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순형 의원의 쓴소리가 민주당의 정신적 지주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향했다. DJ에 대한 민주당의 ‘애증’으로 당 내부도 둘로 쪼개지는 양상이다. | ||
그러나 최근 민주당 내에서는 ‘DJ를 극복하고 가야 한다’는 기류와 ‘DJ를 계승해야 한다’는 기류가 충돌, 내부 사정도 뒤숭숭하다. 1987년 평화민주당 창당 이래 20여 년 만에 민주당이 김 전 대통령과 갈라서는 것일까. 그 애증의 갈등 속으로 들어가 봤다.
지난 23일 DJ는 정세균 의원 등 전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면담자리에서 “민주당 일부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에 반대하는 얘기를 했는데 이것이 남북화해 노선을 견지해온 민주당 전통에 맞는 얘기냐”며 비판을 가했다. DJ는 “민주당의 일부 인사들이 지난해 북한핵실험 때 대북 응징을 얘기하고 햇볕정책을 비난하는가 하면 2차 남북정상회담도 반대하고 있다”며 “이게 어떻게 민주당의 전통과 맞느냐. 한나라당 얘기 아니냐”고 상당히 불쾌해 했다.
민주당 인사 중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비판한 것은 조순형 의원이 유일해 결국 DJ의 발언은 조 의원을 향한 비난이었다. 조 의원은 지난 8일 2차 남북정상회담에 관해 “우리 대통령이 두 번씩 평양에 가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대통령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고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 국내정치용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수 있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다른 범여권 예비 후보들이 2차 정상회담 개최 소식에 모두 환영한 것과는 정반대의 평가였다.
DJ가 민주당의 정통성 문제까지 거론하며 조 의원을 비난하자 정치권에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흘러나왔다. 조 의원이 민주당 내에서 지지율 1위의 대선주자이며 범여권의 대선주자들을 통 털어도 지지율 2~3위를 다투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DJ의 조 의원에 대한 비난을 놓고 DJ가 금년 선거에 개입할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나름대로의 복안이 섰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당도 DJ의 이런 비난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자칫하면 조 의원의 경쟁력은 물론이고 민주당의 존립 자체가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때문에 DJ의 이런 비난에 대해 조 의원은 지난 26일 반격에 나서 “대선 주자이자 책임 있는 국회의원이 남북정상회담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을 정치적으로 문제 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국가원로로서 체통을 지키고 정치개입 발언을 그만둘 때가 됐다”고 전례없이 강경하게 반발했다.
박상천 민주당 대표도 공식적으로 조 의원을 두둔하며 DJ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박 대표는 지난 28일 KBS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DJ의 민주당 정통성 관련 발언에 관해 “남북정상회담 찬성을 전제로 시기와 장소의 문제점을 비판한 것이다. 이것은 있을 수 있는 비판 아니냐. 그것을 가지고 민주당의 정통성에 어긋난다고 보신 것은 과한 것”이라고 섭섭함을 표시한 뒤 “김 전 대통령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을 통합하려고 했던 방침은 국민들의 국정실패에 대한 분노와 불신을 잘못 파악한 것 같다. 김 전 대통령은 정계를 은퇴한 분”이라고도 말했다. 섭섭한 감정과 민주당을 부인하는 발언을 그냥 묵과할 수 없다는 소신이 어우러진 발언이었다는 게 측근들의 해석이다. 이제껏 DJ의 호남 민심을 기반으로 움직여오던 민주당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대목이었다.
박 대표의 발언에 대해 DJ 측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최경환 공보비서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일부 정치권의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이 지나치다”며 “전직 대통령은 국가의 중대사에 발언할 법적, 정치적 자격이 있다”고 다시 민주당 측을 압박했다.
DJ 측의 이런 반응에 대해 민주당 내에서는 ‘DJ의 의중이 드러났다’며 앞으로 DJ와의 관계설정을 놓고 갖가지 의견이 분출하고 있다. 이번 DJ의 정통성 관련 발언을 계기로 ‘이번에야말로 DJ로부터 벗어나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의견과 ‘DJ를 등에 업고 가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는 것이다.
‘탈DJ’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이미 DJ의 차남인 김홍업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하고 대통합민주신당으로 갈 때부터 DJ의 의중은 드러난 것으로 결코 갑작스럽게 터진 일이 아니다”며 ‘DJ로부터 벗어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DJ가 통합민주당을 선택한 만큼 더 이상 미련을 가져봐야 얻을 것이 없다고 보고 장래를 위해 홀로서기를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DJ 없이도 호남 민심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없지 않다. 대선을 출마한 조 의원이 출마선언과 동시에 범여권 대선 예비주자 지지율 2위까지 기록한 바 있는 것도 이들의 기대치를 높여주고 있다. 탈DJ파의 선봉은 역시 조 의원으로 여기에 박 대표와 신국환 의원이 가세하고 있다.
▲ 이인제 의원(왼쪽), 조순형 의원 | ||
현실론자들은 아직 DJ를 떠나서는 독자적으로 생존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강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이 민주신당에 뒤지고 있음을 예로 들며 조 의원 등이 너무 앞서 나간다는 생각이다. 물론 탈DJ파에서는 “옳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도 DJ를 등에 업고 경선에서 호남 민심이라도 얻어 보겠다는 생각”이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호남의 현실은 아직 매서운 것도 사실이다. 한 관계자는 “예전의 DJ만큼 영향력은 아닐지 몰라도 아직 이별을 선언하기에는 민주당 내부에 불안한 점이 많다”며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위험한 방법을 택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