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의 당 노선에 대한 생각이 상충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대표. 일요신문DB
국민의당의 한 지역위원장은 “당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지도부가 탄핵 정국에서 오판을 했기 때문이다. 지역위원장들이 조금씩 쌓아온 점수를 한방에 날려버렸다. 지도부 총사퇴 목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도 없다. 새정치로 국민들의 지지를 얻었지만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 주민을 만날 때마다 자괴감까지 들 정도다”고 토로했다. 지역 민심이 국민의당의 창당 기치인 ‘새정치’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얘기다.
국민의당이 위기를 맞고 있다. 리베이트 파문이 당을 휩쓸고 지나간 뒤에도 지지율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 대한 반사이익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전문업체 <리얼미터> 12월 2주차 주중동향에 따르면 국민의당(12.2%)은 더불어민주당(37.7%)과 새누리당(17.2%)에 밀려 3위를 기록했다. 리베이트 파문의 충격(6월 4주차 여론조사, 14.4%)을 벗어나지 못한 국민의당이 탄핵정국에서도 고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12월 2주차 주간집계는 2016년 12월 12일부터 16일(금)까지, 5일간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28명을 대상으로 이뤄졌고 전체 응답률은 9.9%를 기록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9%p였다. 자세한 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
문병호 국민의당 전 의원(전략홍보본부장)이 먼저 도전장을 내밀었다. 문 전 의원은 제20대 총선에서 인천 부평갑에 출마했지만 새누리당 정유섭 후보에게 23표차로 낙선한 원외인사다. 문 전 의원(전략홍보본부장)은 “국민의당을 이대로 내버려두느니 차라리 해산을 하는 것이 맞다. 리베이트 사건으로 구태정치를 보여줬고 탄핵정국에서 헛발질을 반복해 당 지지율이 폭락했다. 전적으로 박지원 원내대표의 책임이다. 국민의당의 다른 이름은 ‘박지원당’이다. 박 원내대표의 구태 이미지를 벗겨내고 당에 생기를 불어넣겠다”고 출마 의지를 드러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유력한 당권 후보지만 당 안팎에선 ‘박지원 독주체제’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최근 고무열 등 국민의당 89명의 지역위원장들은 1·15 전대의 쇄신 지도부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고무열 지역위원장(대전 유성갑)은 “우리의 전대 1차 목표는 ‘박 원내대표가 당대표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박 원내대표의 헌정치가 새정치를 짓누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현란한 입놀림을 하고 있지만 새정치는 개혁이다. 예를 들어 아무리 시장바닥에서 명약이라고 입을 놀려도 약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모든 국민이 알아 버렸다. 지도부가 민심을 위해 특효약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구태정치로 속을 국민들은 어디에도 없다”고 성토했다.
하지만 박 원내대표 측은 자신감을 드러냈다. 박 원내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전대 출마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탄핵 정국에서 오판하지 않았다. 결국 제 판단이 맞았다. 총리를 먼저 선출하고 이후에 탄핵을 했으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금처럼 과도한 의전을 요구해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있었겠나. 12월 2일에 탄핵 했으면 무조건 부결됐을 것이다. 9일에 했기 때문에 가결됐다. 지역위원장들의 서명도 제가 언급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국민의당 전대의 가장 큰 변수는 ‘안심’이다. 당내 최대 지분을 쥐고 있는 안 전 대표 의중에 따라 당원들의 표심이 요동칠 전망이다. 탄핵 정국에서 존재감 부각에 실패한 안 전 대표가 전대를 이용해 박 원내대표를 견제하려 한다는 관측도 들린다. 친안 성향의 한 보좌관은 “두 사람 사이의 파워게임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안 전 대표 입장에선 박 원내대표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박 원내대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속셈을 철저히 감출 수 있는 사람이다. 안 전 대표를 언제든 배신할 수 있다. 안 전 대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차마 내색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가 최근 손학규 전 민주당 고문에게 국민의당 전대 출마를 제안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미묘한 파장도 낳고 있다. 국민의당 다른 보좌관은 “안심은 박지원도 문병호도 아니다. 안 전 대표의 마음은 손 전 대표를 향하고 있다. 박 원내대표와 문 전 대표가 지금은 서로 으르렁거리지만 박 원내대표는 언제든 민주당과 손을 잡을 수 있다. 문 전 대표는 여전히 호남에서 외면받고 있다. 호남의 맹주인 박 원내대표가 문 전 대표와 공동정권 형식으로 손을 잡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시나리오는 안 전 대표가 사라져야 가능하다”고 귀띔했다.
박 원내대표와 문 전 의원 측도 ‘손학규 당대표론’을 주시하고 있다. 문 전 의원은 “안 전 대표가 손 전 고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는 것은 허위 사실이다. 손 전 대표가 미쳤나. 대선에 나갈 사람이 당대표 선거에 나가지는 않는다. 손 전 대표에게 실례가 되는 말이다. 안 전 대표 역시 박 대표 때문에 당이 망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안 전 대표의 지지자들은 전부 박 원내대표를 싫어한다. 안 전 대표는 저를 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원내대표는 “손 전 고문을 엊그제 만났다. 그분이 당대표를 하려고 국민의당에 오는 것은 아니다. 물론 저는 손 전 고문이 와서 당 대표를 한다면 백번 환영이다. 특허를 내놓은 자리도 아니고…”라고 밝혔다.
‘안심’의 향방은 ‘제3지대론’과 맞물린다. 박 원내대표는 줄곧 새누리당 탈당파인 김무성 유승민 등 비박계 의원들과의 연대 가능성을 시사했다. 실제로 박 원내대표는 최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총선 민의에 의해 양극단 세력을 배제하고 탄생한 국민의당이 이미 제3지대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박근혜 정권에 협력했다 하더라도 솔직히 반성하고 우리와 함께 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문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주도의 ‘제3지대론’이 안 전 대표 측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까닭이다. 전계완 정치평론가 역시 “박 원내대표를 포함한 국민의당의 호남 기득권 의원들은 요리조리 틈을 보고 있다. 민주당과 합당해서 공동정권을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되면 야권 통합을 하자고 나올 수도 있다. 비박이 수도권 보수 신당을 만들면 국민의당과 지지층이 겹친다. 국민의당 내에서 비박 주도의 보수신당과 합당론, 민주당 통합론으로 의견이 갈릴 경우 사상 초유의 분당 사태가 올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국민의당은 호남 기득권 정당으로 전락할 것이고 안 전 대표는 더욱 설 자리는 없다. 안 전 대표가 궁여지책으로 손 전 대표를 선택한 이유다”고 설명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