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1심 선고 직후 홍업씨가 보석으로 석방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따가운 여론의 벽을 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동생 홍걸씨가 지난 11일 집행유예로 전격 석방되면서 ‘홍업씨 보석이 더 어렵게 된 것이 아닌가’라는 시각도 있다. 여섯달째를 맞는 홍업씨의 구치소 생활을 들여다봤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3층 13동 14호실. 2.17평 크기 독방에 수세식 좌변기와 세면대 등의 시설을 갖췄다. 물론 TV도 설치돼 있다. 홍업씨는 월동기를 맞아 아침 6시40분에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식사는 일반 재소자들과 똑같이 하고 있다. 닭고기나 컵라면 등의 간식거리를 신청할 수도 있으나 ‘체면 때문에’ 거의 사먹지 않는다고 한다.
▲ 김홍업씨 | ||
수감된 이래 성경 신학서적을 합쳐 3번째 독파했다고 한다. 특히 좋아하는 대목은 로마서 강해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그리고 기독교 잡지 <생명의 삶>도 즐겨본다고 한다.
홍업씨는 면회 오는 측근들에게 “성경이나 종교서적 외에 다른 일반서적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며 괴로운 마음을 다스리려는 심경의 일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데 예외로 조정래 장편소설 <한강>은 10권 모두 읽었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동생 홍걸씨도 수감 생활 때 <한강>을 읽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은 4.19와 5.16 등을 거쳐 80년 5.18광주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격동기 민초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다음은 면회시간. 홍업씨는 일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6일 동안 특별면회를 하고 있다고 한다. 면회시간은 보통 20~30분 정도. 주로 면회는 간단한 응접세트가 놓인 특별접견실에서 이뤄진다.
부인 신선련씨가 일주일에 몇 번 단독으로 면회를 한다고 한다. 주로 건강과 종교얘기를 나눈다고. 그 외에는 친구와 경호원 등의 측근들이 면회를 온다. 친구는 옛날 역삼동 사무실에서 친하게 지내던 ‘화투친구’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사업을 하는 친구들은 거의 면회를 오지 않아 홍업씨가 매우 섭섭해 한다는 후문. 이래 저래 사업상 ‘약점’이 있는 친구들은 홍업씨가 구치소 생활을 한 뒤로 ‘딱’ 발길을 끊었다고 한다.
홍업씨는 아직까지 한번도 자신을 면회오지 않은 어머니 이희호 여사에게는 서운함보다 미안함이 앞선다고 한다. “도움을 못줄망정 폐만 끼치고 있다”며 자괴감에 빠져있다고. 동생 홍걸씨가 먼저 출소한 데 대해서는 “홍걸이가 잘 곳이 없어 청와대에서 잤다는 얘기 들었다. 선고 앞두고 내심 걱정했는데 일이 잘 된 것 같아 다행이다”며 안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동생이 출소한 뒤 동생이 지냈던 방을 지날 때마다 서운하고 쓸쓸하더라”고 측근에게 전했다고 한다. 홍업씨는 항소심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1심에서 ‘아쉬운 부분’이 많아 이번에는 단단히 준비하고 재판에 임할 것이라고 한다.
사실 홍업씨는 1심 재판이 “여론 재판이었다”며 내심 재판부의 보다 공정한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홍업씨는 검찰은 물론 변호인단에도 똑같이 불만을 가지고 있다. 홍업씨는 검찰 조사과정에서 검사들로부터 한 가지 조언을 받았다고 한다.
애매할 경우 “지금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사자가 그렇게 얘기했다면 그랬을 수도 있었을 것”(홍업씨는 이 말을 법정에서 자주 했다)이라고 대답하라고 했다는 것. 그런데 홍업씨는 이 말이 결국 자신을 묶는 올가미로 작용했다고 여기고 있다. 이 말이 법정에서 혐의를 인정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과 상관없어 당연히 빠질 줄 알았던 성원건설 3억원 수수건이 재판부의 판결 근거에 포함돼 있었다는 점도 불만이다. 변호인단도 그 사안은 판결과정에 영향을 주지 않고 빠진 줄 알고 있었다가 낭패를 본 것으로 전해진다. 홍업씨는 “변호사들이 비싼 수임료 받으면서 뭐 하는지 모르겠다”며 매우 언짢아했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