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범여권 대통합을 위해 나서 정치권의 주목을 받고 있다. | ||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은 지난 6월 26일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김원기 전 의장 같은 원로 의원께서 대통합을 위해 직접 나서는 상황까지 됐다”고 말했다.
정 의장의 이 같은 발언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김 전 의장의 역할을 확인해 준 것이었다. 김 전 의장은 지난 6월 22일 범여권 대통합을 역설하고 있는 ‘문·근·영’(문희상·김근태·정동영)과 정대철 전 열린우리당 고문 등과 함께 ‘5자 회동’을 가진 바 있다. ‘5자 회동’에 참석한 이들 가운데 유일하게 열린우리당에 소속된 ‘비탈당파’다. 국회출입기자들은 ‘갑작스럽게’ 김 전 의장이 나선 배경에 대해 의아해하며 급작스런 행보를 예사롭지 않게 봤다.
그날 회동 이후 기자가 김 전 의장에게 5자 회동에 참석한 배경을 묻자 전날(21일) DJ를 동교동 자택으로 예방했던 사실을 일부 공개했다. 그는 “어제 김대중 대통령을 만났다”고 운을 떼며 “(DJ는) 뭐가 그리 두려우냐, 정권재창출을 위해 전면에 나서서 (여권 대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셨다”고 ‘실토’했다. 그러면서 “대통합신당을 만들기 위한 시간이 촉박해서 한 사람이라도 힘을 더 보태야 한다는 생각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이 전면에 나선 배경에 DJ의 ‘하명’이 작용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5인 회동’ 당시 김 전 의장은 2003년 민주당 분당 사태에 대해서도 공식 사과했다. 매우 큰 상징성을 갖는 이 같은 사과도 범여권의 분열을 봉합하고서 대통합신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DJ의 의중이 실린 게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동교동 사정에 정통한 여권의 한 인사는 “김 전 대통령은 지금 이혼해 있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재혼하지 않으면 대선 승리는 요원하다고 보고 있으며 다시 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선 분당사태에 대해 (열린우리당이) 사과하고 (민주당이) 용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김 전 의장에게 얘기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DJ가 김 전 의장에게 대통합을 위해 전면에 나설 것을 당부한 까닭은 무엇일까.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한 중진의원은 이에 대해 “3김 시대가 끝나면서 정치권에는 ‘큰 어른’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탈권위주의 시대가 됐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다 보니 김 전 의장이 여권 정치인 가운데 국회의장을 역임한 가장 큰 어른이 됐다”며 “DJ도 그런 정치적 위상을 감안해서 김 전 의장에게 전면에 나설 것을 강하게 주문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5자회동 이후 김근태·문희상 전 의장과 박형규 목사, 고 문익환 목사의 부인 박용길 장로 등 범여권 정치인과 진보진영 시민단체 원로들과 함께 국민경선추진협의회의 상임고문을 맡았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초 노 대통령이 김대중 도서관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을 방문, 두 시간 동안 오찬을 가진 이후 두 사람 사이에 패였던 감정의 골이 상당 부분 메워졌다는 분석이다. 동교동계 출신인 탈당파 중진 의원은 당시 “두 분의 만남 자체가 이제부터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공개적으로 연애(합당 내지 통합)를 해도 좋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해석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중진의원의 예상과 달리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현재까지 통합은 물론 합당할 여건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당 사수파와 탈당파로 분리됐고, 민주당은 27일 김한길 의원이 이끄는 20여 명의 탈당파(통합신당)와 ‘중도통합민주당’으로 합당했다. 노 대통령과 DJ가 각각 제갈길을 가고 있는 형국이다.
게다가 올 대선을 어떤 방식으로 치를 것이냐에 대해서도 DJ와 노 대통령은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여권이 대통합신당을 만들어 단일후보로 대선을 치러야 한다는 입장이며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각 정파별로 후보를 선출해 대선 직전에 후보를 단일화해서 정권을 재창출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의장의 행동은 상당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동교동계 출신 탈당파 중진의원은 “정권재창출을 위해 향후 김 전 의장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며 “김 전 의장은 김 전 대통령과도 가깝고,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이라는 얘기까지 듣고 있기 때문에 두 전·현직대통령을 연결할 수 있는 가교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현재로서 김 전 의장만한 적임자가 없다”고 강조했다.
김 전 의장은 현재 열린우리당-통합민주당-국민중심당-시민사회세력-손학규 전 지사 등 모든 반한나라당 세력의 대통합을 통해 단일후보를 선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대통합을 위한 시간이 별로 남지 않은 범여권으로서는 김 전 의장이 마지막 해결사로 나선 것이 아니냐는 시각으로 앞으로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정병일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