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신년 들어 노무현 당선자의 정권인수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정 대표의 인식에도 변화 조짐이 나타났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전언이다. 자신이 지난해 월드컵과 후보단일화 승복 등을 통해 쌓아온 정치적 자산은 이제 정치권에서는 불용자산이 된 반면 모든 정치적 상황이 노 당선자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정치적 현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성 있는 재기 구상을 가다듬고 있다는 것이다.
▲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 | ||
측근들에 따르면 정 대표는 두 가지 이유에서 정치적 봄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첫째는 ‘망각’이다. 자신의 ‘노무현 지지철회’는 지금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정치적 타격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희미해진다는 것. 특히 우리사회에서 정치적 사안에 대한 평가나 국민정서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변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노 당선자가 처한 정치적 환경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지금은 대선승리의 기세가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상당한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 당선자의 경우 역대 정권 중 최악의 소수정권으로 평가되는 데다 당선 한 달이 지나지 않았는데 재계를 포함한 보수진영의 반발이 노골화되고 있다.
따라서 ‘노무현 지지철회’ 사건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진 상황에서 노 당선자가 특유의 돌출행동으로 위기를 자초할 경우 정 대표의 정치권 일선 복귀의 명분과 통로가 자연스럽게 조성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정 대표는 ‘망각’을 가속화하기 위해 충분한 여건이 조성되기 전에는 공개적인 행보를 최대한 자제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들에게 ‘MJ’라는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노무현 지지철회’의 기억을 재생시켜 불리한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최근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 3개층에 걸쳐 있던 중앙당사를 1개 층으로 축소하고 중앙당 사무처 요원도 필수요원만 남기고 정리했다.
또 지난 6일 뒤늦게 치러진 당 시무식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대한축구협회장직도 희망하는 인사가 있을 경우 물러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정 대표는 비공개적인 활동에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측근들에게 통합21 출입기자들과의 접촉을 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기 상황에 대비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통합21 산하에 정치발전 연구소 등을 두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