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 대통령 최측근 이광재 의원이 ‘김상진 게이트’ 연루 의혹으로 검찰의 내사를 받고 있다. 배경 사진은 김상진 씨가 수백억 원의 대출을 받아 매입한 부산 수영구 민락동 매립지내 놀이공원 ‘미월드’ 전경. | ||
검찰의 사정 칼날이 참여정부 실세들을 정조준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불거진 이른바 ‘김상진 게이트’에 정치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부산지역 건설업자인 김 씨의 재개발 비리 의혹에서 시작된 이 사건은 정상곤 당시 부산지방국세청장과 참여정부 386 실세인 정윤재 전 비서관이 관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권력형 비리로 확전됐다. 결국 두 사람은 세무조사 청탁 로비 의혹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됐고 전군표 전 국세청장도 국세청 내부의 고질적 상납 비리 실태가 드러나면서 현직 국세청장으로는 최초로 구속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들 세 사람이 구속되는 선에서 마무리되는 듯 했던 ‘김상진 게이트’는 예상치 못한 전 전 청장의 법정 폭탄 발언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전 전 청장은 11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정상곤 전 청장이 국회의원을 통해 특정자리에 대한 인사청탁을 했느냐”는 변호사의 신문에 “2006년 하반기 가깝게 지내던 이 모 의원이 정 전 청장에 대한 인사 청탁을 강하게 했다”고 답했다. 전 전 청장은 이 모 의원이 누구인지 실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그의 측근이 “이 의원은 이광재 의원”이라고 밝혀 파문을 야기하고 있다.
이에 앞서 전 전 청장은 구속되기 전 자신을 겨냥한 검찰 수사망이 좁혀오자 “거대한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있다. 복잡한 김상진은 어디 가고 전군표만 남았느냐”며 격분을 토로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임기가 막바지에 다다르자 전 전 청장이 변호사와 사전 협의 하에 이 사건과 관련한 거대한 시나리오를 밝히는 동시에 자신의 억울함을 재판부에 호소하기 위해 폭탄 발언을 준비한 게 아니냐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전 전 청장의 폭탄 발언에 대해 이 의원은 일부 언론을 통해 “청탁이 아니라 인사 추천을 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어떤 식으로든 이 사건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만큼 향후 법적·정치적 공방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동안 ‘김상진 게이트’를 둘러싼 또다른 실세 개입 논란이 끊이질 않았지만 노 대통령의 핵심 실세인 이 의원의 실명이 공개적으로 거론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치적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 의원에 대한 철저한 검찰 수사와 더불어 정계은퇴를 촉구하고 있고 ‘친노 색깔’ 지우기를 시도하고 있는 통합민주당도 차가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대은 한나라당 부대변인은 12일 논평을 통해 “전군표 씨의 진술은 검찰 수사 과정이 아니라 공개된 형사법정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이 의원이 인사 청탁 비리에 개입돼 있음을 확증시킨 것”이라며 “겉으로는 서민의 정부라고 포장해 놓고 뒤로는 온갖 부정으로 이권개입이나 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의 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났다”고 맹비난했다.
검찰도 전 전 청장을 조만간 소환해 이 의원이 인사청탁을 한 시점과 장소 등에 대해 조사하고 당사자 간 금품수수 등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본격적인 내사를 벌인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또 전 전 청장에 대한 조사를 거친 뒤 필요할 경우 이 의원을 상대로 한 조사 가능성도 열어 논 상태다. 검찰 일각에서는 이 의원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면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현 정권 실세들이 연루된 ‘월척’을 건질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 또다른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정상문 비서관. | ||
검찰은 증거물로 압수한 업무추진비 지출 내역을 토대로 정 비서관의 사위였던 이 아무개 씨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S해운 로비 리스트’의 진위를 규명하는 데도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 리스트에는 김 전무가 정 비서관을 포함해 국세청·검찰 간부 등 8명에게 수천만 원에서 억대의 금품을 건넨 내역이 적혀 있어 검찰 수사 추이에 따라 권력형 비리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검찰은 또 정 비서관의 전 사돈이 2003년과 2004년 사이 청와대를 10여 차례 방문해 정 비서관을 만났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이 씨가 청와대를 방문한 경위 및 S해운의 세무조사 관련 로비에 관여했는지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검찰은 전 사돈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파견되는 경찰 인사와 관련해 정 비서관과 민정수석실 관계자에게 S해운 로비리스트에 오른 권 아무개 씨를 추천한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이 씨가 2003년 말부터 2004년 말까지 수차례 청와대를 방문하고 권 씨를 인사 추천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14일 “자체 조사 결과 이 씨가 수차례 방문했던 건 사실인 것 같다”며 “이 씨가 권 씨의 파견 과정에서 정 비서관 등에게 추천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천 대변인은 “당시 민정수석실에서 경찰청 파견 인력이 필요했는데 권 씨는 추천과정에서 이미 후보에 포함된 사람이었고 정 비서관은 추천을 받긴 했지만 개입하진 않았다”고 해명했다.
권력형 비리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제 식구 감싸기’ 내지는 ‘모르쇠’로 일관하다 더 큰 파장을 일으킨 바 있는 청와대가 임기말인 이번에도 서슬퍼런 검찰의 칼날을 피해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