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과 통합을 선언한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이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통합은 손 의장 정치인생에 비수를 꽂은 키워드다. 2011년 12월 16일 민주당과 시민통합당은 합당을 선언했다. 시민통합당 주축은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 이해찬 전 총리 등 참여정부 출신 친노 인사들이었다.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손 의장과 친노 인사들은 ‘민주통합당’이라는 새 지붕 아래 뭉쳤다.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해 수개월간 야권 통합을 외쳤던 손 의장은 통합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뒤 대표직을 내려놨다.
이듬해 서양호 전 청와대 행정관 등 손학규계 인사들은 19대 총선 공천에서 대거 탈락했다. 공천학살론이 회자했다. 한명숙 대표가 이끈 민주통합당은 총선에서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문 전 비서실장은 손 의장을 꺾고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지만 대선에서 패배했다. 손 의장은 당권과 대권을 친노인사들에게 내주고 민주당 몰락을 지켜봐야 했다.
약 5년이 흐른 2017년 2월 8일, 국민주권개혁회의와 국민의당이 통합을 선언했다. 지난달 말 출범한 국민주권개혁회의는 손 의장 지지자들이 모인 정치결사체다. 국회 관계자는 “손 의장이 문 전 대표를 미워하면서 닮아가고 있다. 손 의장의 국민주권개혁회의을 보면 기시감이 든다. 손 의장은 5년 전 궁중 안에 있었지만 들판에 있었던 친노 인사들을 품었다. 폐족 소리를 듣던 친노 인사들은 결국 당권을 잡고 손 의장을 내쫓았다. 손학규계 인사들도 대청소를 당했다. 당시 손 의장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을 것이다. 이제는 자신이 당했던 방식 그대로 대권을 잡겠다는 전략”이라고 진단했다.
손 의장과 국민의당은 합당 컨벤션 효과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손 의장은 “개혁세력 연대의 출발이 국민의당과 통합을 계기로 이뤄졌다. 민주당의 문재인 대세론을 반드시 꺾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합리적이고 중도적인 국민의당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이고 호남에서도 손 의장의 합류로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국민의당은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를 향해서도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낙마로 주춤했던 제3지대론이 국민의당발 스몰텐트로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손 의장은 국민의당 대권 레이스에 가세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국민의당 대권 경선은 결국 호남대전이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대표와 손 의장 중에 호남의 안방을 누가 차지하느냐의 게임으로 봐야 한다. 국민의당 당원들의 절반 이상이 호남 사람들이다. 손 의장은 호남의 지지를 얻기 위해 국민의당을 선택했다. 안 전 대표가 손 의장을 이긴다면 호남 지지를 토대로 전국적인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고 평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손 의장은 안철수 들러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국회 다른 관계자는 “국민의당 의원들 지지를 받아야 손 의장이 대권후보가 될 수 있다. 국민의당은 안 전 대표가 만든 당이고 총선 승리의 지분도 쥐고 있다. 안 전 대표는 비례대표도 자기 사람으로 꽂았을 정도지만 손 의장은 당내 조직이 없다. 민주당의 손학규계 의원들도 탈당을 안 하고 눈치만 보고 있다. 아무리 손풍이 분다고 해도 바람은 조직을 이길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안 전 대표는 대권 경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최근 대표적인 친안계인 김영환 최고위원을 대선기획단장으로 임명했다. 리베이트 사건에 휘말렸지만 최근 무죄를 선고받은 박선숙 의원도 안철수 캠프 좌장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주 송기석 채이배 등 초선의원들도 캠프에 합류했다. 친안계 핵심 인사는 “손 의장이 불리하다. 그가 국민의당에 보탠 것이 뭐가 있나. 손 의장 쪽은 통합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 의장 측은 “안철수의 국민의당은 수명이 다했다”는 입장이다. 손 의장 측근은 “국민의당은 내부적으로 문제가 심각하다. 안철수 사당도 아니다. 오히려 박지원 대표의 호남 정당으로 볼 수 있다. 당이 안 전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지원을 해왔지만 안 전 대표의 지지율은 뚝뚝 떨어졌다. 국민의당 당원 중엔 손 의장의 지지자들도 많다. 안 전 대표는 아직도 정치신인에 불과한데 조직이 얼마나 있겠나”고 반문했다.
손 의장 측은 자신감을 보이고 있지만 통합 선언의 컨벤션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 2월 2주차 주중동향에 따르면, 국민의당(10.5%)은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민주당(45.4%) 새누리당(13.8%)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손 의장이 합류한 뒤 국민의당 지지율이 오히려 지난주 대비 1%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여야 19대 대선 주자 지지도 조사에서도 안 전 대표(9.1%)와 손 의장(3.1%)은 각각 4위와 7위를 기록했다(이번 조사는 2017년 2월 6일부터 8일까지 3일간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1508명을 대상으로 실시했고 응답률은 8.3%,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p였다. 자세한 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손 의장을 향한 회의론도 지지율 흐름과 무관치 않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손 의장 지지율은 답보상태다. 자연스레 국민주권개혁회의도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실상은 입당인데 구색 맞추기식으로 단체를 만들어서 합친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손 의장 최측근은 “정치는 세력이 있어야 한다. 손 의장 혼자서는 안 될 것“이라면서도 “호남의 일반정서는 ‘문 전 대표는 아니다’는 것이다.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이다. 여론조사는 소용없다. 지난 총선 때도 전부 틀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통합 자체가 손 의장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라는 관측도 들리고 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손 의장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손 의장은 대선을 본인이 주도할 수 없는 처지였다. 수세적 국면에서 안 전 대표와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맺은 셈이다.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손 의장의 한계를 보여준 사건이다. 자력으로 정당을 만들 에너지가 없으니 결국 남의 집에 가서 대선후보가 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손 의장 측은 “손 의장은 문 전 대표의 친노 패권주의 때문에 민주당을 탈당했다. 패권의 피해자라는 측면에서 손 의장과 국민의당은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이 동일하다. 국민의당 의원들도 손 의장처럼 대부분 개혁론자다. 이제는 국민의당을 중심으로 뭉칠 때다. 남의 집은 결코 아니다”고 반박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