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권력형 도승지도 많았다. 그들은 정쟁이 일어났을 때 왕의 최측근으로서 정무를 관장하며 ‘집권당’의 핵심 역할을 맡았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정조 때 도승지를 지냈던 홍국영. 그는 현재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MBC 드라마 <이산>에서 왕권이 약한 정조를 위해 몸을 던지는 ‘친위대장’ 역할을 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정조 즉위의 1등 공신으로서 당시 최고의 권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지금의 경호실에 해당하는 숙위소를 창설, 그 대장을 겸임하며 정조의 신변보호에 힘쓰고 도승지까지 올랐다. 하지만 그때부터 세도정치가 이루어져 갖은 횡포와 전횡을 일삼기도 했던 논란의 인물이었다.
역사적으로 도승지의 권한은 왕권 강화와 비례했다. 왕이 신하들과 맞서며 권력을 강화했을 때는 그것을 돌파하는 강력한 도승지가 주목받았다. 하지만 왕권이 유명무실했을 때는 도승지는 실무적인 보좌역에 그쳤다. 조선시대의 도승지가 현대에 와서도 주목을 받는 까닭은 아직까지도 도승지의 전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 때까지 23명의 청와대 비서실장 중 13명이 권력 실세가 아닌 순수한 ‘비서형’이었다는 통계가 있다고 한다. 권력형과 비서형이 엇비슷한 비율인 것으로 보아 순수한 실무기능의 비서형이 되기가 쉽지 않다는 뜻도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당선인은 서울시장과 대선 후보 시절 비서실장에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그는 철저하게 2인자를 만들지 않는 권력 운용을 보여 왔다. 그래서 대통령실장에 내정된 유우익 서울대 교수도 실무형 실장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그 또한 예전 도승지의 ‘권력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첫 기자회견에서 한껏 몸을 낮췄다. 하지만 유 내정자는 ‘홍국영 형’의 권력형 컨트롤 타워가 될지, 실무 보좌와 조력자로서만 기능하는 ‘기업형 비서실장’으로만 그칠지는 이명박 권력지도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