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신규 면세점 특허권은 대기업 몫으로 3곳이 배정됐다. 롯데, SK, 신세계, HDC신라, 현대백화점, 이 5개 기업이 치열하게 경쟁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대기업들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문제가 불거지면서 경쟁 구도에 변화가 감지된다.
지난해 7월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 선정 과정에서 재단 출연과 관련해 특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이번에는 오히려 반대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재단에 출연한 대기업들이 여론 악화 탓에 오히려 불리해졌다는 것.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에 기부금을 낸 기업들이 면세점 신규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긴장하고 있다. 박정훈 기자 onepark@ilyo.co.kr
유통업계는 오는 12월 심사하는 서울시내 신규면세점 사업권이 면세점 사업 진입의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각 기업은 저마다 전략을 세우고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사업권을 놓친 롯데와 SK는 재탈환을 노리고, 신세계와 HDC신라는 사업 확대를, 현대백화점은 면세점 사업 첫 진출을 꿈꾸고 있다.
그런데 최순실 게이트로 검찰 조사가 진행되면서 면세점 사업권 선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와 해당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신규 면세점 유치에 참여한 5개 기업 중 미르·K스포츠 재단에 기부금을 낸 곳은 4곳이다. 삼성이 204억 원, SK가 68억 원, 롯데가 45억 원, 신세계가 5억 원에 달한다. 출사표를 낸 5개 기업 중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하지 않은 곳은 현대백화점뿐이다.
기업들은 한결같이 ‘관례적으로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을 통해 내던 수준이며 대가성이나 강제성이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과 기업 총수들이 독대한 정황을 포착하고 해당 기업 임원들을 대거 소환하자 분위기가 사뭇 처연하다.
신동빈 회장이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 했다는 의혹을 받으며 대가성 여부를 두고 롯데그룹이 긴장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lim@ilyo.co.kr
특히 롯데는 신동빈 회장이 박근혜 대통령과 올 초 독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신 회장이 박 대통령과 독대하면서 지난해 사업권을 잃은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과 관련한 민원성 발언을 했을 가능성마저 대두하고 있다.
당시 월드타워점의 연매출은 6000억 원 이상이었다. 호텔롯데 전체 매출에서 면세사업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85%가량이니만큼 월드타워점의 비중이 컸던 데다 사업권을 잃으면서 그룹 지배구조개선의 핵심사항으로 약속했던 호텔롯데 상장에도 차질이 생겼다. 롯데로서는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면세점 사업과 관련해 박 대통령과 신 회장의 만남이 주목을 받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해에 이어 불과 1년 만에 또 다시 대기업들에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주기로 결정한 데는 롯데에 잃어버린 면세점을 찾아주기 위한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신규 면세점 특허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쏟아졌다”며 “특히 올해 신규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서는 급하게 결정된 부분이 있어 말이 많았다”고 귀띔했다.
지난해와 올해 신규 면세점 사업권이 대거 나오면서 면세점을 과도하게 늘린다는 비난이 적지 않았다. 중국인 관광객 등 수요가 증가하지 않는다면 한꺼번에 허가해준 면세사업자 중 경영 악화에 빠지는 곳이 나올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실제로 지난해 사업권을 따내 문을 연 두산면세점과 SM면세점 등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 5곳이 모두 초기 기대보다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환경에서 올해 서울에 면세점이 또 다시 신규 추가되면 일부 면세점은 아예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낸다.
특히 올해 결정은 더 큰 비난을 받는다. 면세점 신규 특허와 관련해서는 기획재정부(기재부)가 업무를 담당한다. 기재부는 지난해 9월부터 올 3월까지 관세청·공정거래위원회·문화체육관광부 등 관련부처와 면세점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팀을 운영하며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면세점 제도개선에 대한 연구 용역을 맡겼다. KIEP의 연구용역은 지난 2~6월 진행됐다. 그런데 신규 면세점 사업권 추가 방침이 결정된 것은 지난 4월. 즉 KIEP의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신규 면세점 추가 방침이 정해진 것이다.
더욱이 정부는 면세점 신규 특허 발급 요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 급하게 밀어붙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면세점을 추가 신설할 때는 ‘보세판매장 운영에 관한 고시’에 적시된 ‘광역지자체별 외국인 관광객 수가 전년 대비 30만 명 이상 증가’해야 한다는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 특허권을 주려 하는 이유는 사업권을 잃은 롯데와 SK에 신규 형식으로 사업권을 되돌려주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는 롯데와 SK가 미르·K스포츠재단에 많은 금액을 기부한 것과 연결된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부한 기업이 ‘비리 기업’으로 낙인 찍혀 되레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커진 반면 기부하지 않은 현대백화점은 유리할 수 있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심사를 앞두고 있는 입장에서 (우리가) 유불리를 논하기 어렵다”며 “공정히 심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면세업계 관계자는 “면세 사업은 여론에 민감하다”며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언급되는 기업이 면세사업자에 선정되면 시끄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는 두 재단에 기부한 목록을 평가 자료로 세세하게 설명하지는 않을 계획이다. 롯데 관계자는 “(미르·K스포츠)재단이 정상적 사회사업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 기부활동 내역으로 제출하지 않기로 했다”며 “전체 기부금 액수에는 미르재단에 낸 28억 원을 포함시켰지만 세부내역으로 설명하지는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롯데가 그만큼 최순실 게이트와 엮이지 않으려 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앞의 면세업계 관계자는 “심사 평가항목 중 하나인 기부항목에 미르·K재단 기부 목록을 넣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만큼 최순실 게이트 여파가 미칠 공산이 크다”고 설명했다. 심사를 관장하는 관세청 관계자는 “철저히 심사인단의 공정한 평가를 통해 결정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롯데 측은 “(롯데는) 지난해 면세점을 잃은 상황이기 때문에 면세 사업권 선정과 재단 기부는 연관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SK 관계자 역시 “면세점 사업권을 잃은 것은 지난해 11월이고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건 한 달 뒤인 12월이었다”며 “재단 기부는 대가성과 무관하다”고 잘라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