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당선인이 취임도 하기 전에 지지율에 균열을 보이며 리더십 논란이 일고 있다. 여기엔 이경숙 위원장의 인수위가 설익은 정책을 남발해 ‘일조’했다는 평가다. 사진공동취재단 | ||
이 당선인의 공개 발언이 하루아침에 번복되는 사태가 발생하자 국민들도 이명박 리더십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일련의 상황 때문에 이 당선인의 지지율도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오는 2월 25일 취임식을 앞두고 벌써부터 ‘이 당선인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흔들리는 이명박 리더십’ 논란을 따라가 봤다.
‘이명박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국민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번 알 수 있다. 인수위 활동이 거의 끝난 지난 2월 5일경 실시된 한 여론 조사에서 ‘이명박 당선인이 잘한다’는 응답은 63.8%에 머물렀다. SBS가 지난 4~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이 당선인이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67.8%로 대선 이후 가장 낮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5년 전인 2003년 이맘 때 노무현 당선인에 대한 긍정 평가 71%에 못 미치는 것이다.
인수위 활동을 두고서도 ‘잘하고 있다’는 답이 52.1%로 절반을 겨우 넘었다. 역대 정권의 인수위 성적표와 비교해보면 이 당선인의 지지율에 문제가 있음을 말해준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에 대해 “김대중 정부 인수위는 90%대였고, 노무현 정부도 출범 직전인 2월 지지율이 92.3%였다. 이번 대선은 1, 2위 간의 격차가 가장 컸음에도 불구하고 정권에 대한 기대감이 이렇게 낮은 건 뭔가 문제가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이 당선인은 설 연휴 전 긴급회의를 소집해 새 정부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이 약화되는 여론의 변화에 대해 집중 점검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자리에서 인수위 지지율이 기대에 훨씬 못 미치고 있고 새 정부가 출범도 하기 전에 지지율 하락 조짐이 보이는 것에 대한 대책이 집중적으로 거론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당선인 측은 최근의 지지율 하락 흐름이 이명박 정부 초기의 연착륙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이 당선인의 측근인 박형준 의원은 최근 “‘누가 뭐래도 터뜨리고 만다’는 식의 노무현 정부에 비해 이명박 정부는 민심과 여론을 훨씬 더 중시하는 정부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 단언한 바 있다. 이런 이 당선인 측의 민심 중시 기조를 볼 때 최근의 지지율 하락 조짐은 악재 중의 악재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이 당선인에 대한 지지율에 균열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가장 큰 원인은 인수위원회의 설익은 정책 발표와 혼선이라는 분석이 압도적이다. 이는 한나라당 안에서조차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인수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인수위가 의욕을 가지고 내놓은 영어 몰입교육과 통신요금 인하 추진은 많은 논란과 실시 시기 연기의 역풍을 맞으면서 그 신뢰성에 금이 가는 악재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정부조직법개정안을 둘러싼 대야 협상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난 바 있다. 한나라당 전재희 최고위원은 이에 대해 “점검하고 조정해서 발표해야할 것인데 그것을 인수위에서 마치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다 보니까 국민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인수위가 성과주의에 사로 잡혀 충분히 검토되지도 않은 정책들을 남발해 신뢰도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대통합민주신당은 ‘인수위 피로증’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이에 대해 “정책을 내 놓으면 월권이라 하고, 새 정부 들어서 하겠다고 하면 대책이 없다고 하니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라고 항변하고 있다. 인수위로서는 할 만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당선인의 지지율 하락과 그에 따른 리더십 논란이 인수위 문제가 아니라 ‘이명박 1인 연극’에 따른 후유증으로 분석하고 있다. 정치컨설팅을 하는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요즘 신문을 보면 온통 이명박 당선인 얘기뿐이다. 이명박 인사 스타일이나 CEO 리더십 등이 날마다 언론에 의해 ‘포장’돼 보도되고 있다. 이 당선인에 대해 우호적인 언론이 오버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당선인 측도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결과 때문인지 국민들은 이 당선인이 지금 마치 대통령으로 활동하고 있는 착각에 빠지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아직 취임도 하지 않았는데 그에게 너무 많은 포커스가 쏟아지고 있다. 물론 일하는 리더십을 내세우는 순기능도 있지만 잦은 언론 노출이 이명박 피로증을 확산시키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 당선인 측도 이런 지적을 의식하고 있다. 인수위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선인의 외부 일정이 너무 많다. 마치 선거 유세 다니듯이 현장 방문 일정을 잡는 데 대해 내부에서도 ‘이러면 안 된다’는 우려가 많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2월 들어 몇몇 여론조사에서 이 당선인의 지지율이 5~6%포인트 빠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선인은 인수위 출범 이후 휴일도 없이 매일 몰아쳐 왔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이 ‘피로현상’을 느끼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장성민 전 의원은 최근 이런 문제에 대해 “지금 우리나라처럼 대통령 당선인이 매일매일 언론에 노출되어 현직 대통령이 있는지 없는지의 상황을 만들어 버린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겠느냐. 사실 미국의 경우 대통령 당선인이 정식 대통령에 취임하고 전임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나기까지의 정권인수기간에는 신임 대통령 당선인은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조차 공개적으로 방문하는 것을 꺼린다. 그 이유는 스스로 신임 대통령이 누려야 할 신선한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일찍 노출시켜 국정운영의 허니문 기간을 소진시킬 필요가 없다는 전략적 판단 때문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이유는 현직 대통령의 국정 직무수행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는 원칙과 금도 때문이다. 일종의 전직 대통령에 대한 각별한 예우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당선인은 숭례문 화재 사건이 터진 뒤 인수위 회의 때 “숭례문 복원에 대충 200억 원 가까이 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부 예산으로도 할 수 있을 거지만 안타까워하는 국민들과 십시일반으로 국민성금으로 복원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 당선인의 제안에 대해 통합민주당은 “독재정권 시절에나 있던 일” “책임 회피용”이라고 공세를 폈고, 네티즌들도 “사고는 누가 치고 국민에게 책임을 씌우느냐”고 반발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이 당선인 측은 제안 다음 날 아침부터 비상이 걸렸다. 청와대 수석 내정자 회의 및 인수위 간사단 회의에서 성금 모금 제안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많이 나왔던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이경숙 위원장이 “복원만 빨리 하자는 게 아닌데,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죄송스럽다”라며 이 당선인 대신 유감의 뜻을 밝혔다. 결국 새 정부 출범 후 모금운동을 전개하겠다던 전날 인수위 방침은 하루 만에 없었던 일이 된 셈이다.
성금모금 해프닝을 두고 이 당선인에 대한 걱정스런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먼저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성금모금 같은 것은 이경숙 위원장 등을 통해 충분히 이 당선인의 뜻을 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다가 비판 여론을 고스란히 받았다는 게 적절치 않았다. 서울시장 재직 때 이 당선인은 실무자와 대화를 하고 본인이 직접 사안을 챙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대통령직은 그와 다르다. 대통령이 사안 하나 하나에 직접 발언하고 개입해버리면 나중에 그 부담이 본인에게 고스란히 넘어가 국정운영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 당선인이 낸 아이디어를 충분히 검증할 시스템이 마련돼 있는지도 의심스럽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숭례문 화재사건에 대한 성금모금 아이디어가 누구에 의해 처음 제안된 것은 확인할 수 없지만 이동관 대변인이 “지난 2월 12일 이 당선인과 조찬을 함께 했던 재 일본대한민국민단 관계자들이 성금을 모았다기에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 예산만이 아닌 성금모금도 함께하면 좋겠다는 취지로 한 말”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이 당선인이 직접 제안했던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이경숙 인수위 위원장도 이 당선인 제안에 대해 “숭례문은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우리의 보물이었기에 당선인의 제안이 국민의 마음을 추스르는 데 상당히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옆에서 거들었다.
그런데 정치권에선 “이 당선인의 참모들이 그의 ‘즉흥적인’ 아이디어에 대해 가타부타 직언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사실 이 당선인 스스로 27년간 기업에서 실물 경제를 경험하면서 ‘지상전’을 거쳤고, 국회의원과 서울시장 생활 등의 ‘공중전’도 10여 년 이상 해 교수 출신이 대부분인 참모들과 비교해 손색이 없는 ‘일꾼’임에 틀림없다. 이런 자신감은 그가 국정의 모든 면을 관장하겠다는 든든한 ‘빽’이 되고 있다. 실제로 한 인수위원은 이 당선인의 ‘능력’에 대해 “우리 80명이 모은 아이디어보다 당선인 한 사람의 생각이 더 낫다”는 지극히 아부성 감탄사를 내놓아 기자들이 어리둥절했던 적도 있었다.
여기에다 이 당선인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신문 10여 종을 1면부터 마지막 면까지 읽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 측근은 이에 대해 “신제품 기사는 물론 공연 단신에 이르기까지 사회 모든 현안을 꿰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참모들도 이 당선인 앞에서 섣불리 아는 체를 했다간 망신을 당하기 일쑤라고 여기고 ‘입 조심’을 하는 게 상식으로 통한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당선인의 아이디어에 대해 직언을 하는 참모들은 거의 없고 모두 ‘예스맨’으로 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숭례문 화재사건 모금운동 해프닝도 이 당선인의 아이디어를 검증하고 토론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더라면 다음날 바로 모금운동 추진을 번복하는 수모는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런데 이번 모금운동 해프닝으로 이 당선인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떨어졌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국민들은 BBK 사건 등의 의혹이 많은 이 당선인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면서 그의 ‘프로페셔널적인 리더십’에 기대를 보냈다. 하지만 이번 해프닝으로 “이 당선인도 노무현 정부처럼 아마추어리즘에 빠진 정권 아닌가”하는 의구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이 당선인에 대한 지지율이 역대 대통령의 ‘허니문 기간’의 그것에 비해 낮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명박 리더십 논란’의 핵심에는 바로 이명박 당선인 본인이 자리잡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