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남경필 경기도지사, 손경식 CJ 회장 등이 지난 5월 20일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K-컬처밸리 기공식을 마친 뒤 홍보관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 “K-컬처밸리사업은 청와대 제안” 차은택 연루 의혹 “모르는 일”
-도의회, 남 지사 ‘차은택 K-컬처밸리 특위’ 증인 요청...참석 여부 불투명
[일요신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여권 내 차기주자인 남경필 경기도지사에게 불똥이 튀고 있다. ‘K-컬처밸리’ 사업자로 CJ그룹이 선정되는 과정에서 최순실 씨의 측근인 차은택 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점차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차 씨 연루 의혹을 받는 K-컬처밸리 조성 사업에 대해 청와대가 먼저 제안했으며, 차 씨 연루는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K-컬처밸리 특혜 의혹은 경기도를 넘어 남 지사에게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분위기다.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귀국한 차은택 씨를 공항에서 긴급체포해 조사 중인 검찰은 CJ그룹이 추진 중인 K-컬처밸리 등 문화창조육성사업 전반에 대한 조사도 진행할 방침이다. CJ그룹은 물론 남 지사와 경기도가 검찰 수사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다.
K-컬처밸리는 정부의 문화창조융합벨트 구축 계획에 따라 고양시 일산 한류월드 부지에 호텔과 상업시설, 테마파크 등을 조성하는 사업으로 CJ가 2017년까지 1조 4000억 원을 투자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CJ와 LOI(투자협력 의향서) 체결 이후 진행된 공모 절차에 단독 응모한 CJ E&M 컨소시엄이 지난해 12월 29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탄력을 받았다. 경기도의회는 “CJ E&M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날 박근혜 대통령과 차 씨, CJ 손경식 회장이 만났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며 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에 차 씨가 관련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상태다. 차 씨는 K-컬처밸리 등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을 주도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문화창조융합본부의 초대 본부장을 지냈다
하지만 K-컬처밸리는 10년 이상 방치된 한류월드 부지에 정부의 문화창조융합벨트 구축 계획이 정부를 앞세운 개인 주도의 재벌에게 특혜를 주는 한편 절차상 중요한 부분인 경기도와 고양시의 의견이 배제된 채 진행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야기했다. 다만 그동안엔 특혜시비는 있었지만 지역발전상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사업자인 CJ 측은 “차 씨와 관련이 없는데도 K-컬처밸리 사업에 지장을 받을까봐 우려된다”면서도 K-컬처밸리는 정부예산을 받아 진행되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사업을 접거나 백지화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과 남경필 경기도지사, 손경식 CJ그룹 회장 등 참석자들이 지난 5월 20일 고양시에서 열린 K-컬쳐밸리 기공식에서 버튼을 누르고 있다. 왼쪽부터 김춘학 CJ 창조경제추진단장, 유재헌 유잠스튜디오 대표, 하회진 레드로버 대표, 남경필 경기도지사, 박근혜 대통령, 손경식 CJ그룹 회장, 김종덕 문체부 장관, 최성 고양시장, 고순동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대표. 연합뉴스
경기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2월 11일 K-컬처밸리 조성을 위한 CJ-고양시-경기도 간 LOI 체결 얼마 전에 청와대 행정관으로부터 ‘K-컬처밸리 사업을 정부 문화융성프로젝트의 하나로 포함해 추진하겠다. 잘 준비해 달라’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후 문체부 담당 부서에서 도 담당 부서로 이메일을 통해 대통령이 참석해 K-컬처밸리 LOI를 체결할 예정이며 남 지사의 참석을 요청한 것이라고 전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청와대 전화 이전부터 CJ의 제안에 따라 한류월드 부지에 테마파크 조성 사업을 협의 중이었다”며 “다만 정부가 협약을 체결하자고 했으나 당시 준비가 덜 돼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할 상황은 아니었다. 도 입장에서는 2005년 처음 시작한 한류월드 조성 사업이 지지부진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부에서 나서 직접 사업을 추진한다면 당연히 환영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경기도는 “CJ와 협상 및 부지 공급 계약 등은 법적 하자 없이 진행됐다”면서 “차 씨 관련설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한다. 이 부분은 청와대와 문체부 등에서 해명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2015년 8월 1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맹희 CJ 명예회장의 빈소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조사특위는 진실 규명을 위해 차 씨가 대표로 있는 아프리카픽처스에 참고인 출석 요구서를 발송했고, 남 지사의 증인 출석도 요청한 상태다. 조사특위는 남 지사가 아무리 정부주도 사업이라고 해도 도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 내용을 몰랐다면 스스로 ‘무능함’을 자인한 꼴이고, 미리 알았다면 차 씨와 CJ 등 각종 특혜에 관여한 것이라며 반드시 실체적 진실을 밝히겠다는 각오다. 남 지사는 아직까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조만간 입장을 정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남 지사는 CJ 등 재벌 특혜 의혹을 넘어 박 대통령 하야 운동으로 번지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의 또 다른 핵심 당사자인 차 씨와의 연관성 의혹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K-컬처밸리 사업이 축소되거나 지연될 경우 남 지사가 구상했던 경기북부와 신성장 동력사업의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권내 차기주자로 분류되고 있는 남 지사에겐 재벌과 비선실세가 ‘불명예 꼬리표’로 붙여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실제로 일부 도의원들은 남 지사의 ‘비선 인사’ 의혹을 받고 있는 정무실에 대한 감사를 요청하고 나선 상태다. 차 씨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남 지사의 향후 대권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