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전인 19일 새벽 내각 및 수석 내정자들과 함께 운동장을 돌았다. 사진공동취재단. 아래 사진은 ‘무혐의’ 결론을 낸 특검 수사의 무효를 주장하는 시위자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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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혐의’ 결과에 탄력을 받은 MB와 한나라당은 BBK 사건과 관련된 배후세력을 정조준하는 등 제2의 탄핵 역풍몰이에 나서고 있다. 여권 주변에서는 대선 과정에서 BBK 사건을 주도했던 정동영 전 장관 측근들이 중심이 된 이른바 ‘특검 살생부’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검찰도 김경준 씨의 추가 주가조작 혐의 및 기획입국설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고 있어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야당으로 전락한 통합민주당은 특검의 부실수사를 부각시키는 동시에 여전히 풀리지 않은 BBK 미스터리를 정치쟁점화해 ‘민의의 심판’에 기대를 걸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또 새 정부 총리와 국무위원, 핵심 권력기관장 등에 대한 철저한 검증 과정에서 비리 의혹이 불거질 경우 MB 정부의 도덕성 시비로 몰고가 ‘거대 여당 견제론’으로 승부한다는 전략이다.
‘정호영 특검’의 수사 결과를 접한 여야 정치권의 희비는 극명하게 갈렸다. 대통령 취임식을 3일 앞두고 모든 의혹에서 벗어난 MB는 집권 초부터 야당을 공격할 채찍을 부여받았음으로써 특검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MB는 21일 특검 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다시 한번 모든 의혹이 깨끗하게 해소돼 새 정부가 산뜻하게 출발하게 돼 다행”이라고 소회를 피력한 배경에도 강한 자신감이 묻어 있다.
한나라당의 기세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한 분위기다. 검찰 수사결과 발표 후 대선 완승에 이어 특검 수사발표 후 4월 총선에서 낙승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고 보고 제2의 역풍몰이에 박차를 가한다는 전략이다. 강재섭 대표는 21일 “검찰 수사로 진실이 밝혀졌는데도 국정 파탄 세력이 대선에 이용하기 위해 또 총선에 이용하기 위해 정략적인 목적으로 특검을 추진했다”며 “총선에서 반드시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도 “날치기 특검을 주도한 세력은 국민에게 사죄하고 정계에서 영원히 떠나야 한다”며 대대적인 역공에 나섰다. 그는 또 22일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도 “김경준은 합당한 처벌을 받겠지만 통합민주당도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특검에 쓰인 예산 9억 6000만 원은 그야말로 민주당에서 당연히 국고에 환수해줘야 할 책임 있는 돈”이라고 몰아붙였다.
MB의 핵심 측근인 박형준 의원은 대선 과정에서 BBK 사건을 집중적으로 제기한 현역 정치인들에 대한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거론하고 나서 또다른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 BBK 사건과 관련해 한나라당과 MB 지지자들이 민주당 현역 의원 등을 상대로 제기한 고소 고발 건은 무려 50여 건에 달한다. 검찰과 특검 수사를 통해 MB의 ‘무혐의’가 드러난 만큼 이 사건을 주도했던 인사들은 마땅히 법적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여권 일각에서는 지난 대선 때 BBK 저격수로 활동했던 친 정동영계 인사들이 주축이 된 이른바 ‘특검 살생부’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검찰이 김경준 씨 기획입국설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 것도 살생부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실제로 서울중앙지검 특수 1부는 정호영 특검이 마무리되자 김경준 씨의 추가 주가조작 혐의와 기획입국설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은 지난해 대선기간 동안 기획입국설과 관련해 ‘국정원 개입설’ ‘구여권 핵심 실세 연루설’ 등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지만 검찰은 최근 김 씨의 입국에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검찰 수사 과정에서 국정원 개입설이나 구여권 연루설 등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BBK 사건은 노무현 정권의 대선개입 논란으로 급선회되면서 4월 총선정국 내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나라당의 대대적인 역공에 민주당은 호락호락 당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검찰에 이어 특검마저 MB에게 ‘무혐의’ 결론을 내린 만큼 민주당은 정치공작 세력으로 매도되는 등 총선 역풍에 시달릴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하지만 민주당은 검찰과 특검의 부실수사 논란을 부추기는 동시에 BBK 사건에 대한 여전히 풀리지 않은 국민적 의혹을 정치쟁점화시켜 ‘총선 민의’에 호소한다는 방침이다. 우상호 대변인이 21일 논평을 통해 “특검은 국민적 의혹을 밝히는 데 실패했다”고 규정한 뒤 “MB에게 면죄부만 줬다”고 성토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김 씨 변호인단과 이장춘 전 대사 등은 특검 수사에 강한 불만을 토로하며 실체적 진실 규명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 씨의 무료 변론을 맡아 온 박찬종 전 의원은 21일 오후 기자와 만나 “특검 수사 결과는 소가 웃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는 꼴”이라고 격분하면서 “MB는 이미 광운대 동영상에서 누구의 간섭과 지시도 없이 스스로 자백을 한 바 있고 속칭 BBK 사건을 주도한 명백한 공동정범”이라고 주장했다. 박 전 의원은 또 “특검은 처음부터 진실규명에 대한 결연한 의지가 없었고 ‘유권무죄’라는 사법불신만 재확인시켰다”며 “언젠가 특검을 특검할 날이 올 것”이라고 성토했다.
‘BBK 명함’을 폭로했던 이장춘 전 대사도 특검팀의 삼청각 조사를 강하게 질타했다. 이 전 대사는 20일 “삼청각은 과거 개발독재 권력이 야간에 뽐내며 즐기던 유곽으로 특검에 어울리는 곳은 아니다”고 전제한 뒤 “특검팀과 당선자 간에 가진 삼청각 만찬 조사는 한국의 소위 민주화가 짝퉁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역사적 에피소드로 남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의 대대적 역공을 역이용하자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검찰의 기획입국설 수사 과정에서 소속 의원들이 줄소환되면 ‘정치 탄압’으로 비춰져 오히려 동정 여론이 확산될 수 있다는 논리다.
민주당 지도부는 특검 후폭풍에 개의치 않고 대안 야당으로서 새 정부의 인사 편중 논란과 국무위원 등 핵심 요직 인사들에 대한 철저한 검증으로 돌파구를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특히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흠결이 드러난 인사들을 부각시켜 MB 정부의 도덕성에 타격을 가한다는 세부 전략도 마련돼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