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일요신문 DB
이 전 대통령 탈당 소식과 동시에 ‘반기문-MB’ 연대설이 정가에서 관심을 모았다. 새누리당과의 결별을 선언한 이 전 대통령이 반 총장을 적극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새누리당의 한 보좌관은 “MB는 권력을 쥐고 영광을 누렸던 사람이다. 권력자의 본능은 영향력을 죽을 때까지 끼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전두환도 바지사장을 내세워서 말년에 계속 정치하려고 했는데 MB라고 다를 것 있겠나. 여권의 대선후보는 반 총장 외에 없다. MB도 결국 반 총장을 밀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친이계 인사들은 일제히 ‘반기문 띄우기’에 돌입했다. 일각에선 “MB 측근 이동관 청와대 전 홍보수석이 광화문에 사무실을 차린 뒤 반 총장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이 전 홍보수석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사무실을 낸 일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옛날부터 알고 지낸 대학 선배다. 보수 진영에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하는 데까지 해봐야 한다. 이 전 대통령을 포함해 다들 반 총장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반 총장이 워낙 누구에게나 잘해왔다”고 설명했다.
나경원 의원은 신당 보류 결정을 내린 직후 공개적으로 반 총장을 향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나 의원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대변인을 맡았던 친이계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반 총장은 중도 보수의 가치를 담아낼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반 총장의 대선 행보를 돕겠다”고 밝혔다. 나경원 의원실 관계자는 “원론적인 수준에서 의견을 밝힌 것인데 마치 지지선언처럼 확대 해석된 부분이 있다. 나 의원은 사람을 따라가는 정치인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바른정당 추진 과정에서 흘러나온 잡음도 그 연장선상에서 받아들여진다. 앞서 정치권에선 나 의원의 탈당 보류 결정이 박형준, 박재완, 이주호 등 친이계 원외인사들을 영입하려다가 유승민 의원과 갈등을 겪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제기됐었다. 박형준 국회 전 사무총장은 MB 정부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대표적인 ‘MB맨’이다. ‘MB 순장조’로 불리는 박재완 전 기재부 장관 역시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일제고사, 국제중, 고교 다양화 등 MB표 교육 정책의 장본인이었다.
이에 대해 나 의원 최측근은 “나 의원이 MB 측 인사를 집어넣으려고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나 의원이 정강정책 팀장을 맡았을 당시 실무자들의 가안에 박형준 박재완 이주호 등이 있어 나 의원도 놀랐다. 나 의원은 이들에게 개인적으로 자문을 구하려 했을 뿐인데 신당 실무진이 그 이야기를 듣고 실수로 이름이 들어갔다. 박 전 사무총장은 우리 쪽 추천도 아니었다. 나 의원은 팀을 구성해주면 구성안대로 받아들이겠다고 했었다”고 밝혔다. 나 의원은 자신도 모르게 진행된 일이라고 해명했지만 반 총장을 향해 연일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신당 추진 명단에 친이계 인사들의 이름이 거론된 점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박진 전 의원 역시 반 총장 측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통’ 박 전 의원도 이명박 정부 인수위 외교통일안보분과 간사를 맡았던 친이계 인사다. 반 총장 측근 김원수 전 유엔 사무차장, 오준·김숙 전 유엔대사가 국내 위주로 활동하고 있다면 박진·심윤조 전 새누리당 의원들이 정무분야를 지원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다른 보좌관 역시 “박 전 의원은 반 총장과 원래 가까운 사이다. 서울 종로에서 3선을 했던 경험 때문에 반기문 캠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만한 인물이다”고 평했다.
이 전 대통령도 반 총장을 향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지난해 10월 2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손학규 전 경기지사 등을 비판한 뒤 반 총장에 대해 “반 총장이야 정상적이지. 그 자리에 올라갔다는 사실이 말해주는 거지”라고 호평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MB 최측근 이재오 전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후보가 반 총장밖에 없어 이 전 대통령이 반 총장에 대해 긍적적으로 말한 것 같다. 반 총장을 제외한 보수 진영의 후보군들의 지지율은 고작 2~3%다. 대권후보라고 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조기 대선이 현실화하면 선거에 능한 친이계 베테랑들이 반 총장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당직자는 “탄핵이 인용된다면 반 총장 주위에 포진한 외교관 출신들은 빠른 시간 안에 대선 캠프를 꾸릴 수가 없다. 그 사람들로 어떻게 반 총장이 대선을 치르나. 전국을 대상으로 기획하고 홍보해야 하는데. 반 총장은 반드시 누군가의 손을 붙잡아야 한다. 누군가 꽃가마를 태워줘야 한다. MB와 친이계 인사들이 반 총장을 도운다면 시너지 효과가 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야권에선 ‘MB-반기문’ 연대설에 대해 날선 비판을 가하고 있다. 박경미 대변인은 최근 “촛불민심은 반칙과 특권의 벽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바라는 국민의 열망이다. 국민이 청산을 요구하는 낡은 적폐를 만들어놓은 이명박근혜 정권을 향한 탄핵이었다. 최근 친이계 인사들이 반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조직을 지원하고 있다는 증언이 나오는데 이 전 대통령은 헛된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며 자중하길 바란다” 비판했다.
반 총장 측은 친이계 인사들의 막후 지원에 대해 기대감을 드러냈다. 반 총장의 최측근은 “도와준다고 하니 환영이다. 이 전 수석은 굉장히 유능한 분이다. 친이계 인사들은 선거에 도가 텄고 나라를 관리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신당 창당은 물론 대선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된다. 경험보다 더 큰 자산은 없다. MB 역시 기본적으로 애국심이 강한 사람이다. 친이계는 선거에 미친 사람들이다. 그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대가를 바라고 우리를 돕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