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무차별 저격수가 ‘대량학살자’과 ‘연쇄살인자’의 두 양상을 모두 띠고 있다고 분석한다. 대량 학살자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에서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죽인다. 이는 주로 가족과 친구를 중심으로 일어난다. 게다가 자신의 존재를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했다’고 자랑하길 즐긴다. 현재까지 무차별 저격수는 자신의 존재를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다. 마치 그를 쫓는 경찰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미꾸라지처럼 수사망을 빠져나가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연쇄살인자의 특성이다. 연쇄살인자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 그리고 감쪽같이 수사망을 벗어난다. 그로써 쾌감을 느끼는 존재인 것이다.
FBI 연합수사팀은 범인이 ‘2인 1조’로 움직인다고 추정하고 있다. 목격자의 증언을 토대로 한 것이다. 하지만 과연 무차별 저격수가 ‘2인1조’일지는 의문이다. 일반적으로 연쇄살인자는 홀로 범행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지난 84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11명을 죽인 연쇄살인범 찰리와 레오나드를 제외하면 말이다. 한편으론 테러리스트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워싱턴 경찰은 테러 연계성을 암시한 적이 없다. 물론 전적으로 부인한 적도 없지만.
여태까지 범행에 쓰인 차량으로 추정되는 것은 전부 세 대다. 첫 총격에서 타고 간 하얀색 트럭, 최근의 총격에서 보여 전국 지명수배가 된 하얀색 ‘시보레 아스트로 밴’과 ‘포드 이코노미 밴’이다.이를 미루어 보아 범인은 배달 일을 하고 있다고 추정된다. 아니면 근거리 출장이 많은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근거리 출장이 잦은 직업이란 것은 현재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진다. 총격사건이 생긴 뒤 경찰은 발빠르게 고속도로를 봉쇄했다. 하지만 범인은 감쪽같이 사라졌다.이는 어느 길로 가야 수사망을 피할 수 있는지 알 만큼 지리에 훤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첫 무차별 저격이 있은 뒤 이틀 동안 일곱 번의 총격에 여섯 명이 죽었다. 모두 미국 메릴랜드 몽고메리 카운티에서였다. 그리고 나머지 다섯 번은 주요 고속도로나 교외국도로 빨리 빠져나갈 수 있는 장소였다. 범인은 경찰에게 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최소 50m 이상 떨어져서 저격했다. 그리고 금방 고속도를 탈 수 있는 곳에서 지키고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그의 행동반경은 좁혀든다. 바로 워싱턴시 다운타운에 있는 ‘내셔널 몰’ 근처다. 여기는 그를 찾아내려는 잠복경찰을 감안한다면 가장 피하고 싶은 지역이다.
이를 바탕으로 추정하면 목표물은 쇼핑몰이나 주유소 자체가 아니었다. 이 사건이 발생한 곳에서 몇 km만 가면 백악관이 나오고 워싱턴 시청이 나온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면 이보다 효과적인 장소는 없다. 그런데 왜 무차별 총격은 워싱턴시와 몽고메리 카운티의 경계에서만 일어난 것일까. 여기에 대한 답은 아직 없다. 그러나 설득력 있는 가설은 있다. 감시 카메라에 찍히는 것을 걱정해 워싱턴시와 몽고메리 카운티 경계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워싱턴시청 관계자에 따르면 백악관과 시청 근처는 모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만약 총격사건이 있다면 어떻게든 범인의 얼굴은 카메라에 찍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전에 이 사실을 알았을 가능성도 높게 점쳐진다.
▲ 지난 11일 미국 버지니아주 프레더릭버그 남쪽 주유소에 서 일어난 10번째 ‘연쇄 저격 사건’ 현장을 경찰이 살펴 보고 있다. [연합] | ||
첫 총격이 있은 뒤 범행은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로 이어졌다. 그리고 한 주와 주말을 쉬고 월요일에 다시 사건이 생겼다. 이 한 주는 ‘콜럼버스의 날’이 낀 국경일이었다. 그리고 휴일이 끝나자 범인은 다시 월요일부터 시작하고 있다고 보여졌다. 이는 범인을 추적하는 하나의 단서가 돼왔다.
하지만 토요일인 지난 19일 밤 버지니아주 애슐랜드의 주차장에서 또 한 차례의 사건이 일어나면서 이 ‘원칙’은 깨졌다. 범인은 동일한 반복을 가장 싫어할 것이라는 전직 FBI 범죄분석가의 추리(하단 기사 참조)처럼 살인 패턴을 교묘히 바꾸며 사건을 미궁속으로 빠뜨리고 있다.
저격수는 극도의 침착성을 지니고 있으며 전문적인 훈련을 받았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저격기술이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반경 40m에서 1백40m 사이에서 총을 쏘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해자 자체도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가 아닌 거의 서 있거나 느리게 움직이는 물체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통의 사격술로도 충분히 맞힐 수 있다. 그리고 특정 부위를 고집하지 않는 점도 보통의 사격술 정도라고 보는 근거다.
범인이 치밀한 두뇌의 소유자란 근거는 그가 단 ‘한 발’만 쏜다는 점이다. 총기를 난사한다면 그만큼 증거가 많아져 잡힐 가능성은 높아진다. 인간의 귀는 구조적으로 한 발의 총성은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 도저히 감지할 수 없다. 두 번의 총성이 들려야 뇌로 삼각형을 그려서 범인의 위치를 파악한다. 피해자가 살아있음에도 다시 쏘지 않았다는 것은 범인이 자신의 위치가 파악된다는 사실을 주지하고 있다는 증거. 단 한 발에 그치면 경찰은 사건현장을 봉쇄할 수 없다. 사방 어디에서 총알이 날아 왔는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사이 범인은 유유히 사건현장을 빠져나갈 수가 있다.
한 개의 탄창이 10월7일 사건현장에서 발견되었다. 이는 알려진 대로 0.223 구경. 발견 당시 전문가들은 범인이 결정적인 증거를 남겼다고 보고 흥분했다.
하지만 곧 미국에서 가장 흔한 총의 탄창임이 밝혀졌다. 특이한 점이라면 일반적인 총보다 가볍다는 정도. 여기선 범인의 흔적이 전혀 추측 불가하다는 것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