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내부 전경.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12월 9일 오후 5시 55분경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의결서 정본을 접수했다. 헌재가 부여한 사건번호는 ‘2016헌나1’다. 서울지방경찰청은 헌재 주변에 경찰을 배치해 24시간 경비체제에 돌입했다.
약 한 시간 뒤인 7시 3분경 탄핵소추의결서 사본이 청와대에 도착했고, 박 대통령 국정업무 권한이 정지됐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군통수권, 조약체결 비준권 등 헌법과 법률상의 대통령 권한을 전부 위임받았다.
헌법 제113조에 따르면 헌재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의 찬성으로 탄핵이 최종 확정된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면 60일 이내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탄핵을 기각하면 박 대통령은 집무에 즉시 복귀한다. 헌재 재판관들이 박 대통령의 운명을 결정할 ‘키’를 잡은 셈이다.
헌재 재판관은 9명으로 구성된다.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헌재 재판관 전체 9명 중 각각 3명씩을 인선한다.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9명 중 1명을 헌재 소장으로 임명한다. 박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박한철 재판관을 헌재소장으로 임명했다. 2013년 4월 조용호 서기석 헌재 재판관 임명을 끝으로 지금의 5기 재판부 구성이 완료됐다.
법조계 일각에선 ‘헌재 재판관들의 지역이 편중됐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9명의 재판관 중 영남 출신은 5명. 박한철 헌재소장 서기석·이정미·이진성 재판관은 PK 출신이다. 김창종 재판관은 TK 출신이다. 호남 출신은 김이수 재판관이 유일하다. 조용호·안창호 재판관의 출신 지역은 충청, 강일원 재판관은 서울 출신이다.
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도 관심사다. 박 소장을 포함한 7명이 이명박 정부 때 임명됐고 박 대통령이 나머지 2명을 임명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보수 재판관들이 촛불 민심을 거스르고 탄핵을 기각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도는 까닭이다.
재판관들의 이력과 판례도 눈길을 끌고 있다. 박 소장은 검사 출신 첫 헌재소장이다. 그는 대검 공안부장을 비롯해 특수와 공안, 기획 분야의 요직을 두루 거친 ‘공안통’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수사를 지휘했었다. 박 소장은 헌재가 위헌 결정한 야간 옥외집회금지 사건에서도 이동흡 재판관과 함께 합헌 의견을 내기도 했다.
박 소장은 누리꾼들이 ‘명박산성’이라는 별칭을 붙인 경찰 차벽에 대해서도 합헌 의견을 고수했다. 헌재는 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 행사 당시인 2009년 6월경 경찰청장이 차벽으로 서울광장을 둘러싼 방법으로 출입을 제지한 행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당시 박 소장은 “통행제지행위는 서울광장이라는 한정된 곳에 관해 일시적으로 일반이용을 제한한 것이다. 과도하다고 볼 수 없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2012년 9월 새누리당 추천으로 헌재에 입성한 안창호 재판관도 보수적 성향에 가깝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안 재판관은 대검 공안기획관, 서울중앙지검 2차장을 지낸 대표적인 공안 검사 출신으로 2006년 일심회 간첩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안 재판관은 간통죄 존치를 주장하기도 했다. 2015년 2월경 7명의 재판관은 간통죄를 위헌으로 판단했지만 안 재판관은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그는 “간통은 일부일처제에 기초한 혼인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훼손하고 가족공동체의 유지·보호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 행위다”고 합헌 의견을 유지했다.
김창종 재판관의 이력도 독특하다. 2012년 9월 MB 정부 때 양승태 현 대법원장이 지명한 김 재판관은 TK 지역의 대표적인 ‘향판’이었다. 대구지법 의성지원장과 대구지방법원장을 지낸 김 재판관은 TK 최초의 헌법재판관이다. 김 재판관은 교원 노조 가입자를 현직교사로 제한한 사건에서 합헌 의견을 냈다. 당시 헌재는 다수 의견으로 “조합원 자격을 제한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가 있고 해고된 교원의 노조 가입은 교원 노조의 자주성을 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2013년 4월 박 대통령이 임명한 조용호 재판관과 서기석 재판관도 보수적 색깔이 짙게 묻어나오는 법관들이다. 춘천지방법원장과 서울고법원장을 지낸 조 재판관은 ‘사법시험 폐지’ 사건에서 “로스쿨 제도로 양성된 법조인이 사법시험제도를 통해 선발된 법조인보다 경쟁력 있고 우수하다고 볼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사법시험법을 폐지하도록 한 변호사시험법 부칙 제2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조 재판관은 김창종 안창호 이진성 재판관과 함께 위헌 의견을 편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원장을 지낸 서 재판관은 2008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배임 사건에서 항소심 재판장이었다. 그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 증여 혐의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이력 때문에 인사청문회 때 ‘봐주기 판결’ 논란이 일었다. 야당이 이를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이진성 재판관도 보수적 성향을 보이고 있지만 ‘소수의견’을 자주 밝힌 점이 관심을 끌고 있다. 2012년 9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추천한 이 재판관은 교원 노조 가입자를 현직교사로 제한하는 것에 대해 합헌의견을 냈다. 하지만 강제추행죄 유죄 확정자의 신상정보 등록을 명시한 성폭력처벌법에 대해선 “성폭력범죄자의 재범 방지가 주요한 목적임에도 등록대상자의 선정에서 ‘재범의 위험성’을 전혀 요구하지 않는다”고 위헌 의견을 폈다. 법률신문에 따르면 이 재판관은 박 소장 취임 직후인 2013년 5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소수의견을 가장 많이 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고등법원 판사 출신인 강일원 재판관은 박 대통령 탄핵 심판의 주심이다. 강 재판관은 2012년 9월 20일 여야 합의로 추천됐고 대체로 중도적 성향을 보인다는 평가가 따르고 있다. 그는 성매매 특별법 사건에서 “성판매자를 형사처벌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국가의 지나치게 과도한 형벌권 행사로서 헌법에 위반된다”고 김이수 재판관과 함께 일부 위헌 의견을 폈다.
이정미 재판관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의 추천으로 2011년 3월 최연소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임명됐다. 이 재판관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됐지만 2013년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 당시 주심을 맡아 통진당 해산에 손을 들었다. 헌재는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교육감직을 잃게 된 사후매수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이 재판관은 위헌 의견을 밝혔었다.
2012년 민주통합당이 추천한 김이수 재판관은 통합진보당 해산에 유일하게 반대한 인물이다. 8명의 재판관이 통진당 해산에 찬성했지만 그는 “통진당의 진보적 민주주의의 구체적인 내용은 특정한 집단의 주권을 배제한다거나 기본적 인권을 부인하고 북한의 적화통일전략에 동조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반대 의견을 폈다. 김 재판관은 교원 노조 가입자를 현직교사로 제한한 사건에 대해서도 홀로 위헌 의견을 냈다.
탄핵 심판 과정의 변수는 헌재 재판관들의 임기다. 박 소장의 임기 만료일은 내년 1월 31일이다. 이 재판관의 임기 역시 3월 13일이다. 헌재가 탄핵 심판 결정을 3월 13일 이후로 늦출 경우 7명의 재판관이 박 대통령의 운명을 결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7명 중 2명만 반대해도 박 대통령 탄핵은 기각될 수 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