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제5차 오후 청문회에 참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최순실 없는 최순실 청문회.’
최순실 씨는 당초 2차 청문회에 출석 요구를 받았으나 응하지 않았다. 국조 특위는 2차 청문회 당일 최 씨 등 불출석 증인 11명에 대한 ‘동행명령장’을 발부했으나 무산됐다. 이에 특위는 최 씨를 포함, 청문회에 불출석한 증인들을 5차 청문회에 다시 출석하도록 했다.
2차 청문회에서 ‘공황장애’를 이유로 나오지 않았던 최 씨는 5차 청문회 땐 ‘심신이 피폐하다’며 불출석했다. 청와대의 윤전추·이영선 행정관은 ‘연가 중’이라는 이유로 청문회에 불참했다. 이들에게도 동행명령장이 발부됐지만 역시 집행은 이뤄지지 않았다.
동행명령장은 국회 국정조사의 증인·참고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을 거부할 경우 이들을 부를 수 있도록 1988년 만들어진 제도다. 법원에서 발부하는 영장과 달리 강제성이 없는 것이 단점으로 꼽힌다.
5차 청문회에 출석을 요청받은 증인은 최 씨,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수석, 문고리 3인방(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전 비서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김장자 삼남개발 회장,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 정유라 씨, 최순득 씨, 장승호 씨, 유진룡 전 문화체육부 장관, 이성한 전 재단법인 미르 사무총장,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 조여옥 간호장교, 윤전추 이영선 청와대 행정관, 박원오 전 국가대표 승마팀 감독 등 18명이다. 그러나 우 전 수석, 조 장교만 청문회에 모습을 나타냈다.
우병우 전 수석의 경우 청문회 출석 요구를 받은 뒤 자취를 감췄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특위는 우 전 수석에게 11월 27일 청문회 출석 요구서를 보냈으나 거취가 불분명해 전달하지 못했고, 2차 청문회 당일인 12월 7일에도 동행명령서를 발부했으나 마찬가지였다.
일각에선 우 전 수석이 법의 맹점을 악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현상금까지 걸렸던 우 전 수석은 결국 12월 22일 5차 청문회에 출석했다. 그러나 우 전 수석은 모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특히 최 씨에 대해서 “모른다”고 일관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수사를 방해한 의혹에 대해서도 원칙론만 되풀이했다. 청문회 회피와 관련해선 “청와대 민정수석이 청문회에 출석한 사례가 없었고 그동안 도망 다닌 것이 아니라 기자들을 피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우 전 수석 장모인 김장자 회장도 도마 위에 올랐다. 우 전 수석은 김 회장 불출석 이유에 대해 “본인 건강이 안 좋고 청력이 매우 나쁘기 때문에 귀에 바짝 대고 큰 소리로 얘기해야 들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한 언론이 김 회장에게 우 전 수석의 거취를 묻는 장면을 보도했고, 이를 본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은 “달아나면서까지 작은 질문에 답변하는 분이 청력 장애가 있다니 (말이 안 된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우 전 수석은 위증 논란에도 휩싸였다. “김장자 회장, 최 씨, 이임순 순천향대 교수가 친하게 지낸다는 것을 아느냐”는 질문에 우 전 수석은 “사실이 아니다. 장모에게 물어봤는데 최 씨를 모른다고 답했다. 최순실과 골프를 친 적도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손혜원 민주당 의원은 “우 전 수석이 변호사 시절 김 회장, 최 씨 등과 기흥CC에서 골프 회동을 여러 번 함께한 동반자의 증인이 있다. 위증의 죄를 엄격히 묻겠다”고 했다.
이밖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12월 7일 2차 청문회 당시 최 씨를 모른다고 잡아떼다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적에 뒤늦게 “모른다고 할 순 없다며 말을 바꿔 구설수에 올랐다. 최 씨 측근으로 알려진 고영태 씨 역시 2차 청문회에서 최 씨의 태블릿 PC와 관련해 위증을 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서창석 서울대병원장과 이임순 순천향대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12월 14일 3차 청문회에서 김영재 원장 부인인 박채윤 씨와 친분을 놓고 엇갈린 증언을 했다. 또 12월 15일 4차 청문회에선 김경숙 전 이화여대 체육대학장과 남궁곤 전 입학처장이 정유라 특혜 의혹과 관련해 서로 다른 증언을 해 빈축을 샀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허위 진술 시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지만 실효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많은 관심을 모았던 특위의 청와대 현장조사 또한 무산돼 아쉬움을 남겼다. 특위는 12월 16일 청와대를 찾았으나 목적지인 경호동에 진입하지 못하고 청와대 연풍문(청와대 공무수행을 위해 외부인의 출입 절차를 받는 건물) 회의실에서 박흥렬 경호실장과 현장조사에 대한 협의를 벌였다. 박 실장은 특위의 경호동 진입을 거부하고 연풍문 회의실 현장 조사를 제안했지만 특위는 경호동 현장 조사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며 현장에서 철수했다.
정치권에선 청문회에 대한 법적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최근 이른바 ‘우병우 방지법’이 속속 발의됐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2월 8일 청문회에 출석하기로 한 증인들이 불출석하는 경우 이를 강제 구인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국정조사에 한해서는 증인이 고의로 동행명령장의 수령을 회피하거나 동행명령을 거부할 때 특위 의결로 법원에 증인의 구인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백 의원은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도 의회에서 특정안건에 대해 조사위원회를 구성할 경우에는 증인에 대한 강제소환이 가능하다. 국정조사는 국정의 잘못된 사항을 적발, 시정하는 목적으로 실시되기 때문에 국민들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강제구인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성태 특위 위원장 또한 ‘우병우 방지법’ 발의에 동참했다. 김 위원장이 발의한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국회가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통신사 등에 증인·감정인·참고인의 주소·출입국 사실·전화번호 제공을 요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국회사무처의 요청으로 관할 경찰서장에게 동행명령 집행에 협조하도록 했으며, 국회사무처 직원에게 특별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전문가들 또한 현행법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위 위원들 문제라기보단 제도 자체가 잘못돼 있다. 청문회가 전혀 힘을 쓸 수 없는 구조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국회가 청문회 의사에 반하는 증인이나 참고인의 경우 처벌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 국회 모독죄, 위증죄 등 처벌을 강화하고 청문회가 기소를 할 수 있는 형태로 가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국민의 대의 기관인 국회가 현행범, 위증범을 체포해 구금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청문회의 전문성도 지적했다. 그는 “청문회가 국회의원들이 자기 이름을 알리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문적으로 심문할 수 있는 사람들을 두고 옆에서 국회의원들은 보조 질문을 하는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 전문가들이 사실 관계 조사 등 단계부터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이 맞다. 마지막으로 한 교수는 “소수 당도 자신들이 요구한 증인이 불출석하면 구금할 수 있도록 구금 절차 등을 의결로 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증인에 대한 구속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이다”라고 덧붙였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