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정부 초대 대통령실 수석 비서관들의 면면이 드러나면서 이명박 정부의 새로운 권력 운용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일 이 당선인이 인수위 사무실을 나선 후 승합차에 오른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 ||
이 당선인은 그동안 ‘무조건 노무현 대통령과 반대로 한다’라는 비판까지 들을 정도로 노무현 정권의 권력 운용 방식을 철저히 배격해 왔다. 향후 이명박 정부의 권력 운용 방식은 한마디로 ‘청와대로의’ 선택과 집중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현행 ‘비서실장-정책실장-외교통일안보실장’을 통합한 ‘슈퍼파워’ 대통령실장의 등장은 권력지도의 큰 변화를 의미한다. 여기에 ‘여의도 정치’에 익숙하지 않은 이 당선인의 ‘정치 개인교사’ 역할을 할 정무수석도 향후 정부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이 당선인의 관심사항만을 전담할 ‘리베로’ 역할로서의 특임장관(무임소장관)도 그 역할과 위상이 높아질 전망이다. 지난 노무현 정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명박 시대의 새로운 권력 운용 방식을 뉴파워맨 3인을 통해 들여다보았다.
지난 5년간 노무현 정권의 핵심 국정 테마는 견제와 균형이었다. 특히 노 대통령 스스로 ‘권력을 놓았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대통령에게 모든 하중이 쏠리는 권력 집중을 지극히 싫어했다. 그래서 노 대통령은 총리에게 힘을 실어 주는 책임총리제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본인을 중심으로 ‘헤쳐모여’를 외치고 있다. 이 당선인은 자신의 강점인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국정을 직접 챙기겠다는 뜻을 누차 밝혀왔다. 이 당선인 측은 총리실이 맡던 정책 조정 기능은 청와대 비서실 수석 등의 기능과 중복된 대표적인 방만 시스템으로 본다. 그래서 총리 산하 국무조정실을 폐지하고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 국정 전반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한 참여정부의 청와대 기능도 비서실장 정책실장 안보실장의 삼두체제로 운영되면서 견제와 균형보다는 정책 혼선만 가중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정치권에선 이명박 새 정부의 조직 개편의 핵심은 역시 청와대 기능 재조정으로 보고 있다.
사실 외양으로만 보면 청와대 비서 기능 조직은 대폭 줄었다. 대통령 비서실과 경호실 등이 ‘대통령실’로 통합되면서 장관급 실장 4인이 1인으로 축소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여기에 정원도 20%가량 줄어드는 등 대대적인 슬림화를 진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조직이 대폭 축소됐다고 해서 역할도 줄어든다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대통령실장의 역할이 강화되고 ‘정무수석’, ‘인재과학문화수석’ 등이 신설되면서 사회 전 분야에 걸친 청와대의 권한은 오히려 더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특히 정치권에선 “이 당선인이 신설되는 대통령실장과 정무수석의 투톱 시스템으로 강력한 친정체제를 구축해나갈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새 대통령실장에 내정된 유우익 서울대 교수는 이 당선인의 정책과 비전을 총괄하는 일종의 ‘우뇌(右腦)’로 통한다. 이 당선인이 요즘 가장 많이 언급하는 “잘하는 곳은 더 잘하게 부추기고, 뒤쳐진 곳에는 여건을 조성하고 기운을 주는 처방이라야 상책이다”라는 말도 유 내정자가 10여 년 전부터 남해안 개발 계획 등을 발표하면서 쏟아냈던 핵심 명제다. 이렇듯 유 내정자의 철학이 곧 이 당선인의 국정 비전이 된다는 점에서 새 정부에서 그의 역할은 매우 주목된다. 여기에 대통령실장은 비서실 정책실 안보실 등 3실이 ‘대통령실’ 단일 체제로 개편되는 새 청와대를 아우르는 자리다. 부총리제도가 없어지고 총리도 자원 외교 등 독자 업무에 주력하게 되면 대통령과 내각을 잇는 역할도 책임지게 된다. 그래서 “총리 못지 않게 눈여겨볼 직책이 바로 대통령실장”이라는 말들이 나온다.
하지만 이 당선인은 지금까지 대통령실장의 역할에 대해 “비서실은 국정에 협조하며 대통령과 내각 사이의 의사 전달을 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선을 그어왔다. 그럼에도 현재 관료사회는 ‘작지만 강해진’ 대통령실의 기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고위 공무원은 이에 대해 “이 당선인이 대통령실장을 실무적 기능에 국한시킬 것이라고 하지만 개정된 정부조직을 보면 청와대의 컨트롤 타워 기능이 노무현 정권 때와 비교할 때 대폭 강화된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될 경우 정책 결정의 강력한 권한이 없는 내각은 부담이 되는 모든 사안을 청와대로 떠넘길 것이다. 어차피 이 당선인이 모든 국정운영을 총괄하겠다는 뜻을 강하게 시사한 만큼 어느 공무원이 ‘당돌하게’ 스스로 결정하려고 할 것인가. 웬만한 사안은 모두 청와대로 결재가 넘어갈 것이다. 그렇게 돼도 문제다. 관료들이 장악하고 있는 정책 사안에 대해 국정 운영 경험이 없는 청와대 대통령실이 그 많은 현안을 모두 처리할 수 있겠느냐. 그럼 어차피 관료들에게 다시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시간 낭비를 생각하면 청와대의 컨트롤 타워는 일종의 욕심이다. 그리고 앞으로 그 많은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청와대 비서 기능은 다시 비대해질 게 뻔하다”라고 말했다.
▲ 유우익 대통령실장 내정자(왼쪽), 박재완 정무수석 내정자. | ||
이런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이 당선인은 대통령실장의 비중을 애써 낮춰 언급하고 있다. 또한 이를 위해 이 당선인은 정치와는 거의 무관한 교수 출신의 유 내정자를 대통령실장에 앉히고 그에게 쏠릴지 모르는 ‘울트라 파워’도 견제할 장치를 마련했다. 차기 정권에서 신설되는 정무수석자리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유우익 대통령실장 체제의 청와대는 앞으로 권위주의 시대의 ‘권부적’ 성격보다는 대통령의 국정 조력자 역할에 충실하게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보완해 투톱 시스템의 한 축으로 정무수석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법을 쓸 것으로 예상된다. 참여정부가 당·청 분리를 내세우며 정무수석직을 없애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던 만큼 새로 부활되는 정무수석 박재완 내정자의 역할은 앞으로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이명박 당선인은 청와대 수석을 인선하는 과정에서 정무수석 자리를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여기에는 그가 경제에 비해 ‘정치’에는 상대적으로 ‘문외한’이기 때문에 신임 정무수석은 대여 창구인 동시에 이 당선인의 ‘정치 가정교사’로서의 역할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대위에서 활약했던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난 경선 때와 대선 과정에서 이 당선인이 정치 현안에 대해 며칠씩 시간을 두고 결정을 미루는 적이 많았다. 최선의 선택을 위해서 장고를 한 것도 이유가 되지만 실제로 이 당선인이 여의도 정치를 잘 몰라서 계속 미적미적했던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안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박재완 정무수석 내정자는 이 당선인의 정무적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역할이 매우 클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사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모두 정치에는 일가견이 있는 ‘정치 9단’이었기 때문에 정무수석의 자리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업 CEO 출신인 이 당선인으로선 당분간 정무수석에게서 중요한 조언을 많이 받아야 할 처지에 있기 때문에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당선인이 박재완 내정자를 발표하면서 “일찍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다”라고 말한 대목에서 보듯이 향후 그의 ‘멀티플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통령실장 정무수석과 함께 새 정부의 ‘리베로’가 될 특임장관이 이명박 정부의 3각 트로이카 체제를 형성할 전망이다. 사실 신설되는 특임장관직 2개는 국무위원을 15인으로 해야 하는 헌법상 규정에 따라 만든 ‘위인설관’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이 자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이 당선인이 부여하는 특별한 임무를 담당할 예정이기 때문.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통령의 직접 지시를 수행하게 된다는 점에서 특임장관이 새로운 ‘실세’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이 자리 역시 다른 장관 인선과는 달리 이 당선인의 의중 속에만 들어있기 때문에 누가 될지에 따라 청와대의 권력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야당이 될 대통합민주신당에서는 “대통령하고만 접촉하고 대통령의 지시만 받는 특임장관에게 특정 업무를 맡긴다는 것은 국회의 감시를 받지 않겠다는 ‘박정희식 발상’”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향후 특임장관의 역할이 통일 등의 핵심정책이 아닌 자원개발과 투자 등으로 한정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들도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