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청단 설립을 위해 출연한 기관은 전국은행연합회 회원사들과 금융공기업 등 20여 곳으로 총 출연금은 4000억 원에 달한다. 은청단은 오는 2020년까지 1000억 원을 추가 모금해 최종적으로 5000억 원 규모의 기금 조성계획을 세워둔 상태다.
이명박 정부 말기에 만들어진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이 설립 과정과 모금 절차 등 ‘미르’와 판박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진은 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그런데 미르와 마찬가지로 은청단 출연금 모금 과정에서 정부 압박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은청단에 출연금을 낸 한 은행 간부는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큰돈을 출연하면서도 (이명박정부의 임기 말이라) 재단이 얼마 못 가 흐지부지될 것이란 우려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은청단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지만 사실상 정부가 추진하는 재단에 출연금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로 풀이된다. 야권에서도 정부 개입 없이 전국은행연합회 회원사들과 금융공기업 등 20여 곳이 일사불란하게 4000억 원에 달하는 기금을 모으는 것이 가능했겠냐며 의심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1월 3일 신년 국정연설에서 ‘창업에 나서는 젊은이들이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겠다’고 언급했고, 그 후 은청단 설립 작업은 급물살을 탔다. 곧바로 금융위원회가 청년창업지원펀드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불과 3개월 뒤 은청단이 출범했다.
그러나 은청단 측은 기금 마련 과정에서 강압은 없었다고 항변하고 있다. 은청단 측은 “재단 설립과정에서 금융당국과 협의를 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재단 설립은 정부의 강압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 아니라 당시 은행권의 사회공헌활동 강화 차원에서 결정된 사안”이라고 해명했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은청단은 설립 과정에서 절차적 하자도 다수 발견됐지만 초고속으로 재단설립 허가를 받았다. 이 또한 미르 재단 설립과정과 흡사하다. 은청단은 재단설립 신청서를 제출한 후 주말을 제외하고 3일 만에 허가를 받았다. 재단설립 심사에 통상 20일 이상이 소요되는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허가를 받은 셈이다.
또 창립총회 회의에 참석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8명 중 5명은 당시 은청단 관련 외부 출장 기록이 전혀 없었고, 일부 참석자의 의결서 기명날인과 출연확약서 인감증명 등이 불일치하기도 했다. 때문에 창립총회 회의록 자체가 가짜로 작성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회의록은 법인 허가 신청 시 핵심 구비 서류다. 허위로 작성됐다면 법인 허가 취소 사유가 될 수 있다.
이외에도 은청단은 출범 한 달여 만에 기획재정부로부터 지정기부금단체로 지정받아 세금혜택을 받았는데 금융위원회가 기재부에 은청단을 추천하는 문서에는 금융위원장 날인도 없었다. 지정기부금단체 지정 과정도 졸속으로 진행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은청단은 출범 당시 큰 기대를 모았지만 현재는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한 상태다. 출연금의 절반 가까이는 은행 예치금으로 잠자고 있고, 나머지 출연금의 대부분은 박근혜정부의 ‘성장사다리펀드’를 통해 간접투자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재단은 대부분의 투자금을 성장사다리펀드를 통해 간접투자하고 있으면서도 펀드가 투자하는 기업에 대한 심사 및 관리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은청단이 창업기업을 직접 발굴해 투자한 자금은 4년여간 68억 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5년 이후 이뤄진 신규 직접투자는 6억 원에 불과했다. 게다가 은청단의 주요 업무 중 하나였던 보증 업무는 2013년 이후 아예 중단됐다. 설립 당시 은청단은 향후 5000억 원 규모로 창업 보증을 지원하겠다고 계획했었지만 설립 초기 보증을 남발했다가 부실이 크게 늘어나자 2013년부터 보증 업무를 중단해버린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은청단의 인건비 지출은 매년 늘어나 지난해에는 8억 5000만 원이 넘는 돈을 인건비로 지출했다.
은청단이 집행한 기금 중 일부는 전현직 대통령 친인척 회사에 투자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은청단은 출연금 4000억 원 가운데 1903억 원을 간접투자로 운용하고 있다. 전체 간접투자 금액의 70%인 1324억 원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박근혜정부가 만든 성장사다리펀드에 투자됐다.
그런데 성장사다리펀드에 간접투자된 은청단 자금 중 93억 원은 박 대통령 이종사촌의 아들이 대주주로 있는 ‘컴퍼니케이파트너스’라는 회사에 투자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 조카사위가 대표인 LB인베스트먼트에도 24억 원이 투자됐다. 은청단의 주요 간접투자 운용사인 ‘IB자산운용’은 이 전 대통령 측근인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 지인이 운영하고 있는 업체에 20억 원을 투자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은청단 측은 “은청단은 투자업무규정에 따라 공신력이 있는 단체의 추천을 받고 투자심사위원회 심의를 거치는 등 재단 투자운용 지침을 철저하게 준수하고 있다”면서 “재단 설립과정과 기금 투자과정에서 문제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김해영 의원은 “은청단이 금융권에서 수천억 원을 모금한 과정과 재단 설립 과정 전반이 의혹투성이”라며 “금융권에 준조세 부담을 지웠다는 점에서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사태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재단 설립과 운영 과정에서 정부의 입김이 얼마나 작용했는지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