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한나라당 경선 주자들의 재산 관련 의혹이 봇물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 ||
<일요신문>은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2탄으로 최근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봇물 터지듯이 제기되고 있는 재산 관련 의혹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봤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는 정치권과 언론에서 자신에 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발빠르게 나름대로 해명과 반박을 제시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어느 것 하나 의혹을 말끔히 해소시킬 만한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전 시장의 ‘위장전입’ 파문처럼 오히려 소극적인 해명이 의혹만 더 부추기고 있어 향후 더 큰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이명박
이명박 전 시장 캠프가 후끈 달아올라 있다. 수백억대의 재산을 신고한 재벌그룹 CEO 출신답게 이 전 시장이 현재 경선 후보들 재산 검증에서 집중적인 표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 시장은 “날 끌어내리기 위해 세상이 미쳐 날뛰고 있다”는 격한 표현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이 전 시장 측을 민감하게 건드린 것은 일부 언론의 ‘부동산 차명 은닉 의혹’이었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옥천 땅 37만 5000평이었다. 등기 서류상의 의혹이 발견된 것. 이 전 시장 소유에서 처남 김재정 씨 소유로 소유권자가 변경되었는데도 이 땅에 설정돼 있는 근저당권 채무자가 새로운 땅의 소유주인 김 씨가 아니라 여전히 이 전 시장으로 남아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실질적인 소유주가 이 전 시장이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전 시장 측은 “소유권 이전 때 권리관계가 승계되지 못해서 벌어진 행정상의 착오일 뿐”이라며 의혹을 강력히 부인했다. 어떻게 이런 행정상의 착오가 벌어질 수 있을까.
서울지방법원 등기과의 한 관계자는 “등기 기재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까 간혹 잘못 기재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보통 근저당 소유권자같이 중요 사항의 이름 자체를 바꿔서 잘못 기재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신청인이 신청서에 실수로 잘못 기재한 착오가 발생할 순 있지만 그래도 아주 드문 경우”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내용이 잘못 기재됐을 경우라도 해당 당사자가 이의 수정을 요구하면 담당자가 바로 직권으로 고치게 된다”며 등기상의 중요 항목이 지금까지 계속 잘못 기재된 채 남아 있는 것에 대해서도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두 번째는 ‘투기 의혹’이다. 이 전 시장이 이미 매매 처분한 충북 옥천 땅과 서초동 법원타운 땅이 구설수에 여전히 오르고 있다. 옥천 땅은 70년대 중반 박정희 정권의 임시수도 계획 때 후보지 중의 하나로 값이 들썩거렸다는 것.
이에 대해 이 전 시장 측은 “옥천 땅을 매입한 시기는 77년 12월인 데 반해 박 정권이 임시수도계획을 대외적으로 공개한 시점은 77년 2월 10일이다. 또 임시수도계획 후보지도 이명박 후보가 매입한 충북 옥천에서 멀리 떨어진 충남 공주 일원이다”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 전 시장 측의 이 같은 해명은 또 다른 역공을 낳을 전망이다. 확인 결과 박 전 대통령이 77년 2월 발표한 것은 ‘수도권 남부지역에 임시수도를 건설한다’는 계획이었을 뿐, 그 임시수도를 충남 공주로 한다는 발표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당시 수도 이전 발표로 공주와 옥천 등 충청권의 여러 지역이 후보로 떠오르면서 부동산시장이 춤을 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전 시장이 93년 공직자 재산공개를 앞두고 처분한 서초동 법원타운 땅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거론된다. 73년 서소문에 있던 법원·검찰청의 이전 계획이 발표되면서부터 강남 개발설이 일었고, 이후 80년대까지 유력인사들이 서초동 주변 부지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당시 이곳 땅을 매입해서 엄청난 폭리를 취한 인사들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인을 비롯, 전직 총리·부총리·장관·안기부장·판검사 등의 이름이 거론됐다. 이 전 시장 역시 시세차익을 노리고 이 땅을 매입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인 셈이다.
이에 대해서도 이 전 시장 측은 “77년 현대건설 사장 시절 회사로부터 받은 특별상여금을 당시 회사 관재담당 이사가 서초동 땅을 사들여 관리해오다가 퇴직시 현금 통장 대신 등기서류를 넘겨준 것”이라며 자신이 직접 산 땅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이 전 시장 자신이 실제 폭리의 혜택을 입은 당사자라는 점에서 다소 궁색한 해명이라는 평이 적지 않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70년대 초에 비해 90년대 초 이곳 땅값은 무려 1만 배 이상이나 올랐다고 한다.
세 번째는 김혁규 열린우리당 의원이 제기한 이 전 시장 부인 김윤옥 씨의 위장전입 의혹이다. 김 의원은 12일 “부인 김 씨가 그동안 15차례에 걸쳐 강남에서 주소지를 바꾼 것이 확인되고 있다”며 “위장전입 의혹이 제기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당초 이 전 시장 측은 “지난 39년 동안 이 후보가 25번의 주민등록상 주소 이전이 있었던 건 사실이나 부동산 투기와 관련된 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김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일부 기자들이 “이 전 시장이 주민등록등본만 공개하면 간단히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 아니냐”며 공개를 요구해도 “공개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며 애매모호한 태도로 일관했다. 모호한 해명이 오히려 의혹을 더욱 부추기자 이 전 시장은 결국 16일 “자녀 교육 문제 때문에 위장전입을 한 사실이 있다”고 인정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 이 전 시장은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고 있다. 일단은 의혹 제기를 우선 피하고서 보자는 식의 ‘핵심 비켜가기 식 어물쩡 답변’이 결국 결정적인 화로 작용한 셈이다.
네 번째로 이 전 시장의 공직자재산신고 누락 의혹이다. 송영길 열린우리당 의원은 지난 11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이 전 시장이 2004년 하나은행 측에 5억 원을 변제해줬으면서도 공직자 재산등록상에는 이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기자는 송 의원 측으로부터 하나은행 내부 문건을 입수했다. 이 문건을 보면 하나은행이 2000년 6월 28일 ‘LK이뱅크’에 5억 원을 출자한 뒤 2001년 12월 7일 손해를 봤다며 이 전 시장과 김경준 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며 6개월 뒤인 2002년 5월 이 전 시장과 합의 후 소를 취하한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소 취하 경위에 대해서 이 문건은 ‘합의에 의거 하나은행은 2002년 5월 이명박 본인 소유 서초동 상가건물에 근저당권 설정함(설정액 5억 원), 출자금 회수 : 2004년 6월 이명박으로부터 출자금 5억 원을 상환 받음’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하지만 이 전 시장의 공직자 재산신고 내역을 보면 2004년에서 2005년 사이 5억 원이 이 명목으로 빠져 나갔다는 부분이 나와 있지 않다. 재산변동 내역 자체가 없는 셈이다. 이에 대해서 16일 현재까지 이 전 시장 측은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 박근혜. | ||
박근혜 전 대표에게 쏠리는 재산 의혹은 부친 박정희 정권의 유산인 정수장학회·육영재단·영남재단 등에 집중돼 있다. 특히 지난 14일 전재용 씨가 영남대 재단비리 의혹을 집중 제기하면서 ‘이명박 검증 일변도’에서 벗어나 박 전 대표도 검증의 도마 위에 올랐다. 전 씨는 영남대 전신인 청구대학 전기수 전 이사장의 넷째아들이다.
전 씨는 “박 전 대표는 측근으로 알려진 최태민 목사의 친인척 등 4인방을 요직에 앉혀 이들이 앞장서 불법자금 편취, 공금횡령, 부정입학, 판공비의 사적인 용도 사용 등 전형적인 사학재단 비리를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 측은 “전 씨의 주장은 이미 지난 88년 국정감사 때 나온 얘기를 다시 재탕한 것에 불과하다”며 “당시 박 전 대표가 재단 이사로서 업무를 처리하거나 학교 내 중요한 결정을 한 것은 아니다. 국감 이후 검찰 수사에서도 (재단비리와) 박 전 대표와는 전혀 관련된 것이 없었던 걸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전 대표 측 역시 ‘어물쩡한 답변으로 핵심 쟁점을 피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회 속기록 자료를 통해 88년 당시 문교공보위 국정감사 상황을 살펴봤다.
당시 영남대교수협의회 이 아무개 교수는 참고인으로 나와서 “재단의 입김 없이 총장이 학장을 임명하지 못하고 재단에 일일이 문의해서 박근혜 이사와 4인방의 명령을 받아서 움직였다”고 밝혔다.
당시 의원들의 의혹은 재단수익업체인 ‘영남투자금융’(영투)에 집중됐다. 의원들은 국감 도중 영투 김 아무개 회장을 긴급하게 증인으로 불러세우기도 했다. 김 회장은 소위 4인방 중의 한 명이었다. 손주항 평민당 의원은 “박근혜 씨가 영투의 대주주로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몇 프로이며 수익금 처리도 모든 것이 몇몇 박 씨의 가까운 사람 내지 박 씨 독단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의혹이 짙어지고 점점 불어나서…”라고 추궁했다.
당시 의원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거의 한목소리로 “영투에서 창출한 수익금을 학교로 전입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결국 영투만 살찌우는 것 아닌가”라고 추궁했다. 박관용 민주당 의원은 김 회장에게 “독재자의 딸을 보필하는 4인방을 벗어나기 위해 깨끗이 사퇴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박 의원은 현재 한나라당에서 경선관리위원장을 맡고 있다.
전 씨 역시 영투에 대한 추가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영투가 82년 7월부터 89년 5월까지 25차례나 박 전 대표가 이사장으로 있던 육영재단 발행 아동잡지에 광고료로 750만 원을 지불하고 1억 3000만 원을 기부했다”며 영투와 박 전 대표 간의 유착설을 주장했다.
육영재단과 관련한 의혹도 여전히 남아 있다. 안강민 한나라당 검증위원장은 “박 전 대표가 관련된 재단(육영재단)에서 자금이 빼돌려졌다는 제보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90년 11월 당시 육영재단을 둘러싸고 박 전 대표와 동생 근령 씨 간의 다툼이 일었다. 근령 씨 측은 “육영재단을 사실상 좌지우지하며 전횡을 일삼는 최 목사는 물러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전 대표는 끝까지 최 목사를 두둔하며 동생과 맞서다가 결국 11월 초 동생에게 모든 것을 인수인계하고 전격적으로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이에 대해 당시 언론은 ‘2000억 원이 넘는 재단운영권을 둘러싼 자매 측근 간의 주도권 다툼’으로 집중 보도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박 전 대표 자매들의 함구로 자매간 재단운영권 다툼의 내막은 지금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당시 근령 씨를 지지하던 ‘숭모회’ 측은 “최 목사가 박근혜 이사장의 신임만 믿고 측근들을 요직에 앉힌 채 전횡을 일삼았고, 육영사업이 목적인 재단의 취지와는 달리 수익사업에 열을 올리며 많은 부정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최 목사에 대한 비난이 가중되자 결국 동생에게 이사장직을 인계하면서 비리를 덮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만 남아 있다. 최 목사는 지난 94년 5월 병으로 사망했다.
세 번째 의혹은 박 전 대표가 청와대를 나와서 거주한 성북동 자택에 대한 실체 부분이다. 박 전 대표는 79년 11월 청와대를 나온 직후에는 아버지의 유산인 신당동 사저에 머물렀다. 이후 그는 82년 8월 성북동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신당동 집은 ‘박정희기념사업회’에 기증했다. 이때의 성북동 집이 지금까지 박 전 대표 재산의 근간이 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84년 성북동 집을 팔아 이혼한 동생 근령 씨에게 아파트를 마련해주고 자신은 장충동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또 거기서 다시 지금의 삼성동 주택으로 이사했다.
그렇다면 성북동 주택은 어떻게 마련됐을까 하는 점이 의문으로 남는다. 3공 출신의 지인들이 도와줬다는 얘기가 대세였으나 <신동아> 6월호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신기수 경남기업 회장으로 하여금 집을 지어주도록 했다’고 보도했다. 박 전 대표 측은 이를 부인하며 성북동 주택은 신 회장으로부터 자신이 직접 매입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 회장은 80년대 초 정수장학회와 육영재단 영남재단 등의 이사를 모두 맡을 정도로 박 전 대표와 무척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하지만 신 회장은 거듭 “당시 주택은 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지은 것이 맞다”고 밝히고 있다.
네 번째 의혹은 박 전 대표가 2002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복당시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2004년 2월 검찰은 “박근혜 의원이 2002년 복당시 한나라당으로부터 2억~3억 원을 받은 의혹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복당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유세 지원비로 받은 것”이라며 “전액을 수표로 받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유세 지원비란 명목도 애매한 데다 이 돈을 수표가 아닌 현금으로 받았다는 의혹이 새롭게 제기됐다. 당시 수사했던 대검 중수부의 안대희 부장은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보고받은 바와 조금 다르다”며 박 전 대표의 해명이 틀리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대선자금 수사라는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깊이 빠져들기 않기 위해 이 부분을 그냥 어정쩡하게 덮고 갔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