 기록했고, 박 전 대표는 전주보다 1.8%P 낮은 26.9%의 지지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전 시장의 하락 폭이 더 큰 이유는 후보의 토론 역량에 따른 평가와도 연결된 것이지만 정책검증이 효험을 본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부분은 박 전 대표 측의 1단계 정책검증이 가진 노림수다. 광주 토론회 이후 유승민, 이혜훈 의원 등 박 전 대표 측의 ‘책사’들이 연이어 한반도 대운하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나왔다는 점이다. 허점을 발견한 이상 끝까지 파고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면서 박 전 대표 진영에서는 이 전 시장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이 이슈가 되면서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이 꺾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2단계 검증의 주체는 국민검증위원회다. 국민검증위원회가 사생활까지 제대로 다룰 가능성이 낮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국민검증위원회의 부실한 검증과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방식으로 이 전 시장의 의혹들을 확산시킬 것이라는 계산이 가능하다. 문제제기 주체는 박 전 대표의 캠프나 지지그룹이 되겠지만 이 전 시장에 대한 각종 의혹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할 것이고 경선에서 최대 이슈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박 전 대표 측이 2단계 검증작업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면 박 전 대표가 직접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 메가톤급 사안을 제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1단계에서 이 전 시장에게 형성된 선두주자로서의 이미지를 허물고, 2단계에서 국민검증위원회의 부실검증에 대해 비판하는 방식으로 이 전 시장의 신뢰성을 낮춘 뒤 3단계에서 확실한 사안을 가지고 결정타를 날린다는 것이 박 전 대표 측의 계산인 셈이다.
그러나 이 전 시장 측의 반격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이 전 시장 측의 한 인사는 “우리는 저쪽(박 전 대표 측)의 검증론에 시달린 지 꽤 됐다. 언론에서도 많이 다루지 않았느냐. 이 전 시장과 관련된 (의혹)내용들은 거의 다 걸러졌다고 보면 된다”고 자신했다. 새로이 더 나올 게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하지만 박 전 대표 건은 의외로 많이 드러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만큼 민감한 문제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저쪽이 그렇게(이 전 시장에 대한 의혹을 부풀려 직접 공격하는 식으로)까지는 안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 쪽이 경선과정에서 검증론을 본격화한다면 맞받아칠 수 있는 준비를 끝내고 있다는 뉘앙스다.
이 전 시장 측이 판세를 뒤집기 위해 공격적 검증론을 들고 나오는 박 전 대표 측에 대해 ‘아웃복싱’으로 대응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선두주자로서 돌발변수를 꺼리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이른바 박근혜 X파일과 CD에 담겨 있는 내용도 직접 제기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높은 것들로 알려져 있다.
박 전 대표와 관련된 의혹의 상당수는 고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나 비리의혹이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관련설, 친인척 간의 내부 갈등과 도덕성 등도 일부에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표와 관련된 부분들은 이 전 시장에게 제기되는 문제들과 성격이 비슷하다. 선두주자로서는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게 많을 수 있는 사안들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권력투쟁이 무한투쟁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 전 시장이 견딜 수 있는 한계는 분명하다. 상대방의 주먹이 턱밑까지 파고들면 본능적으로 카운터펀치가 나가기 마련이다.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표 측이 이 전 시장을 향해 최후의 검증론을 제기하는 시점을 7월 말에서 8월 초로 보고 있다. 이 전 시장이 박 전 대표를 향해 검증의 칼을 뽑지 않을 수 없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가 검증의 칼을 뽑아든 이후 한나라당의 앞날은 예측하기 쉽지 않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그런 단계가 (앞으로) 2~3번은 오지 않을까 싶다. 두 사람 중에서 누가 이기든지, 너무 큰 상처를 입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정기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