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관 낙마 후폭풍이 일자 한나라당은 청와대의 미숙한 일처리가 총선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속앓이를 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월 한나라당 총선기획단 3차회의 모습. | ||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못하는 게 인사(人事)다. 기업 최고경영자를 오래 지내면서 각종 인사를 많이 해봤겠지만 아무래도 기업 오너가 지켜보고 있는 상태에서 인사를 하다 보니 자기 마음대로 사람을 고르는 일에 익숙치 못하다. 대선까지는 그런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온 국민이 관심을 갖고, 야당과 언론의 집요한 검증까지 뒤따르는 정부 고위직 인사에서는 아무래도 이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문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에 당선되기 이전부터 이 대통령을 지켜봐온 한 측근은 지난 1월 사석에서 이 대통령의 약점중 하나로 ‘인사 스타일’을 꼽은 적이 있다. 예전부터 이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지켜보면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바둑 속담이 그대로 맞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측근의 전망은 그 후 암울한 현실로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정권이 채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여론의 뭇매를 맞기 시작하자 정작 가슴을 내려치는 쪽은 청와대가 아니라 총선을 코앞에 둔 한나라당이다. ‘대선 압승→지지여론 지속→총선 압승’을 당연시 하며 느긋해 하던 분위기는 일순간 냉각되기 시작했다. 이미 당 내부에서는 ‘당이 살기 위해서라도 청와대의 방향을 바로 잡아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진작부터 나온 상태다.
이런 가운데 총선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는 각종 조사결과가 나와 한나라당은 온통 어수선한 분위기다.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 연구소가 지난 설 연휴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한나라당이 이번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얻어야 한다’는 응답은 48.5%를 기록, 50%를 밑돈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2일 똑같은 조사에서 54.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점차 ‘과반수 의석론’이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 안팎에서는 ‘인수위의 설익은 정책남발, 이 대통령 측근들의 미숙한 일처리가 총선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인책론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의원들은 ‘인사 파동으로 최소한 20석은 날아갔다’며 청와대 쪽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으며 앞서 인수위의 설익은 일 처리가 그대로 청와대에 옮겨진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조차 “인수위 일부 인사들의 일처리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모 인사의 경우 중요 정책을 언론에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에게는 아예 사전보고도 하지 않아 황당했다. 그러나 이 정책 때문에 정작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은 해당 인사가 아니라 최종 책임자인 이 대통령이었다”고 전했다.
경선 때부터 이 대통령을 돕다 인수위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청와대의 정무 기능이 상당히 미숙하다. 컨트롤 타워도 없는 것 같고 아마추어 수준이다”고 비판했다. 이 인사는 “의견수렴이 제대로 안되고 이 대통령에게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참모도 눈에 띄지 않는다. 국정은 정치고, 정치는 현실인데 교수 출신들이 다수여서 인지 청와대 참모들이 너무 정치를 모른다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수도권의 한 의원 역시 “노무현 대통령은 너무 말을 많이 해서 문제였는데 이 대통령은 너무 말을 안 들어서 문제가 될 것 같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탈 여의도 정치’를 표방하고 있는 것 까지는 좋지만 도를 지나쳐 민심의 동향까지 잃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예컨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갈수록 뜨거워 졌음에도 청와대가 너무 상황을 안이하게 판단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이 청와대를 곱지 않게 보는 또 다른 배경에는 당 출신 ‘개국 공신’들에 대한 청와대의 대접이 소홀했다는 불만도 깔려 있다. 청와대 수석에는 학계 출신이 포진하고, 비서관에는 현직 공직자들이 대거 참여하게 되면서 당 출신 인사들의 입지가 예상보다 더욱 좁아졌다는 것이다. 실제 인수위에 참여한 상당수 당 관계자들이 청와대 요직 진출을 노렸지만 대부분 고배를 마셨거나, 비서관 급이 아닌 행정관 급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정종복 의원실 소속 박광명 보좌관(4급. 교육문화), 임태희 의원실 소속 문형욱 보좌관(3급, 대통령실 직속), 전재희 의원실 소속 유석현 보좌관(3급, 국정기획실)등 일부 보좌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청와대 입성’에 실패했고, 이들이 고스란히 당으로 돌아가 ‘핵심 동요계층’이 돼버린 것.
여기에 당내 공천과정에서 자신이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에게 밀렸다고 생각하는 인사들의 원성까지 더해지면서 청와대를 향한 불만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는 양상이다. 공천이 마무리 되는 3월이 되면 이런 공천 내홍은 더 심해질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의 고민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같은 당의 분위기는 26일 오전의 당직자 회의와 오후의 의원총회에서도 감지 됐다. 이날 회의에서 “한나라당이 야당 때 장관 후보자들에게 적용했던 잣대들이 이번에도 지켜져야 한다”, “이대론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등의 발언이 속출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장 시절부터 이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정두언 의원은 26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지금 수도권 표밭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국민은 권력이 오만하다 느껴지면 바로 등을 돌려 버린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이 대통령이 27일 아침 강재섭 당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를 만나 당의 의견을 건의 받고 남주홍 통일부,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결심하며 일단 상황은 봉합되는 쪽으로 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청와대는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자의 임명 동의안 처리가 불안했고 당은 총선을 앞둔 민심이 불안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도로 한나라당의 우려가 불식될 지는 미지수다. 총선이라는 절대절명의 대사를 앞둔 정치인들이 ‘탈 여의도 정치’를 꿈꾸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는 청와대 측의 움직임에 한순간도 눈을 떼기 힘든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총선이 한나라당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로 끝날 경우 당권 장악을 노리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나 정몽준 최고위원, 강재섭 대표, 이재오 전 최고위원 등이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울 가능성도 없지 않아 당·청간의 ‘부글거림’이 ‘폭발’로 이어질 가능성마저 일각에서는 우려하고 있다.
이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