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씨는 1일 오후 늦게 인천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정연씨에 대한 한나라당의 보호작전은 당일 공항에서부터 시작됐다. 공항에는 그의 귀국사실을 안 일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정연씨를 ‘보호하라’는 특별명령을 받은 당 관계자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정연씨는 도착과 함께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받아야 했다. 그는 “병풍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장례 때문에 왔으며 장례가 끝난 뒤 바로 돌아갈 것”이라고 짧게 답변한 뒤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갔다.
▲ 2일 오전 할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발인을 하는 이정연씨. <사진공동취재단> | ||
기자들도 이런 사정을 감안해 취재를 일단 접기로 했다. 물론 일부 기자들은 관계자들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기자들과 경호원들 사이에 잠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정연씨는 다음날 서울 혜화동 성당에서 열린 영결미사 때부터 공식적으로 촬영을 허락했다. 그는 할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언론에 등장했다.
그가 맏상주만이 들 수 있는 고인의 영정을 든 데는 이유가 있다. 미국 마운트사이나이 병원 교수로 있는 큰아버지(이회정) 슬하에는 딸만 있을 뿐 아들은 없다. 자연스레 차남인 아버지(이회창)쪽으로 순서가 넘어와 결국 장남인 자신이 그 역할을 해야 했던 것. 그래서 정연씨는 이 후보 집안의 맏손자인 셈이다. 이런 가족관계 때문에 정연씨에 대한 이 후보 집안의 배려는 상당하다.
그는 2일 장지인 충남 예산에서 하관식을 마치고 나서도 예산 종갓집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서울로 돌아오기도 했다. 정연씨는 이후 언론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경호원들의 ‘보호’로 접근도 사실상 불가능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자신이 군에 안갔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포함해 한나라당이 엄청난 시련을 겪었던 만큼 본인 스스로가 굉장히 조심하고 있다”며 그 이유를 밝혔다.
정연씨 보호작전은 일차적으로 성공했다. 사실 그는 대선 이후에서야 귀국할 계획을 잡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맏손자가 귀국하지 않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는 판단 하에 어쩔 수 없이 귀국하긴 했지만 이 후보측 관계자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일부에서는 그의 얼굴에 살이라도 붙어 국민들이 오해라도 하면 어쩌나하는 우려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도 그의 얼굴은 전보다 더 수척해져 있었다. 보호작전은 그의 모습 때문에도 한층 수월하게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