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대통령 탄핵과 하야 등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탄핵 관련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CBS>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10월 26일(27일 공표) 전국 19세 이상 성인 532명을 대상(총 통화 5486명 가운데 532명 응답 완료. 응답률은 9.7%)으로 한 긴급 여론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2%)에 따르면 ‘최순실 씨의 국정개입 파문에 대해 박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냐’는 물음에 ‘대통령 본인이 하야(사퇴)하거나 하야하지 않을 경우 탄핵이 추진돼야 한다’는 의견이 42.3%로 가장 많았다.
원외 정치권 인사들도 박 대통령 하야를 주장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10월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헌정 파괴 국정문란, 통치 시스템 파괴, 국가 위기 초래를 책임지고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사퇴)해야 한다”며 “국가 파괴 범죄 행위는 대통령이 자백했으니 야권은 탄핵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은수미 전 민주당 의원 또한 10월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근혜 대통령은 물러나야 한다”며 “정치권이 국회가 지금 전면에 나서 국민을 안심시키고 대한민국을 보호할 것을 호소한다”고 했다.
일각에선 ‘거국내각(특정한 정당이나 정파를 배경으로 하지 않는 내각)’ 요구가 나온다.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는 10월 26일 특별 성명을 통해 “당적을 버리고 국회와 협의해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라.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분을 국무총리로 임명, 총리에게 국정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기시라”고 촉구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또한 “지금 대통령은 제대로 된 리더십을 갖기 힘든 상황”이라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하지만 거국내각에 대한 실제 내부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야당 소속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거국내각 체제로 갔을 때 실수가 있으면 야당까지 손해를 보게 된다. 박근혜 정부의 과오로 몰고 가는 편이 더 낫다. 비서관 사퇴하는 선에서 마무리 짓고 싶어 한다”고 귀띔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정계를 강타하고 있지만 여·야는 박 대통령 탄핵에 대해서만큼은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야권은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의 사퇴, 국정조사와 특별검사 실시 등을 주장했다. 개별 의원들이 하야나 탄핵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당 차원에서의 논의는 아니었다. 이는 탄핵의 실익이 없기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야권에선 최순실 게이트가 계속 이어지는 편이 좋다.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원론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을 이유가 없다. 청와대가 비상식적 대응을 하면 할수록 국민적 공분이 커지니 정치적 이익은 야당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야당 소속 의원실의 다른 보좌진도 “섣불리 탄핵하지 말자는 분위기다. 특검으로 정확한 진상 규명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대부분이 현 상황을 신중하게 지켜보자는 입장이지만, 일부 강성파도 있다”고 귀띔했다.
탄핵이 현실적으로 통과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라는 풀이도 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가결되려면 대한민국 헌법 제65조에 의해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어서 발의는 가능하지만 의결까지 가려면 새누리당 의원 129명 가운데 29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새누리당의 한 보좌관은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설사 탄핵한다고 해서 어떻게 할 것이냐. 임기도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누가 운영하냐”며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박 대통령 탄핵이 성사될 경우 관련법에 따라 60일 이내에 대통령선거를 실시해야 하는데 그렇게 될 경우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 탄핵론의 근거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대한민국헌법 제65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각에서 박 대통령이 최 씨에게 연설문 등 자료를 넘긴 행위는 대통령기록물법 위반이기 때문에 탄핵의 사유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기록물법 제14조는 ‘누구든지 무단으로 대통령기록물을 파기·손상·은닉·멸실 또는 유출하거나 국외로 반출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법조계 의견은 분분하다. 나승철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연히 탄핵사유에 해당한다.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탄핵소추 될 당시 논란이 된 법 위반 문제로도 탄핵소추가 가능하다는 정치적 판단이 나왔다면 박 대통령은 지금 불거져 나오는 의혹으로 당연히 탄핵 소추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수사가 진행되지 않은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류여해 수원대 법학과 겸임교수는 “아직 수사된 게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하야와 탄핵 얘기가 나오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또한 대통령 기록물이라는 것은 비밀리에 얘기된 것을 뜻한다. 연설문은 다음날 전 국민이 알게 되는 내용이다. 다방면으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박 대통령 탄핵은 쉽지 않아 보인다. 전계완 정치평론가의 설명이다.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물러난다면 국가가 비상사태에 준하는 상태가 된다. 이는 제도적·절차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문제다. 현실 정치에서 실행되는 것은 매우 가능성이 낮다. 현재로선 대통령의 하야 가능성 또한 없어 보인다. 다만 대통령의 두 번째 대응에 대해 국민 여론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따라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대로 밝히고 본인도 수사를 받겠다고 말하면 하야 여론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또한 최순실 씨의 향후 행동도 대통령 거취에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