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 작업이 흥행하면 연임이 예상됐던 이광구 우리은행장의 행보에 최근 적신호가 켜졌다. 연합
연말 이광구 우리은행장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전직 관료 출신이 차기 우리은행장으로 낙점됐다는 소문을 차단하겠다는 것이 금융위의 의도였다.
하지만 금융위의 진화노력은 오히려 기름을 붓는 역효과를 낳았다. 인사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지 천명보다 ‘우리은행 매각에 중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이 일종의 엄포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우리은행 민영화의 첫 단추인 과점주주 매각이 성공할 경우 연임이 확실시된다던 이광구 행장이 갑자기 교체 대상으로 거론된 것은 본인의 과오 때문이 아니라, 정권 말기까지 아직 챙겨주지 못한 인사들에게 자리를 만들어주려는 작업의 일환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현재 금융권에서 거론되는 낙하산 후보는 2명이다. 한 사람은 금융당국 수장을 지낸 전직 금융감독원장 A 씨며, 다른 한 사람은 금융위 산하 기관장 출신 B 씨다. 두 사람은 모두 금융관료 출신이면서 현 정부와 인연이 있는 인물이어서 ‘한 자리’를 꿰찰 것으로 점쳐졌음에도 의외로 중용되지 않아 의문을 자아내기도 했다.
금융권에서는 오는 11월 11일을 기점으로 차기 은행장 구도에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은 우리은행 지분인수 본입찰일로, 금융권은 적어도 이때까지는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예비 입찰자들, 특히 해외 투자자들이 정부의 인사 개입 여부에 예민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해외 투자자들은 우리 정부가 금융사에 입김을 행사하는 관행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는 그간 우리은행 매각작업이 번번이 좌초한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따라서 최소한 지분 매각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당국이 어떠한 움직임도 드러내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입찰 결과에 따라 행동에 들어갈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입찰이 끝난 뒤에는 과점주주들이 누구냐에 따라 이 행장의 운명이 갈릴 수 있다. 형식상 정부 지분을 인수하는 과점주주들은 행장 선임에 직접 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 지분 4~8%를 사들일 과점주주들은 기본적으로 사외이사 추천권을 갖는다. 이 사외이사들은 차기 행장 선임에 참여한다. 이들은 향후 꾸려질 행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후보를 추천하고, 내년 3월 열릴 정기 주주총회에서 새 행장을 확정한다.
금융권은 만약 해외 투자자들이 우리은행 지분을 사들일 경우 정부의 개입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정부는 지분 매각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은행 주식 21%를 보유한 최대주주지만, 이미 행장 인사 개입 관행을 타파하고 민간 주주들에게 전권을 맡기겠다고 수차례 공언한 상태기 때문이다.
서울 중구 소공로 우리은행 본점.
금융권에선 일단 우리은행 지분 매각이 흥행에 성공하면 이 행장의 연임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본다. 과점주주들, 특히 해외 투자자들이 경영안정 등의 이유로 이 행장을 선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행장은 민영화 추진 과정에서 국내외 기업설명회(IR)를 통해 투자자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선 일등공신으로, 해외 투자자들에게는 낯익은 인물이다.
정부가 말을 바꿀 경우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국제소송 등을 당할 위험까지 있기 때문에 섣불리 낙하산을 내려 보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해외 투자자가 본입찰에 참여해 지분을 확보하면 차기 우리은행장 선임은 과점주주들에게 넘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이 경우 검증된 인물인 이광구 행장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문제는 지분 매각 작업이 예상대로 진행되지 못했을 때다. 이 경우 문제가 복잡해진다. 이 행장의 연임은 사실상 물 건너갈 가능성이 높고 낙하산을 원하는 정부와 우리은행 내부 잠룡들 간 경쟁이 시작될 수 있다.
‘낙하산’의 경우 앞서 말한 2명의 후보의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다. 두 사람은 모두 행정고시를 거친 관료 출신으로 경제부처와 금융당국 등에서 오랫동안 일한 전문가들이다. 행시는 A 씨가 2기수 선배지만 현재는 금융권에서 한 발 멀어진 상태인 반면 B 씨는 현직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라는 이점이 있다.
TK(대구·경북) 인맥인 A 씨는 지난 4월 국회의원 선거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했을 정도로 정·관계 인맥이 두텁다. 다만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뒤 현재는 뚜렷한 활동이 없는 상태다.
B 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씨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그가 관료와 산하기관장을 거치는 동안 주요 기관의 인사가 있을 때마다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런 친분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우리은행 내부에서는 고위 임원들이 지분 입찰 결과를 조용히 지켜보며 ‘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동건 영업지원본부 그룹장, 남기명 국내 그룹장, 정화영 중국법인장, 김승규 전 경영지원총괄 부사장, 김양진 전 수석부행장 등이 차기 행장 후보에 도전할 수 있는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