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 배우고 갑니다.” 대구SMC다문화센터가 개최한 ‘평화 말하기’대회에서 외국인들과 교사들이 한국어로 표현한 평화 메시지를 들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우영근 나눔둥지 단장 “그저 어르신들 좋아서 합니다”
- 20년째 매달 200만원 자비부담하며 앞치마 두른 남자
“할매 많이 드이소.” 지난해 12월24일 낮 12시 대구시 남구 대덕노인복지회관 식당에서 우영근 나눔둥지 단장이 한 어르신의 국그릇에 소고기국을 붓고 있다.
지난해 12월24일 크리스마스 전날 밤. 대구시 남구 대덕노인복지회관에는 어르신들로 북적였다. 어르신들만 안다는 대구에서 유명한 ‘맛집’이 매주 토요일마다 복지관에 들어서기 때문이다. 오전 11시20분께 100여석이 넘는 복지관 지하식당에는 점심식사를 기다리며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로 꽉 찼다. 그리고 식당 안 주방에서는 어르신들을 위해 앞치마를 두른 채 분주히 음식을 준비하는 ‘나눔둥지’ 우영근 단장(58)을 만날 수 있었다.
이날 메뉴는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묵, 신선한 파레무침, 김치 3가지 반찬과 소고기국에 쌀밥이다. 국밥 하나가 대부분인 일반적인 봉사단체와는 달리 ‘나눔둥지’는 꼭 3가지 반찬과 국을 고수한다. 반찬들은 우 단장이 오전 6시 칠성시장에서 직접 공수해 온다. 모두가 쉬는 주말, 꼭두새벽부터 어르신들을 위해 찬거리를 산 후 직접 식당에서 조리하는 것이다.
“여기 밥이 최고야, 먹어봐 진짜 맛있어.” 어르신들은 이구동성 음식이 맛있다며 엄지손을 치켜세웠다. “나 좋아하는 카레는 언제 해줄거야?” 우 단장과 농담을 하며 직접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를 해달라고 떼를 쓰는 어르신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아름아름 맛집으로 소문이 나면서 남구지역의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달서구 상인동 등 타 지역의 어르신들도 이곳에 방문해 점심을 해결한다. 전동휠체어를 끌고 와서 점심을 먹는 할머니도 눈에 띈다.
대구대덕노인복지회관에서 매주 어르신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나눔둥지 봉사단.
우 단장의 이러한 봉사는 벌써 20여년이 넘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어르신들의 점심을 책임지는 데 드는 비용은 45~50만원. 이 비용도 우 단장이 전액 부담한다. 한 달간 어르신들을 위해 200여 만 원의 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것도 모자라 주말인 토요일에는 직접 앞치마를 둘렀다. 이러한 우 단장의 희생과 헌신에 감동한 어머니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면서 ‘나눔둥지’가 결성됐다. 지금은 고정적으로 10여명의 어머니와 영남이공대 간호학과 학생들도 함께 동참하고 있다.
함께 봉사하는 어머니들은 취재진에 질문에 매우 멋쩍어했지만 이내 말문을 열었다. “우 단장이 주방에서 얼마나 잔소리 많은지 몰라요(웃음). 특히 위생 얼마나 철저한지 이렇게 봉사한다고 설렁설렁 하는 법이 없어요. 여기 있는 엄마들도 모두 이해관계 있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오로지 자원하는 마음으로 왔죠.” 자녀와 함께 매주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한다는 50대 어머니는 “(우 단장이) 맨날 옆에서 어르신들 밥 많이 퍼라, 반찬 더 퍼라 그래요. 그러다보면 남는 게 없어서 봉사자들이 라면 끓여 먹을 때도 많았어요. 오늘은 라면 먹기 싫은데...”라고 보탰다.
“여기 국 좀 더 줘.” 식사 배식이 끝나도 우 단장은 어르신들 밥과 반찬이 부족하지 않나 싶어 살핀다. 누구 할머니 손자는 어디에 취직했고 딸은 어디에 시집갔다는 등 시시콜콜한 집안 사정도 다 안다. 단순히 어르신들 밥 한 끼 제공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 자신의 부모처럼 살피는 것이다.
우영근 나눔둥지 단장은 “어르신들이 저 진짜 좋아합니다. 저도 (어르신들 좋아하는 것은) 마찬가지고요. 또 할매들 입맛 까다로워서 여기 재료 싱싱하고 밥 맛있다는 것 잘 알겁니다. 제 몸이 성할 때까지 계속 할 겁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 김광희 다사랑 미용봉사단 단장 “제 자신 행복 위해 가위 들었죠”
- 미용사·네일아트·피부관리사 등 미용 전문가들 뭉쳐
“주머니 대신 마음이 넉넉해져 즐겁습니다.” 지난해 12월27일 오전 대구의 한 복지회관에서 김광희 다사랑 미용봉사단 단장이 어르신의 머리카락을 손질하고 있다.
“할머니 빗질할 때 이쪽 말고 저쪽으로 해야 더 자연스러워요.” 머리카락을 잘라주던 미용사가 어르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조언해주며 능숙한 손놀림으로 머리를 다듬는다. 거울 앞에 비췬 어르신의 얼굴이 가위질이 더해갈수록 점점 훤해진다.
지난해 12월27일 오전, 대구의 한 복지회관 지하에는 머리를 손질하려는 어르신들이 가득했다. 매달 마지막 화요일에는 무료로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켠에서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들을 상대로 봉사자들이 염색을 하고 있다. 독한 염색약가 나지 않아 의아해하는 취재진에게 한 미용사는 “지금 쓰는 염색약이 일반 염색약보다 훨씬 좋은 거라서 그래요. 어르신들은 두피가 약해서 순하면서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쓰거든요”라고 귀뜸했다.
“아이고 정말 예쁘다. 10년을 젊어 보이는 게 예식장 가는 혼주 같네.” 구불구불한 흰머리가 건강하고 윤기 나는 검은 머리로 바뀌는 것을 거울을 통해 확인한 어르신들은 연신 웃으며 봉사자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다사랑 미용봉사단’의 이 같은 수고는 올해로 벌써 7년째이다. ‘모든 이들을 사랑하자’는 의미에서 지어진 다사랑은 미용실을 직접 운영하는 원장부터 네일아트, 피부관리실, 뷰티샵을 운영하는 이들로 구성됐다.
어르신들의 이미용을 책임지고 있는 다사랑 미용봉사단.
“사실 처음부터 꼭 봉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한 건 아니었어요.” 다사랑 미용봉사단 김광희 단장(48·여)은 봉사활동을 하게 된 계기를 솔직담백하게 말했다.
이들의 인연은 수년 전 영남이공대에서 실시한 한 미용프로그램에서부터였다. 그때 만난 20명의 미용사들에게 학교 측이 활동비 명목으로 제공한 식사비 20만원이 봉사단의 시작이 된 것이다. “한 끼 식사를 하기엔 아쉬워서 좋은 일을 하자고 입을 모았어요. 그때 그 20만원으로 염색약 사면서 활동이 시작됐죠.”
다사랑 봉사단을 운영하면서 여러 가지 고비가 있었다고 한다. 가장 어려운 점을 ‘꾸준함’과 ‘계획’이었다. “모두들 봉사에 대한 정신과 마음은 갖고 있었지만 개인 환경으로 꾸준하게 봉사 오시는 분들이 드물었어요. 그래서 한해 두해를 겪으면서 봉사의 울타리를 내가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누구든지 봉사활동을 할 수 있게끔 말이예요.”
그녀의 또 다른 계획은 지역에서 머리카락 기부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소아암 환자들은 화학적 항암치료를 받으면 탈모 등의 부작용이 생긴다고 해요. 이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고 또 한편으로 기부하시는 분들에게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을 선물로 드리고 싶어요.”
대구·경북권 내에서 청소년 진로체험 헤어디자인반 강사로도 활동하는 그녀는 중·고교생에게도 자원봉사의 전도사로 통한다.
“이렇게 좋은 봉사활동을 혼자만할 순 없죠. 이젠 혼자서만 봉사활동하면 된다는 시대는 지나간 것 같아요. 모두와 함께 더불어 좋은 것 나누며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어요?”
# 서기주 대구SMC 센터장 “빛과 비와 공기같이 살 겁니다.”
- 외국인 대상, 무료 한국어강좌 등 한국문화 교육과정 개설
- 대구컬러풀퍼레이드 참가 등 적극적인 사회활동 도와
“한글자씩 알려주고 고쳐주며 한국어 잘하도록 도와주려고 애쓰는 모습에 감동 받았습니다.” 대구SMC다문화센터 서기주 센터장(오른쪽)과 수강생 차느크씨(왼쪽)가 한국어말하기 수료 상장을 든 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정말 고맙습니다. 지금은 여기가 저의 조국이자 집이예요. 한국의 정이라는 게 얼마나 따스하고 끈끈한지 매번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31일, 한해의 끝자락을 타국에서 보내는 외국인들의 웃음소리가 정겹게 울려 퍼진다. 이날 오후 대구시 남구에 위치한 ‘대구SMC다문화센터’에는 태권도를 배우는 20여명의 외국인들로 북적였다.
다른 한 켠에 마련된 교실에서는 기타를 배우는 외국인들도 눈에 띈다. 고국에서는 엄두도 못 낼 교육과 취미들이다. 오늘의 수업은 오전 태권도, 오후 기타 그리고 한국어교육이다. 교육은 수준에 따라 초급부터 심화까지 마련돼 있다. 그런데 학원비용이 ‘무료’이다.
“이제 겨우 2년 됐습니다. 사실 그동안 현실의 큰 벽도 많았고...어려운 일들이 많았지만 외국인들이 너무나 좋아해서 그만둘 수가 없더라고요.” 서기주 대구SMC 센터장(56)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2014년 2월, 민간자원봉사단체 대구SMC다문화센터는 7명으로부터 시작됐다. 대부분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힘든 근무여건 속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국의 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 계기였다. 외국인 몇 명에게 개인적으로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이곳저곳 봉사활동을 함께 다니며 한국의 따스함을 알리기 시작한 지 1년 만에 50여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이들과 함께 하게 됐다.
시민축제 대구컬러풀축제에 참가하고 있는 대구SMC다문화센터 외국인 수강생들.
“당시 이렇게 많은 외국인들을 어떻게 수용할까 정말 고민했습니다. 마땅한 장소가 없었거든요. 매번 장소 대여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고요.” 그런 서 단장의 마음은 지역에 뜻있는 사람들의 후원으로 이어져 지난해 10월 대구시 남구 대명동에 ‘대구SMC다문화센터’가 열리게 됐다.
현재 대구SMC다문화센터에는 최명석 이사를 비롯해 서기주 센터장과 한국어교사, 태권도·기타 교사 등 15명의 전문인들의 재능기부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총 등록된 외국인 수강생만 100여명, 매주 평균 40~50명의 외국인들이 찾는다. 수강생들은 싱가포르·우즈베키스탄·스리랑카·방글라데시·네팔 베트남 등 13개국의 외국인들로 동남아시아 지역이 대부분이다.
“사실 지역 내에서 열심히 봉사하시는 고마운 분들 참 많아요. 그런데 정작 고국의 어려운 경제에 타국으로 내몰린 외국인들을 위한 봉사단체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왕 봉사하는 거 획기적으로 해보자고 부딪친 게 여기까지 왔어요.”
대구SMC다문화센터 개소로 탄력을 받은 봉사자들은 단순히 한국어만 가르쳐주는 것을 넘어서 한국의 우수한 문화를 알리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봉사를 연계한 활동을 기획했다.
병원진료를 제때 받기 힘든 외국인들을 위해 ‘건강닥터’를 운영하는 대구SMC다문화센터. 고된 공장일로 팔이 아픈 외국인들을 위해 봉사자들이 마사지를 하고 있다.
운동장을 빌려 자체 체육대회를 여는가 하면 새마을발상지인 청도에서 벽화그리기 봉사를 하고 지역 내 여러 박물관을 돌며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익혀갔다. 특히 2015년 5월 대구컬러풀퍼레이드에도 지역사회 일원으로 당당히 참가해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해 제 조국에서 대지진이 났었어요. 그때 여기 분들이 모금을 해서 저한테 줬어요. 제 가족 집이 무너져 공동텐트에서 지내는 거 알고 저 모르게 돈 모으신 거예요.” 네팔에서 왔다는 허리씨는 눈물로 감사함을 표했다.
“무엇보다 선생님들이 어려운 것 하나하나 들어주고 도와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감동이었어요. 우리가 병원 같은 데 잘 못 가는 것 아시고 무료검진도 해 주셨죠. 그래서 저는 외국인들 만날 때마다 여기 꼭 오라고 추천합니다”. 대구SMC에서 한국말을 배웠다는 차느크(25·스리랑카)씨 이같이 털어놨다.
서기주 대구SMC 센터장은 “여기에는 하루 15시간 이상씩 일하는 외국인도 있어요. 가족들에게 돈 조금이라도 많이 보내려고 말이죠. 한국 음식 안 맞아서 위장 장애도 많이 가지고 있고요. 소소하지만 그들의 일상을 돌아보며 진정 어렵고 힘들어하는 것을 보게 되면 돕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겨요. 앞으로 쭉 값없이 내려주는 빛과 비와 공기같이 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대구남구자원봉사 이지형 센터장은 “대구SMC다문화센터는 운동회도 하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등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특이한 교육으로 지역사회 정착을 돕는 봉사단체”라며 “순수하게 봉사만 하시는 마음 따뜻한 분들이 자원봉사 기획도 정말 체계적으로 잘 하신다. 우리 지역에 꼭 필요한 봉사단체”라고 밝혔다.
대구 = 남경원 기자 skaruds@ilyod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