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씨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서운함을 털어놓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이목을 끌고 있다. 연합뉴스·사진공동취재단
“억울한 부분이 많다.”
1월 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공판에서 최 씨는 “진술할 부분이 있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이어 최 씨는 재판부가 “혐의를 전부 부인하는 것이 맞느냐”라고 재차 묻자 “네”라고 짧게 답했다. 앞서 최 씨는 공판 준비기일에서도 출석해 모든 혐의를 부인했었다.
최 씨와 공모 혐의를 받고 있는 박 대통령 역시 비슷한 스탠스다. 박 대통령은 1월 1일 기자간담회에서 세월호 7시간, 미르·케이스포츠재단 비리 등 모든 의혹들을 반박하고 나섰다. “검찰이 나를 엮었다”라는 강경한 표현까지 섞었다. 앞서 세 차례의 대국민 사과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이는 탄핵 심판을 염두에 둔 행보인 동시에 현재 수사 및 재판을 받고 있는 측근들을 향한 메시지로 풀이된다.
법조계에서는 이를 두고 핵심 당사자인 박 대통령과 최 씨가 갈등을 빚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고개를 든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둘 다 의혹을 부인하는 것은 끝까지 법적으로 다퉈보겠다는 뜻 아니겠느냐. 이런 경우 서로를 향한 폭로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금 박 대통령과 최 씨 간에 조율이 잘 되지 않는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나 최 씨 모두 사건 초반 태도와 달라진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최 씨는 1970년대부터 박 대통령과 가깝게 지냈다. 최 씨 부친 최태민이 둘의 연결고리로 알려져 있다. 1998년 박 대통령 정계 진출 이후부턴 최 씨와 함께 전 남편 정윤회 씨가 비서실장 역할을 맡으며 밀착 보좌를 했다. 박 대통령은 대선 승리 후에도 이런 관계를 유지했고, 이는 결국 사상 초유의 국정 농단 사건의 발단이 됐다. 다음은 한 친박 중진 의원이 사석에서 털어놓은 말이다.
“40년 넘게 최 씨는 인간 박근혜의 일을 봐줬다. 다만 박 대통령 신분이 일반인에서 국회의원, 국회의원에서 대통령으로 변했을 뿐이다. 최 씨 입장에선 ‘원래 하던 일을 했을 뿐인데 왜 이리 난리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최 씨가 공과 사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박 대통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참모들이 최 씨 관련 지적을 하면 불쾌해하며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최 씨 심경에 중대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공동 운명체’나 다름없던 박 대통령과 최 씨 사이에 파열음도 흘러나온다. 최 씨는 변호인을 포함한 조력자와 지인들로부터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 상황 및 딸의 소식 등을 접하고 상당히 힘들어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박 대통령을 향한 원망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최 씨 주변을 수소문했다. 현재 최 씨는 변호인 외엔 그 어떤 면회도 할 수 없다. 앞서 검찰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최 씨에 대해 비(非) 변호인과의 접견 및 교통 금지를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최 씨 상황을 알기엔 한계가 있었지만 지인들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은 변호인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최 씨와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고 했다.
우선 최 씨와 친하게 지냈던 한 변호사는 흥미로운 말을 들려줬다. 그는 “귀국 전부터 최 씨에게 전화 통화로 법률적 조언을 해줬다. 솔직히 말하면 당분간 외국에서 머물며 지켜보자고 조언했다. 그런데 최 씨는 걱정 말라고 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얘기가 다 돼 있다고도 했다. 그리곤 국내로 들어왔다. 얼마 전 최 씨로부터 통지가 왔는데 후회하고 있다는 취지였다. 애초에 생각했던 상황과는 다르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 아니겠느냐”라고 귀띔했다.
이어 그는 “최 씨는 귀국 직전 일정 부분 혐의를 인정하겠다는 뜻을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1차 공판과 준비기일 등에선 모두 부인하고 있다. 이는 마음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 씨 측은 현재 ‘평범한 아줌마에 불과한 내가 무슨 힘으로 인사에 개입하고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었겠느냐. 대통령이 시켜서 한 것이다’라는 논리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 박 대통령 변호인단과 치열한 공방이 펼쳐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최 씨는 박 대통령 측 기류에 대해 상당히 섭섭해 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최 씨의 측근은 “최 씨가 ‘함정에 빠졌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이대로라면 최 씨가 모든 것을 뒤집어쓰게 되는 구조다. 최 씨는 박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말을 맞춰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고 있다며 의심했다. ‘내가 독박을 쓰게 생겼다’라며 하소연하는 것을 들었다”고도 했다.
또 다른 지인 역시 비슷한 말을 들려줬다. 그는 “최 씨는 재단과 관련된 비리들에 대한 처벌은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었다. 다만, 대통령 옷을 사주거나 연설문을 고쳐주는 등의 일이 도마에 오르고 사법적으로 조사대상에 포함된 것은 정말 억울해했다. ‘대통령이 원하지 않았다면 본인이 그렇게 할 수 있었겠느냐’라는 것이었다”면서 “청문회 등을 거치면서 딸 문제가 계속 거론되자 최 씨는 ‘이렇게까지 됐는데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 대통령이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다’라고 눈물을 흘렸다”라고 했다.
이를 종합해봤을 때 최 씨가 박 대통령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는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앞서 최 씨는 이른바 ‘구치소 청문회’에서도 한 국회의원이 “박 대통령이 (최순실을) 시녀 정도 되는 사람”이라고 했다는 말을 전하자 “그런 소리를 했어요?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앞서의 최 씨 관련 변호사는 “최 씨가 본인의 심경을 외부에 흘리는 것을 의미심장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검 수사와 재판 등을 앞두고 박 대통령에게 경고성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