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실행할 주체 필요” 한 목소리, “과학전문가가 정책·예산에 영향력 가져야”
[대전=일요신문] 박하늘 기자 = 27일 한국연구재단이 개최한 ‘노벨과학상 토론회-기다림의 미학’에서 과학계 전반에 대한 ”총체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고언들이 쏟아졌다.
과학계는 정부의 관료적이고 성과와 흥행위주의 과학정책이 노벨상을 멀어지게 한다고 비판했다. 노벨상을 위한 과학계의 제안은 현 정부의 과학정책과는 대치되는 주장들이 주를 이뤘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우리나라의 과학계를 ”악순환의 구조“라고 꼬집으며 ”노벨상 소식이 나올때마다 많은 비판과 요구가 나온지 벌써 십수년 됐다. 정부, 과학계, 과학자 모두 자신을 성찰하고 총체적 개혁을 계획하고 실행할 주체가 있어야 한다“고 쓴소리를 냈다.
김선영 교수는 정부가 인사권과 예산을 틀어쥐고 있는 과학계의 현 구조가 건강한 연구생태계 조성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교수는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달리 중앙부처 공무원이 과학기술계의 미세한 부분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과학계가 비전문가인 공무원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에 있다. R&D 규모가 커지며 공무원은 사업의 기획과 선정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연구예산 4조원 중 5000억원은 감사원과 국회를 상대하기 위한 행정비용에 사용된다. 연구자가 연구에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라며 현 정부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현재의 과학계 구조를 꼬집었다.
이어 그는 ”특히 우리나라는 예산의 생성과 배분에서 많은 절차를 거쳐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연구예산의 비효율적 운용을 지적한 뒤 영국의 사례를 들며 ”과학자들이 관료주의와 불필요한 서류처리에 시달리지 않고 과학자들의 주업인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연구 예산을 받기위해선 먼저 각 집행부처 산하기관이 전문가들을 활용해 기획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재부에 예산을 요구한다. 큰 사업의 경우에는 기재부가 타 기관에 타당성 조사를 맡기고 예산을 책정한다. 이 절차를 거친 후 국회가 승인하고 기재부는 해당 예산을 부처에 주고 부처는 산하기관을 통해 연구자에게 예산을 배분한다.
반면 영국의 경우 연구기관의 장이 재무부와 직접협상해 받아내 행정간소화가 이뤄진다. 또한 정부가 설정한 거시정책 범위내 직접사업을 만들고 예산을 배분하는 권한을 가졌다.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이 기재부에 직접 돈을 받아 어디에 투자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도 영국처럼 과학전문가가 연구예산과 과학정책 수립에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과학계의 잦은 인사이동도 꼬집었다.
그는 ”우리나라 연구기관장은 3년단위로 바껴 중장기 사업이 어렵고 단기실적에 연연하게 된다“며 ”노벨상 수상자를 다수 배출한 영국의 분자생물학실험실(LMB)의 경우, 기관장의 임기가 대부분 10년 이상이다. 우리나라의 연구기관 기관장의 임명부터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 과학에서3년 단위로 일할 수 있는 주제는 거의없으니 기관장이 중장기 계획을 만들고 그것을 집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리를 자주 바꾸고 윗사람에게 실적을 보여야하는 공무원은 연구자들의 진정을 의심하며 실적을 재촉한다. 장기 연구를 밀어줄 공무원은 사라지고 연구자는 해마다 보여줄 계량적 성과와 언론기사 거리를 찾는데 시간을 보내야한다“며 안타까운 현실을 한탄했다.
실제 선거철 마다 과학계는 이해관계로 내려오는 비전문가 ‘낙하산 기관장’으로 골머리를 앓는다. 연구기관과 개연성 없는 인사들이 내려앉아 기관을 이끌며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비전문가 기관장’은 연구기관의 중장기 연구와 과학정책을 수행하기 어려우며 연구자들의 사기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과학계의 오래된 주장이다.
‘스타과학자’에 대한 경계도 나왔다.
김 교수는 ”뛰어난 개인을 찾아 집중 지원하겠다는 현재의 정부 지원책은 우선순위를 잘못 정한 것“이라며 ”개인을 띄우면 좋은 뉴스거리가 되지만 과학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고 위험하다. 황우석 한사람이 무너지자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지원자체가 사라진 예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열린 대통령 주재 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노벨상을 받을 만한 과학자를 1000명 육성하겠다“는 정부 정책과는 배치된다.
이혜연 연세대 의학과교수도 ”몇몇 스타과학자가 아닌 스타과학자를 기를 수 있는 토양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며 힘을 보탰다.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는 현 제도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됐다.
박배호 건국대 물리학과 교수도 ”연구과제 수주를 위한 과도한 경쟁 및 줄서기가 요구되는 상황에서는 창의적이고 분야를 이끄는 연구를 수행하기 어렵다“며 ”단기간 성과에만 급급하다보면 연구생태계를 구성하는 일부에게만 선택과 집중이라는 명목하에 과도한 관심과 지원이 몰린다. 단기 집중지원은 전체 연구생태계 발전을 저해한다“고 강조했다.
젊은 과학자를 육성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미국대학은 신임 조교수의 경우 평균 10억원 규모 초기 정착금이 지급된다. 우리나라 서울대, 연·고대, 카이스트 등 유수의 대학은 1억원 내외 초기정착금이 지급되고 있다. 중요한 연구결과는 교수로 임용된뒤 10년 이내에 거의 다 나온다“며 ”꾸준히 연구할 수 있도록 충분한 연구비가 지원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ynwa21@ilyods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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