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열한 경선 과정에서 세 후보 간에 쌓인 앙금이 당 분열을 촉발할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일고 있다. 10일 서울·경기 합동연설회.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신당 경선을 주도했던 정동영 손학규 이해찬 세 사람의 감정의 골은 경선 총성과 함께 싹트기 시작했다. 손 후보가 한나라당 탈당을 결행했을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범여권 대선주자들은 ‘용기있는 선택’으로 평가하며 저마다 손 후보를 범여권 경선 구도에 끌어 들이기 위해 정성을 쏟아 부었다.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냉혹한 정치 현실을 감안하면 ‘손학규 카드’를 경선 흥행을 위한 불쏘시개로 활용하고자 하는 정치 셈법이 작용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손 후보가 막상 신당 경선 합류를 선언하자마자 다른 주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손학규 때리기’에 화력을 집중했다. 물론 손 후보가 경선 초반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었다는 점에서 선두 주자에 대한 견제 심리도 강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손 후보가 컷 오프(예비 경선)를 1위로 통과할 당시만 해도 신당 주자들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손학규 죽이기’는 갈수록 그 강도를 더해 갔다. 손 후보 측에서는 청와대를 ‘손학규 죽이기’ 배후 세력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실체는 없지만 ‘손학규 죽이기’ 논란이 가열되면서 손 후보의 지지율은 서서히 하향 곡선을 긋기 시작했고 급기야 본경선 레이스에 돌입하면서 정동영 후보에게 1위 자리를 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손 후보는 결국 조직·동원 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경선 일정 잠정 중단이라는 초강수 카드로 맞섰다.
이해찬 후보 측도 정 후보 측의 불법선거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며 경선 보이콧을 선언해 신당 경선은 파행에 파행을 거듭하는 그야말로 대혼탁 양상으로 치닫게 됐다.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 명의도용 사건이 터지면서 경찰은 정 후보 캠프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하는가 하면 정 후보 외곽 지지 조직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강행하기도 했다.
세 후보가 박빙의 승부를 펼치며 물고 물리는 난타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정황들이다. 경쟁자를 무너뜨려야 살 수 있는 선거 속성과 범여권 대권주자 자리를 놓고 벌인 총성 없는 전쟁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의 네거티브와 정치 공방전은 세 사람 모두 상호 감안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문제는 세 사람의 대립각이 정치 공방전을 넘어 감정싸움으로 비화됐다는 점이다.
특히 서울대 동기로 친구 사이이자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를 이끌었던 핵심 주역이었던 정 후보와 이 후보가 벌인 감정싸움 후유증은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정동영과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이 후보의 배수진에 정 후보는 “친구로 돌아가자”고 호소했지만 두 사람의 앙금은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은 11일 KBS 주최로 열린 마지막 TV 합동토론회에서도 사활을 건 난타전을 벌였다. 이 후보는 이날 토론회에서 정 후보을 겨냥해 “언론보도를 보면 정 후보 캠프에서 명단을 모아 신용정보회사를 통해 실명을 인증받았다. 그래서 압수수색까지 받고 있다”며 “개인정보를 경선에 마구잡이로 이용해 국민의 불안감을 높이고 있다”고 공세를 시작했다. 그는 또 “이런 도덕성으로 반칙을 일삼아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어떻게 이기냐”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정 후보는 이 후보에게 “친구라는 게 자랑스럽다. 친구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을 때 서운했다. 선거가 끝나면 친구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이 후보는 “깨끗한 정치문화를 만들려면 후보 진영이 불법한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을 고치려고 해야지 미봉하려는 것은 안된다”고 압박해 토론장을 냉랭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이 치열한 경선을 치르면서 정치적 앙금을 넘어 인간적 앙금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손 후보를 겨냥한 비난도 마지막까지 그치지 않았다. 정 후보는 “전통적 지지층을 복원하려면 뿌리와 정통성이 있어야 한다”며 “손 후보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민주평화세력 1200만 명을 어떻게 끌어올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손 후보의 정통성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 후보도 “한나라당에서 10년 동안 활동한 손 후보가 과연 정치철학과 정책이 어떻게 변했는지 의문”이라며 “특히 교육정책의 경우 한나라당 때의 생각과 지금 생각이 별로 바뀐 게 없는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함께 할 수 없다는 이야기와 다름이 없었다.
이에 대해 손 후보는 “한반도 평화와 사회복지, 이것이 한나라당에서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해 이 꿈을 펴보자는 뜻에서 탈당한 것”이라며 “이것이 새로운 뿌리다. 새로운 정통성을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과거 탓만 하면 되겠느냐”고 역공을 취했다. 탈당까지 한 자신의 충정을 몰라준다는 답답함과 섭섭함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이처럼 세 사람의 감정의 골이 깊어진 만큼 그 후유증 또한 심각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당을 떠나자”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고 일부 의원들은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이나 이수성 전 총리 캠프 쪽으로 합류할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친 전쟁은 막을 내렸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를 안고 있는 세 사람의 정치적 명운이 어떻게 갈릴지 신당 경선 후폭풍과 맞물린 세 사람의 향후 행보가 자못 궁금하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