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핵심전략가로 꼽히는 관계자는 확신에 차 있었다. 이 관계자는 헌재의 탄핵 결정 전후 ‘샤이 보수’를 움직이는 변수가 존재하며 한국당이 그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한국당이 바른정당의 두 배 가까운 차이로 지지율에 앞서 있는 기존 여론조사보다 지지 수치가 훨씬 높은, 더불어민주당과도 얼마 간 차이가 없는 조사 결과도 있다고 했다.
그는 “수치는 공개하기가 어렵지만 우리 DB의 다수가 현재 여론조사에는 응답하고 있지 않다. 박 대통령 지지자들이라기보다는 진보보다 보수에 가까운 분들이 침묵하고 있는 것”이라며 “그들의 금언이 헌재 판결과 동시에 해제될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
한국당의 이러한 자신감은 자체 여론조사 결과 말고도 몇몇 장면에서 포착되고 있다. 한 여권 인사는 “박 대통령 변호인단에 이동흡 변호사가 온 것을 눈여겨보라”고 했다. 이 변호사는 헌법재판관 출신으로 2013년 박근혜정부에서 헌법재판소장에 지명됐다가 특정업무경비 3억 원을 개인적으로 사용, 법복을 직원이 입혀줬다는 등 서른 가지가 넘는 의혹 검증에 시달리다 낙마한 바 있다. 그런데 왜 이 변호사의 등장이 샤이 보수와 연결된다는 것일까.
율사 출신의 범여권 인사는 “언론에는 변호인단이 이 변호사를 영입한 것으로 보도됐지만 실상은 그 반대”라며 “이 변호사가 탄핵 기각이 자신 있다면서 손을 들고 제 발로 찾아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무엇보다 헌재의 판결 과정이나 특징, 각 재판관의 성향 등을 그가 꿰고 있는 데다 그의 인맥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도 국회 측 탄핵소추인단이 겁을 내는 이유”라고 귀띔했다. 일반 국민은 상상하기 어려운 율사만의 세상이 있다고도 했다.
대구 출신인 이 변호사는 경북고-서울대 법대라는 TK의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또 이 변호사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본인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따서 서울대에 세운 기숙사 정영사(正英舍) 출신으로 박 대통령 집안과는 대를 이은 인연을 갖고 있다. 이 변호사 영입 전만 해도 박 대통령 법률대리인단 전원 사퇴 카드를 내밀며 지연전술을 편 것과 달리 이 변호사 영입과 동시에 자세가 180도 달라졌다.
이 변호사도 변론 첫날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중요한 법 위반이란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적극적인 법 위반을 말하는데 박 대통령이 자유민주적 근본 질서를 역행하고자 하는 적극적 의사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오직 법리로만 다투겠다는 일종의 포고로 해석됐다. 이 변호사는 또 “삼성과 관련한 뇌물죄가 입증되지 않는다면 박 대통령의 중대한 법 위반으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박 대통령 주변에서 호가호위하는 무리가 있었을 뿐이지 대통령이 파면될 정도는 아니다”라는 얘기도 했다.
2013년 1월 당시 이춘석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변호사의 헌재소장 지명과 관련해 “당시 정영사에는 지방 출신으로 성적이 좋은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로 초청해 밥도 자주 먹고 용돈도 주고 하면서 관리를 했다고 그런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한국당 한 관계자는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것은 반대로 보수가 끈끈하다는 것”이라며 “우정이나 의리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이 변호사의 등장배경이 이미 보수 엘리트 집단에 퍼져 있기 때문에 소문이 삽시간에 전파되고 있다”고 말했다.
신북풍도 ‘샤이 보수’를 결집시킬 변수로 꼽힌다. 북한의 탄도 미사일 북극성 2형 발사에 이은 김정남 피살 사건으로 보수층의 안보 의식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바른정당은 강력한 안보를 주장하며 사드 포대 추가와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고 나섰다.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국민의당이 사드 반대 당론을 변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민주당보다는 국민의당 안보의식이 나은 것 같다”고 노골적인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안보로 한국당-바른정당-국민의당 연합체가 가능할 것이란 시나리오도 등장했다. 세 정당은 게다가 이구동성으로 지지율 1위를 내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를 저격하고 있다. “당선이 되면 미국보다 북한 먼저 가겠다”던 문 전 대표의 안보관이 “불안하기 짝이 없다”는 얘기다.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초당적인 안보기구의 설치가 필요하다”며 “대북 방어무기를 둘러싸고 남남갈등을 겪어서는 북한에 충분히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조속히 국회 안보정책공동위원회를 만들자”고 했다. 안보를 고리로 한 일종의 국회 내 3개 정당 ‘소텐트’를 쳐보자는 목소리다. 보수 지지층으로서는 국민의당까지 가세한 연합체로 문재인 대세론을 꺾을 수만 있다면 강력하게 결집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한국당 안팎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목소리다.
한국당 대선주자로 압도적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사실상 불출마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진 것도 ‘샤이 보수’의 총력 결집을 이끌 변수로 꼽힌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무총리 직무대행을 만들 경우 이번 정부가 희화화할 수 있다는 만류가 컸다고 한다. 한국당 대선주자가 10명이나 거론되기 시작한 것도 황 권한대행의 불출마 의중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있다. 한국당 한 관계자는 “황 총리가 나온다면 전폭적으로 밀어주지 왜 서로 출마하겠다고 난리겠는가”라며 에둘러 관련 사실을 확인해줬다.
이미 출마를 선언한 이인제 전 의원, 원유철 안상수 의원을 빼고도 정우택 원내대표, 김문수 전 경기지사, 이완구 전 국무총리, 김관용 경북지사, 김기현 울산시장 등이 대선주자군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한국당 주자는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홍준표 경남주자로 꼽힌다.
16일 그는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그 직후 국회 앞 경남도 서울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연 홍 지사는 “절망과 무력감에 빠진 국민에게 희망을 드릴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대란대치(大亂大治)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대선에) 나왔으면 좋겠다”는 표현으로 자신을 적임자로 내세웠다.
당장 한국당 관계자는 “홍 지사의 2심이 무죄가 되기를 바라는 당원, 대의원들이 적지 않았다”며 “홍럼프(홍준표+트럼프)가 황 권한대행의 대체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모래시계 검사’ 출신으로 4선 국회의원, 재선 광역단체장 등 ‘법률+의회+행정’의 3대 정치분야를 두루 섭렵한 것은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특유의 거친 입에다 한국당 주류인 친박과의 관계가 꼬여 있다는 점, 검찰 기소와 함께 당원권이 정지된 상태여서 이를 풀어주려면 한국당이 당헌·당규를 개정해야 하는 번거로움 등이 약점으로 진단된다. 홍 지사는 이날 기자회견 후 “박근혜 정부 4년을 견디는 게 DJ·노무현정부 10년보다 더 힘들었다”면서 “일부 양박(양아치 같은 친박)들하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주도해 내 사건을 만들었다”는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정필 언론인
여권 경선 흥행 비상…바른정당은 ‘기반’ 없고 한국당은 ‘주자’ 없고 새누리당 탈당파의 신당인 바른정당이 대선 경선룰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지만 진퇴양난으로 보인다. 이종우 경남대 석좌교수가 경선관리위원장으로 선임돼 경선 룰 확정의 키를 잡았는데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라는 소리가 들린다. 1월 24일 창당과 동시에 2위 자리로까지 치솟았던 정당 지지율은 최근 정의당과 비슷한 수준인 4위로 떨어졌다. 그래서 대선경선을 통해 흥행을 담보해야 함에도 마땅한 묘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정은 이렇다. 신당을 만든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조직이 제대로 꾸려지지 않은 점이 근본문제란다. 더불어민주당이 200만 명의 국민선거인단을 꾸려 흥행을 예고한 것과 달리 바른정당의 당원도 대의원도 큰 수가 아닌 데다 명단도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당원 DB 자체가 없다. 또 국민선거인단은 구성할 수 있지만 자유한국당 지지층이 꼬여 훼방이나 방해를 놓거나, 역선택으로 약한 후보를 배출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가장 크다고 한다. 바른정당 관계자는 “체육관선거로 일컫는 국민선거인단 경선이 분명 그림도 잘 잡히고 흥행이 될 것이 분명한 방법”이라면서도 “하지만 진짜 우리 편인지 아닌지 구분하기가 어렵고, 동원령이 내려지면 돈이 개입하게 돼 그게 문제”라고 고개를 저었다. 바른정당 한 중진 의원은 “유승민 카드가 분명한데도 역선택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특히 개혁적 보수를 자처한 신당이 대선경선 과정에서 구태를 반복하면 “곧바로 폐점해야 한다”는 우려가 크다는 얘기도 있다. 민주당이 국민선거인단 모집 하루 만에 홈페이지가 마비되는 등 시끌벅적한 뉴스를 바른정당은 넋 놓고 바라만 보는 형국이다. 그렇다고 100% 여론조사 경선으로 갈음하기도 어렵다. 바른정당 대선주자는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 둘뿐인데 지금까지 도출된 여론조사 결과만으로도 승패가 뻔하다는 것이다. 유 의원이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자유한국당의 범 중도 보수 후보가 모두 참여해 ‘보수 후보 단일화’를 주장한 것도 경선 흥행을 위해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바른정당은 창당 정신을 잊지 말자는 중지를 모아 “한국당과의 연대는 없다”는 당론을 정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국민선거인단을 대체할 경선방식으로 다른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전국을 권역별로 나눠 인구특성에 맞게 소수를 뽑아 타운홀 투표 식으로 진행하자는 의견에 다수가 기울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부산에서 한다면 부산의 성별, 연령별, 이념지향별 인구 비례에 맞게 100명을 추려 투표를 하고 점수에 넣자는 방식이다. 하지만 여론조사기관이 정교하게 DB화하는 데에만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고 해 제동이 걸렸다. 반대로 자유한국당은 뚜렷한 주자가 없어 기반이 탄탄함에도 좀처럼 경선룰 확정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9~10명까지 거론되는 대선주자이 지지율을 모두 합해도 1%를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당 한 인사는 “용이라 부르기에는 우리 후보군의 존재감이 크지 않아 걱정”이라고 푸념했다. [필] |