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4시쯤 광화문 정부청사 부근 폴리스 라인 앞에서 경찰은 박근혜 퇴진을 외치던 중고생 약 600명을 막아서며 경고했다. 2시부터 4시까지 50명으로 신고된 ‘중고생 혁명’의 행진은 전국 중고생이 모여들며 600여 명으로 늘어났다. 행진단이 ‘중고생이 앞장서서 혁명정권 세워내자’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든 채 정부청사 앞으로 걷자 경찰은 바짝 긴장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학생들도 경찰도 과격한 움직임을 자제했다. 선두에 선 일부가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으나 경찰은 크게 반응하지 않고 자리만 지켰다. 한 경찰은 “학생에게 방패를 들지 말라”며 소리쳤다. 시위대가 다가오면 반사적으로 방패를 올려왔던 일선 경찰은 명령과 본능 사이에서 방패를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5일 오후 4시쯤 세종로 정부청사 앞에서 대치 중에 중고생 행진단을 채증하는 경찰
청와대까지 길을 터달라는 중고생의 요청에 경찰은 해산을 명령했다. 경찰의 헬맷 사이로 채증용 카메라가 올라왔다. 곳곳에서 “중고생까지 채증할 거냐! 너무한 것 아니냐!”는 어른들의 소리가 울려퍼졌다. 페이스북 ‘중고생 혁명’에서 시위 정보를 알고 참가한 장희수(16·여) 양은 “사법처리한다는데 별 생각은 없다. 경찰이라고 우리 이해 못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앞에 경찰분들은 우리 걱정해주시더라“며 ”우리는 박근혜가 하야하고 우리나라를 이끌어줄 제대로 된 지도자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에 여기에 섰다”고 말했다.
촛불문화제에 참여하려 강서구와 양천구에서 온 중학생들
일부 폴리스 라인에서 설전이 벌어지긴 했지만 큰 충돌은 보이지 않았다. 30분 정도 경찰과 작은 마찰을 빚던 중고생 행진단은 경찰의 명령에 따라 세종대왕 동상 앞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조금 물러나 폴리스 라인이 세워진 세종대왕 동상 바로 앞에 주저앉았다. 4시 45분쯤 경찰은 세종대왕 동상 뒤로 차벽을 배치했다. 기동대 1000여 명이 차벽 앞에 자리를 잡고 섰다.
무전기에서 “긴장해라. 정신 차리고 헬맷 착용하라”는 무전이 울려 퍼졌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정돈된 시위에 세종대왕 동상 앞을 채운 경찰 기동대는 크게 간헐적으로 교대 휴식을 취했다. 1개조가 전방에 서서 방패를 세우면 2개 조는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페트병에 가득한 물이 돌아가며 경찰 목을 축였고 초코바가 손에서 손으로 전달됐다. 5시쯤 경찰 버스 유리창 사이로 주먹밥이 공급됐다. 2개조가 은박지를 벗겨 주먹밥을 먹고 난 뒤 앞에 방패를 들고 섰던 조와 교체해 배를 채웠다.
5일 오후 5시 버스 유리창 사이로 주먹밥을 지급 중인 경찰
시위대가 큰 움직임을 보이면 주먹밥을 먹던 경찰은 다시 은박지로 밥을 싸고 헬맷을 쓴 뒤 일어나긴 했지만 별 일 없이 저녁식사를 마쳤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은 “왜 시위하는지 이렇게 이해된 적은 처음이다. 과격할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 충돌조차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을 가득 채운 촛불문화제 참가자들
5시 15분쯤 어둠이 깔리고 세종문화회관 앞 촛불은 밝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광화문을 찾았다. 삼삼오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불을 나눠 켰다. 등산복을 단단히 챙긴 중년층도 빠지지 않았다. 중절모에 정장을 차려 입은 노인들도 쉽게 눈에 띄었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엄마 양손을 잡은 아이 2명이 잔걸음을 옮겼다. 아이들 손에는 촛불을 들려 있었다. 두 아이의 엄마 박은영(40·여) 씨는 “도저히 분노가 차서 참을 수 없었다. 하도 세상이 떠들어 대니까 아이들도 대체 이게 뭐냐고 물어서 직접 데리고 왔다. 이런 세상을 물려줄 수 없다”며 “시위가 과격해지면 다칠 수도 있지 않겠냐며 걱정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별로 무섭지 않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괜찮아요”라 화답했다.
처음 시위에 참여한 사람도 눈에 띄었다. 등산복을 챙겨 입고 배낭을 멘 김영찬(36) 씨는 “난 시위란 걸 처음 나왔다. 이제까지 정국이 시끄러울 때도 난 뉴스나 보며 혀나 찼지 시위를 참여한 적 없다”며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담화문을 보고 더 열이 받았다. 용서를 구하고 시인을 하는 게 순서인데 순간만 모면하려는 박근혜의 모습을 보고 분노했다”고 했다.
세대에 따라 나뉘는 이념 논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장남수(75) 씨는 “지금은 세대나 진보보수를 따질 때가 아니다. 옳지 않은 것은 모든 걸 떠나 비판해야 한다. 일부가 마음대로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꼴을 차마 볼 수 없어 나왔다”며 “돌아가는 현실을 묵과하면 안 된다. 이 정부를 반드시 파탄내야 한다는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시민 주최 추산 10만 명, 경찰 추산 4만 3000명의 인파가 광화문을 채웠다. 경찰은 이들을 관리하려 중대 220개, 총 1만 7000여 명을 투입했다. 세종대왕 동상을 기준으로 서로가 대치하고 있지만 오후 8시 50분까지 별 다른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남녀노소가 든 촛불과 형광색 경찰복은 밤이 깊어갈수록 밝은 빛을 내고 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