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운데 <일요신문>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비선 실세로 추정되는 50대 여성이 박 대통령 주변에서 움직였던 정황을 포착했다. 그녀 역시 최 씨와 가깝게 지내는 인물로 현 정부 대북 정책 등에 있어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10월 31일 검찰의 소환 조사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는 최순실 씨.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최순실 게이트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대기업들로부터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모금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뒤를 이어 최 씨 딸 정유라 씨의 이화여대 특혜 의혹이 불거졌고, 이른바 ‘최순실 사단’이 문화·체육 분야에서 광범위한 비리를 저지르며 이권을 챙겼다는 언론 보도들이 뒤따랐다.
국민들을 더욱 경악스럽게 한 것은 아무런 권한도 없는 최 씨가 재단 모금과 문화·체육 분야뿐 아니라 ‘VIP(박근혜 대통령)’ 이름을 앞세워 국정 전반에 관여했다는 데 있었다. 최 씨는 박 대통령 연설문, 국무회의, 주요 공직 및 사기업 인사 등에서 부적절한 처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최 씨가 현 정권 외교·국방정책, 특히 대북관계에도 목소리를 냈다는 증언이 나왔다. 여기서 베일에 가려진 한 여성이 등장한다. 바로 ‘강 사장’이다. 50대 중년으로 알려진 강 여인의 정확한 이름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성이 강 씨가 아니라 오 씨라는 말도 있지만 최 씨 지인들은 그녀를 ‘강 사장’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강 사장은 한국이 아닌 해외에 거주 중이다. 소재지가 불분명하지만 주로 중국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강 사장은 최 씨를 통해 박 대통령을 알게 됐고, 그 인연은 20년을 넘긴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 정계 입문이 1998년인 것을 감안하면 그 전에 최 씨로부터 강 사장을 소개받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최 씨의 한 가까운 지인은 “최 씨 딸 정유라 씨가 ‘이모’라고 부르는 강 사장을 알고 있다. 박 대통령-최순실-강 사장이 가깝게 지냈다”라고 귀띔했다.
강 사장은 주로 전화와 메신저 등을 활용해 최 씨와 연락을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 씨는 현 정권 출범 이후 강 사장으로부터 대북 관계 등에 대한 조언을 구했고, 이를 다시 박 대통령에게 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 씨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자격도 갖고 있지 않은 강 사장이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서의 지인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최 씨가 간혹 강 사장 얘기를 하면서 북한과 김정은을 언급하곤 했다. 강 사장이 시킨 말대로만 하면 통일은 별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강 사장이 누구이기에 그러냐고 물었더니 ‘대북 전문가’라고 답했다. 그래서 교수거나 연구원인지 알았다. 박 대통령이 2014년도 신년사에서 언급한 ‘통일대박’은 강 사장이 수년 전부터 최 씨에게 강조했던 말이라고 들었다. 최 씨 발언 대부분은 북한에 대해 강경한 어조였다.”
박 대통령은 2014년 1월 6일 신년사에서 ‘통일 대박’이라는 표현을 썼다. 당시 전문가들은 대박이라는 단어가 적절한지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였다. 대통령이 쓰기엔 부적절하다는 것이었다. 청와대 내에서도 ‘대박’은 박 대통령 개인 판단에 의해서 나온 말이라는 얘기가 정설이었다. 그러나 강 사장이 그 전부터 통일 대박이라는 말을 썼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최 씨 또는 강 사장으로부터 전해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 강 사장이 대북 강경론자라는 점도 현 정권의 대북 기조를 떠올려 보면 예사롭지 않은 부분이다.
이밖에 최 씨가 지인들에게 말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현 정권 대북 정책에도 ‘최순실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동시에 강 사장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과도 맞물린다. 최 씨의 전남편 정윤회 씨 최측근은 “강 사장은 정 씨도 잘 알고 있다. 해외에 인맥이 두터운 것으로 들었다. 최 씨가 강 사장을 만나러 가기도 하고, 강 사장이 국내로 들어오기도 했다”면서 “강 사장의 경우 북한과 중국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최 씨도 이를 귀 기울여 듣고, 박 대통령에게 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최 씨는 사드 배치와 관련해 지난해부터 깊은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사드는 꼭 필요하고, 박 대통령 임기 전에 배치될 것이란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최 씨의 또 다른 지인 역시 “최 씨가 만날 때마다 사드 얘기를 했다. 솔직히 우리가 사드가 뭔지 알았겠느냐. 올해 뉴스 등에서 계속 보도되고 나서야 알았다. 최 씨 말대로 사드가 배치돼 놀랐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한 방산업체의 고위 관계자는 강 사장 역시 해외에서 한국의 사드 배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고 전했다. 그는 “사드 배치는 우리에게도 초미의 관심사다. 그래서 여러 정보를 모으다가 올해 초 강 사장이란 존재를 알게 됐다. 여자인지는, 또 최순실 씨 관련 인물인지는 몰랐다. 그가 해외의 특정 무기 회사와 연관이 있고, 사드 배치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내용을 접했다. 그래서 브로커 중 한 명인 줄로만 알았다”고 귀띔했다.
정치권과 전문가들 사이에선 그동안 박근혜정부의 대북 및 방산업계 정책 중 상식적인 선에서 이해하기 힘든 점들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사정당국 주변에선 대대적인 방산 비리 수사를 두고 친박계가 주도하는 새로운 무기 계약 라인을 만들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란 말까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강 사장, 최 씨 등 비선 라인에 의해 의사 결정이 이뤄졌다는 내용이 드러날 경우 적잖은 파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