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민중총궐기 투쟁본부 등이 주최한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 분노문화제에서 고교생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임준선기자 kjlim@ilyo.co.kr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결국 하야를 안 하고는 못 배길 것”이라며 박 대통령이 물러날 것이라고 점쳤다. ‘진보 진영 멘토’로 불리는 남 전 장관은 제10~13대 국회의원과 제11대 노동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앞으로도 더 커질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의 민심은 박근혜 대통령 하야다. 하야는 즉각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여러 번의 충격이 가해져 새누리당이 와해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국민이 겪은 충격도 점진적이었다.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하야도 순차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남 전 장관은 국민들이 분노하는 원인으로 ‘샤머니즘적 부정부패’를 꼽았다. 그는 “박 대통령이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 과거에도 대통령 측근들은 수많은 범죄로 구설수에 올랐다. 전두환·노태우 씨는 기업으로부터 수천억의 비자금을 받았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의 핵심은 샤머니즘이다. 최순실과 샤머니즘이 복합적인 효과를 일으키면서 국민들 사이에 샤머니즘적 부정부패에 대한 분노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최순실 씨 아버지 최태민 목사는 사이비 종교의 색채가 있는 영세교 교주였다. 그는 영세교를 이용해 박정희 대통령 일가에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수의 외신들이 “샤머니즘 종교집단이 연루된 스캔들(scandalinvolving shamanistic cult)이 한국 대통령을 위협하고 있다”고 보도하는 까닭이다.
종교 지도자들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 예배를 주재한 고명진 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는 “대한민국 경제는 60여 년 만에 급격하게 부흥했다. 하지만 도덕의식은 그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기업, 종교인들까지 부정직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 특히 사회 전반이 ‘높은 가치’보다 ‘낮은 가치’를 추구하는 분위기다. ‘높은 가치’란 많이 가질수록 타인이 덕을 보는 가치다. 용서, 사랑, 충성, 겸손 등을 의미한다. 권력과 재화 그리고 물질을 많이 가질수록 상대적으로 타인은 적게 갖는다. 이것이 ‘낮은 가치’다. 낮은 가치가 한국 사회를 병들게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이필상 서울대 겸임교수(전 고려대 총장)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원인을 ‘대통령제 폐해’로 진단했다. 이 교수는 “정치권력이 경제와 사회를 지배하면서 불법과 비리를 저질렀다. 일단 비선실세가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것이 심각하다. 박 대통령도 문제지만 비선실세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서 기업한테 돈을 뜯었다. 이는 반국가적인 범죄행위다. 우리 국민이 어렵게 일궈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한꺼번에 흔드는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우리나라의 정치권력이 대통령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제의 폐단이다. 모든 권력을 대통령이 가지고 있으니 몇몇 사람이 국정농단을 저질러 힘의 집중현상이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대통령제 폐해에 대한 문제 의식은 개헌 논의와 맞물리고 있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자신의 SNS에 “최순실이라는 무명인(청와대와 정부의 핵심 관계자들이 모두 모른다던) 사건이 대한민국을 급속하게 블랙홀로 몰아가는 와중에 우리는 정작 가장 중요한 ‘민생’을 잊고 있다”면서 “재계서열 1위라는 삼성은 이 무명인이 급조한 회사와 딸에게 35억여 원을 직접 지원했다. 소위 비선 실세 줄대기 일환이다.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은 이 무명인이 진두지휘하는 신생재단에 앞다퉈 기부해 순식간에 800억 원을 모았다. 이런 거액의 돈이 숨은 권력에게 간 데에는 정경유착의 검은 고리가 있을 거라는 것쯤은 모든 국민이 다 안다. 이런 권력과 거대자본의 유착이 그간 경제민주화를 방해해 온 것이며, 이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국가원로들은 다양한 해법을 제시했다. 이들은 박 대통령 결단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고명진 목사는 “박 대통령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국민을 향해 진실한 목소리로 호소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해법이다. 박 대통령이 내치와 외치의 권한을 내려놓고 국정 공백 기간 동안 정권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 전 장관은 “일부에서 책임 총리를 내세워 내치를 맡고 외치는 박 대통령이 한다고 하는데 내치를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외치를 하겠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내치를 못하는 사람은 외치도 못한다. 결국 사임해야 한다”고 했다.
동교동계의 좌장 한화갑 한반도평화재단 총재는 박 대통령 하야론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한 총재는 “만약 야당이 박 대통령 하야를 몰아붙이면 국민의 편에서 주장을 한 것이지만 한국정치를 이끌어가는 선두주자는 될 수 없다. 야당이 역할을 해야 한다. 야당은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4·19 혁명 때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하야하고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지만 싸우느라고 5·16군사정변이 일어났다. 4·19 혁명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나라를 갖다 바쳤다. 박 전 대통령이 저격을 당한 뒤에 정말 민주화가 됐다고 했는데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그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고 밝혔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진 뒤 야권과 대선주자들은 박 대통령 하야는 물론 거국중립내각과 박 대통령의 2선 후퇴 등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민사회계의 원로 정성헌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이사장은 “비난의 화살이 박 대통령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박 대통령을 활용해서 기득권을 유지하고 확장하려 했던 무리들의 행패와 물질만능주의, 제도적 문제가 맞물렸다. 복합적인 요인으로 최순실 게이트가 발생했다고 본다.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개인의 단죄만으로 끝나선 안 된다. 다음에 또 유사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문제가 확대·재생산될 수 있는 제도와 구조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대통령과 최 씨를 향한 감정적인 분노와 비난을 넘어서서 근본적인 정치 시스템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검찰을 어찌하오리까…“기소 독점 깨야 정치 시녀 오명 벗어” ‘최순실 게이트’ 직후 세간의 이목은 검찰에 쏠렸다. 하지만 최순실 씨 등을 수사 중인 검찰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처가와 넥슨 간 수상한 부동산 거래 의혹에 휩싸였지만 검찰은 그의 휴대전화조차 미리 압수하지 않았다. 국민들은 검찰에 출석한 우병우 전 수석이 검찰청사 안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또 검찰은 최순실 씨가 귀국했을 때 그녀를 긴급체포하지 않았다. 오히려 최 씨는 주어진 31시간을 이용해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등 자유롭게 행동했다. 검찰은 엄정한 수사 원칙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적다. 여론에 떠밀리다시피 수사에 나선 검찰의 행태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만 가득하다. 이에 대해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은 지나치게 정치화됐다. 일부 정치 검사의 문제가 아니다. 조직 자체가 정치적으로 변질됐다. 공정하고 원칙적인 수사는 기대하기 힘들다. 전관예우, 기수, 상명하복식 문화 등 여러 복합적인 원인 때문이다. 또 검찰을 장악하려는 정치권의 태도도 영향을 미친다. 대대적인 개혁 없인 국민들로부터 신뢰받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안팎에선 “검찰이 스스로 제 무덤을 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홍만표 진경준 전 검사 등 검찰 고위 간부의 부패 스캔들, 정치 권력에 대한 눈치 보기 등이 축적돼 국민 불신을 초래했다는 얘기다. 앞서 진 전 검사장은 넥슨으로부터 100억 원이 넘는 주식 뇌물을 받아 특가법상 뇌물 혐의로 체포돼 7월 18일 현직 검사장으로는 처음 구속됐다. 홍만표 전 변호사는 전관의 직위를 이용해 거액의 수임료를 받아 천문학적인 소득을 올렸다. 그는 해외 원정 도박 혐의로 기소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편의를 봐주기도 했다. 엄상익 변호사는 “최근에 한 검사가 ‘정부의 쫄병인데, 제가 무슨 검사입니까’라는 말을 했다. 검사가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무’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저녁에 청와대에 보고를 하는 정무비서관에 불과하다고 푸념했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겨놓은 꼴이다. 검찰은 자신들의 공명심과 출세를 위한 곳이다. 검찰총장은 대통령의 직속 부하다. 대통령에게 잘 보여야 출세를 한다. 검찰이 자기 상전을 수사할 수 있나. 못할 수밖에 없다. 국민적인 불신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검찰의 ‘이중잣대’를 지적했다. 남 전 장관은 “대통령이 검찰 조직을 전부 장악하고 있다. 검찰은 눈치놀음을 할 수밖에 없다. 정권이 망할 듯하면 검찰은 칼날같이 예리하다. 정권 힘이 막강하면 아부 수사를 해온 것이 검찰이다. 검찰은 박 대통령의 힘이 여전히 세다고 느끼면 검찰은 적당히 눈치를 보다가 수사를 끝내고 박 대통령의 힘이 약하다고 판단하면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검찰의 막강한 권력은 기소 독점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엄 변호사는 “장기적으로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야 한다.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를 깨야 정치 시녀의 오명을 벗을 수 있다. 따로 기소위원회를 만들어 검찰 기소가 국민적인 감시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껏 재벌 회장이 비자금을 만들어도 검찰이 기소를 안 하면 그만이었다”라고 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뒤 여권인 새누리당에서조차 검찰 개혁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비박계 3선인 이종구 새누리당 의원은 11월 7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검찰 수뇌부는 모두 교체돼야 한다. 근본적인 검찰 개혁 방안을 마련하자”고 강조했다. [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