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의 고비마다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드러낸 광주-전남지역민들이 이번 대선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사진은 광주시 전경. 사진=광주시청 홈페이지 | ||
조금 과장하면 ‘죽어도 표는 줄 수 없다’던 한나라당이 독주하고 있는 마당이지만 어디에서도 대선이야기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아니 하지 않는다. 누구를 점친다거나 비판한다거나 지지한다거나 하는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범여권 주자들이 지역을 들락거리며 구애하고 있지만 찍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는 ‘잔챙이 후보’들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는 이야기다. 애정 어린 시선을 줄 인물이 없다는 이야기도 흔히 들린다. 한마디로 2007 대선을 맞는 광주·전남의 민심은 그야말로 ‘시계 제로’ 상태다.
이런 현상은 어디에서 왔을까. 우선은 깊고 큰 절망감이라는 것이 지역 정치인들의 분석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여권에 대한 서운함, 여권 후보들의 지리멸렬함에 대한 실망, 그리고 한나라당의 독주와 집권 가능성에 대한 안타까움 등이 겹겹이 중첩된 절망감이라는 이야기다.
사실 광주·전남 지역민들은 정치적 자부심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 크다. 택시기사인 이성식 씨(44·광주시 서구 쌍촌동)는 “비록 가난하고 핍박받던 시절이 있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항상 정의의 편에 서 있었고, 고비의 순간마다 중요한 결정을 해 왔던 지역 사람들이고, 특히나 두 번 연속 정권을 창출하는 데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광주시청. | ||
노 대통령과 여권에 대한 불만이 먼 원인이라면, 현 범여권 주자들에 대한 불만은 가까운 원인으로 지적된다. 사실 최근 범여권이 민주신당으로 헤쳐모이고 많은 ‘용’들이 모여 저마다 대권을 노리고 있으나 지역민들의 시선은 매우 싸늘한 편이다. 진우영 씨(56·광주시 서구 화정동)는 “솔직히 지지할 만한 후보도 없다. 야당은 경제대통령이니 뭐니 나름대로 이미지를 굳혀 가는데 집안정리도 못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신뢰가 가겠느냐”고 물었다.
이처럼 소위 범여권의 혼란스러운 모습 못지않게 불만스러운 것은 주자들의 면면. 지역 유권자들의 범여권 주자들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정 줄 만한 사람’이 없다는 데 모아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이 지역에서도 가장 선호도가 높다. 지난 7월 28일 광주일보와 KBC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조사 발표한 범여권 후보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손 전 지사가 22.9%로 1위를 차지했다. 이런 결과는 범여권 내 뚜렷한 주자가 없는데다 민주화운동 경력 등 비호감적 요소가 덜한 그의 개인적 성향이나 태도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그에 대한 지역의 전반적인 여론은 호의적이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한나라당이 과거의 아픈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반성 또는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다고 믿는 지역민들의 정서상 손 전 지사의 한나라당 전력은 표심을 얻기에 어려운 요인임이 분명하다. 전남대 한 교수는 “개인적 능력이나 커리어는 범여권 주자 가운데 손 전 지사가 빠지지 않으나 한나라당 전력이라는 점에서 보면 지역민들 마음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손 전 지사가 후보로 최종 결정된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현재까지 광주·전남 지역민들의 마음은 분명히 아니다”고 말했다.
호남 연고를 내세우고 있는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역시 마찬가지다. 호남출신이라는 프리미엄이 있지만 광주·전남 유권자들의 마음을 확실히 끌지는 못하고 있다. 광주일보 등 지방신문협회 6월 조사에서는 광주·전남지역에서 22.8%로 손 전 지사를 밀어내고 1위에 올랐지만, 7월 광주일보와 KBC 조사에서는 17%로 2위에 머물렀다. 깨끗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불안감, 넓지 못한 정치적 입지 등이 불안요인으로 꼽힌다.
이 밖에도 한명숙 전 총리, 유시민 의원, 천정배 전 장관 등 범여권 주자들의 지역 내 인기는 미미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낙마한 고건 전 총리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아쉬워하는 소리도 들리고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처럼 참신한 이미지의 주자를 원하는 시민들도 눈에 띈다.
조순형 의원 등 민주당쪽 주자들에 대한 지지도 역시 형편없다. 상당수 지역 유권자들은 민주당이 이미 시대중심에 서지 못하는, 스러져가는 정당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아직은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진단이 우세하다. 궁극적으로 이 지역 민심이 한나라당에 쏠리기는 어려울 것이며 점차 ‘차선의 선택’이라도 하는 쪽으로 마음을 정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전망이다. 김홍업 의원의 출마와 이에 대한 지원 등으로 DJ에 대한 지역 내 여론이 나빠졌고, 그의 정치일선에서의 영향력은 떨어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DJ 향수는 남아있는 게 사실이다. 지역의 상당수 사람들로서는 동교동쪽의 무게중심이 여권 어느 후보에게 쏠리느냐가 가장 큰 관심사다.
신대운 전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 상임운영위원장은 “아직도 세력과 후보들이 갈라져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야당과 1 대 1로 맞붙을 후보,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후보를 내고 그 후보가 당선될 수 있도록 역량을 모으고 있으며 그 과정에 시민세력의 영향력이 클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100여 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 한나라당의 독주와 여권의 무기력함 속에서 광주·전남 유권자들이 남은 기간 동안 어떤 판단을 하고 또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아직은 예단키 어렵다.
광주=김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