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26일 대통합민주신당 서울시당 창당대회에 참석한 범여권 후보들. | ||
결국 범여권은 대통합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6개월간 이합집산을 거듭했지만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데도, 뚜렷한 주자를 내세우는 데도 실패하고 다시 원점에 서게 됐다. 오히려 합당으로 인해 대선주자들 간의 주도권 경쟁만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여기에 남북정상회담까지 맞물리며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일 범여권 대선주자들의 경쟁 구도를 살펴봤다.
범여권 대선주자 중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지난 9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날 손 전 지사는 그동안 기르던 수염마저 깎고 대선 출마의 당찬 포부를 알렸다. 하지만 그의 앞길은 그리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야당보다 같은 범여권 내에서 손 전 지사를 향한 비난여론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일 천정배 의원은 손 전 지사를 ‘트로이 목마’에 비유하며 비난했고 지난 7일에는 한명숙 전 총리가 ‘손학규 필패론’을 주장했다. 또한 손 전 지사는 지난 3일 광주에서 “광주에 갇혀 있을 수 없으며 광주를 털고 가야한다”고 한 발언으로 범여권 내에서 ‘정통성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신당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렇듯 손 전 지사에 대한 견제가 극심하자 오충일 대표가 나서 “손 전 지사의 광주발언은 광주 기념행사나 추념행사가 광주 안의 일이 아니라 광주 밖으로 확대해 극복하자는 의미이지 5·18의 정신과 뜻을 훼손하자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옹호하는 듯한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이런 발언은 다시 창당 이전부터 일부에서 흘러나온 ‘민주신당이 손학규 당이냐’는 논란을 재점화했다.
창당 이전부터 일어온 ‘손학규 당’ 논란에 대해 손 전 지사 측은 “우리가 지분 요구를 한 적은 결코 없다”며 “선진평화연대는 창당준비위원회의 공동대표에 참여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손학규 당’이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오 대표가 손 전 지사의 ‘광주발언’을 옹호하고 나선 것을 가장 서운하게 생각한 사람은 바로 손 전 지사와 신당 내에서 치열하게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정동영 전 의장일 것이다. 정 전 의장 측은 오 대표의 발언을 두고 “오 대표가 단지 덕담 차원에서 한 얘기라 생각하고 있지만 당 대표가 특정후보를 옹호하는 듯한 현재의 모습은 좋지 못해 보인다”면서 서운함을 표했다.
현재 정 전 의장도 어려운 처지다. 캠프 내에서는 정 전 의장이 뚜렷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흐릿한 정치색을 보여주고 있다고 우려하는 소리가 나온다. 이에 대해 정 전 의장 측근은 “정 전 의장은 진보냐 개혁이냐의 이분법적 구도를 뛰어넘어서 실사구시적인 정책노선을 표방하는 것”이라며 “결코 막연한 중도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 8월 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손학규 전 지사가 정동영 전 의장의 축하를 받는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정 전 의장 측 관계자는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일부 386의원들이 대세에 편승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면서 “하지만 그것은 극소수의 얘기일 뿐이며 결코 바람직한 현상도 아니다. 그들이 캠프에 합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신당과 열린우리당의 합당으로 인해 합류하게 될 친노주자들의 갈 길도 바쁘다. 비록 내용상의 당 대 당 통합이라고는 하지만 새로 합류하는 친노주자들은 당연히 당내 역학관계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컷오프와 이어서 치러질 오픈프라이머리 등 당내 경선이 더욱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한명숙 전 총리는 지난 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해찬·유시민 의원에게 후보 단일화를 제안했다. 합당이 이뤄지고 나서도 손 전 지사와 정 전 의장에 비해 지지도가 뒤지고 있는 친노 후보들이 단일화해 경쟁하자는 이야기다.
하지만 친노 세력이 단일화할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보인다. 유시민 전 장관은 한 전 총리가 제안한 ‘후보 단일화’에 대해 “지금은 나 혼자서도 손 전 지사를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거부 의사를 내 보였다. 더구나 유 전 장관은 범여권 주자들이 손 전 지사를 협공하는 것에 대해 “들어와 달라고 해놓고 들어오니까 공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손 전 지사가 범여권으로 넘어온 이유와 입장이 바뀐 배경을 정확히 따지는 식으로 경쟁해야 한다”고 범여권 세력의 손 전 지사 때리기를 비난한 바 있다.
반면 이해찬 전 총리는 ‘후보 단일화’에 대해 “정통성 있는 평화민주개혁세력이 당선될 수 있는 후보 단일화 방안을 지지한다”며 손 전 지사를 공격하는 동시에 한 전 총리의 제안을 지지했다. 남북정상회담의 효과를 내심 기대하고 있는 이 전 총리로서는 후보 단일화가 바람직한 상황이다. 그러나 친노주자의 후보 단일화는 일단 어려워 보인다. 결국 주자들이 난립할 경우 컷오프제가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누구하나 자신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여론조사에서 나오는 지지율은 오차범위를 감안한다면 거의 백중세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친노주자들 중 아직 지지도가 미약한 주자들의 경우는 더더욱 바쁜 모습이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