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한 관계자는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라인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통일부를 통한 공식적인 접촉이 있고, 국정원을 통한 비공개 공식 접촉, 소위 말하는 ‘밀사’ 혹은 ‘특사’를 이용한 막후 비선 라인을 가동하는 것 등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초기에는 통일부를 통한 공식적인 접촉을, 중반기 이후부터는 국정원을 통한 비공개 공식 접촉을 선호해 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2000년 김대중 정부의 남북정상회담은 박지원-송호경이라는 밀사 성격의 비선 조직이 가동된 결과였는데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음을 노 대통령이 학습효과로 체득했기 때문이라는 것.
김 원장과 서 차장은 모두 대북전략국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모두 지난 김대중 정부에서 대북전략국 소속 과장으로 6·15 남북정상회담의 막후 실무자 역할을 했다. 역시 이 부서에 근무한 적이 있다고 밝힌 전직 국정원 관계자는 “김 원장은 대북전략국에서 함께 근무하며 상사로 모신 적이 있다. 북한은 대남선전부가 최고의 엘리트만 모이는 곳이지만 우리는 오히려 대북전략국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가운데서 두 사람은 성실성으로 부서의 핵심으로 인정받았고 DJ 정부 때 6·15정상회담으로 그 빛을 톡톡히 본 케이스”라고 전했다.
2000년 6·15 정상회담의 세 주역으로 꼽혔던 이가 바로 김보현 전 3차장과 서영교 전 대북전략국장, 서훈 차장 등이다. 이들을 가리켜 ‘KSS라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전직 국정원 관계자는 “김 원장 역시 회담 준비를 위해 평양을 몇 차례 오가는 등 KSS라인 못지않은 주역급이었다”고 소개했다. 김 전 차장은 대북전략국장을 맡으며 6·15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끈 뒤 그 공을 인정받아 2000년 7월 신설된 3차장(차관급)에 임명됐다. 그 바통을 이어받은 이가 서 전 국장이었다.
노 대통령이 주목한 인물은 이들 네 명 가운데 김 원장과 서훈 차장이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노 대통령은 대북창구의 연속성을 위해 김보현 전 차장과 서영교 전 국장을 유임시키는 대신에 김만복 원장을 먼저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NSC 정보관리실장(1급)으로 임명한 것. 이어 2004년 2월 이번에는 서훈 차장을 김 원장 후임으로 NSC 정보관리실장으로 임명했다. 김 원장은 차관급인 기조실장으로 친정에 복귀시켰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서훈 차장도 국정원에 복귀시켰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노 대통령으로선 김 원장과 서 차장을 향후 중용하기 위해 청와대로 불러들여 일종의 ‘코드수업’을 시킨 격”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서훈 차장이 2004년 12월 친정에 복귀하면서 받은 보직은 역시 대북 창구의 본산인 대북전략국의 국장이었다. 반면 김보현 전 차장과 서영교 전 국장은 해임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김 전 차장과 서 전 국장이 물러나면서 DJ 정권의 대북라인이 완전히 물갈이됐다”는 평이 나왔지만 사실상 서훈 차장의 전면 등장으로 ‘물갈이가 아니라 세대교체 쪽으로 보는 것이 더 맞다’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이후부터 대북 접촉에서 서훈 차장을 중심으로 한 국정원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지난해 11월 김 원장은 1차장에서 원장으로, 서훈 차장은 국장에서 3차장으로 각각 승진했다. 내곡동 주변에서는 “대북전략국이 완전히 국정원을 장악했다”는 말이 나왔다. 특히 김 원장의 전력이 시사하는 바가 컸다. 그는 DJ정권 초기인 98~99년 남북한과 미국, 중국의 4자회담에 한국 측 대표로 참가한 바 있다. 국정원 1차장 출신인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김 원장과 서 차장의 승진은 내년(2007년) 정략적인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추진하기 위한 팀 구성”이라고 언급했다. 정략적이든 아니든 간에 대북전략국이 남북정상회담의 ‘미다스의 손’이라는 점은 입증된 셈이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