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서울 종로에 위치한 파고다공원을 탑골공원으로 그 명칭을 바꾼 장본인으로도 알려져 있는 김씨는 재야 운동을 하다 지난 92년 대선 직전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 캠프로 들어가면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그 후 박영록 전 국민당 대표권한대행 보좌관과 이한동 전 자민련 총재의 문화특보, 자민련 민원국장 등을 거쳐 지난 200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자민련 서울 강동갑 지구당위원장으로 임명, 그 지역 후보로 공천 받기까지 했다. 하지만 당선 가능성이 떨어져 출마 직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김씨의 힘겨운 역정은 ‘정당 정치인’이란 직업이 갖는 고난의 단면을 보여준다. 김씨 스스로가 내세우는 이력과 직함만으로도 A4 한 장이 모자랄 정도로 그는 과거 자신의 정치 이력을 내세워 정체불명의 조직을 수시로 만들었다. 세계평화순례단, 아시아국가연합총본부, 세계평화봉사회 등이 그것. 정확한 실체도 없는 이 단체에 김씨는 항상 총재 또는 위원장이었다.
급기야 그는 지난 2002년 ‘이라크재건평화봉사단’을 조직한 뒤 이라크와 관련한 사업 활동에 뛰어들었다. 김씨는 지난해 11월부터 부동산개발업자 강아무개씨 등과 유령 부동산 회사를 차린 뒤, 농원 개발과 이라크 고철 수입 사업을 명목으로 투자자를 끌어들여 약 3억3천만원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자신의 정치 이력을 최대한 내세우는 방법으로 투자 유치를 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30년이 넘는 김씨의 정치 경력에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속았다”며 “더욱이 김씨가 자신이 등장하는 이라크 현지 신문은 물론, 이라크 중소 기업체들이 써 준 듯한 고철 수입 사업 약정서나 확인서 등을 보여주며 투자자들을 안심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김씨는 검거 당시 휴대폰 요금은 물론, 빚 변제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심각한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점 때문에 경찰은 금전적인 문제를 범행 동기로 보았으나 김씨는 여전히 과거 정치인의 자존심을 지키려 애썼다.
그는 자신의 조직 행각에 대해 “차기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한 인프라 구축”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것. 경찰 조사 내내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던 김씨는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하던 판사 앞에서는 급기야 ‘차기 대선 출마 선언’까지 했다고.
특히 경찰 조사 도중에는 ‘눈물의 테헤란로’라는 표현을 쓰면서 “강남의 다단계 업체들로부터 금전적 손실을 입은 많은 피해자들을 돕고, 대선 때 그들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해 경찰 관계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